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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의 희망가족 여행기(2)>환상과 현실의 교차로 티벳...칭창열차 티벳고원 횡단기
[라사(티벳)=이해준]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산(泰山), 베이징(北京)을 거쳐 뤄양(洛陽), 시안(西安), 시닝(西寧)으로 종횡무진 달려왔다. 온 가족 여행이 이제 중국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칭장열차(靑藏列車)를 타고 티벳으로 가는 여정을 남겨 놓고 있다.

티벳은 해발고도 3500~5000m의 고산지역이다. 우리는 해발 2275m인 시닝에서 3박5일(1박은 야간기차)간 머물며 해발 3500m의 일월산(日月山)과 3200m의 칭하이 호수(靑海湖)를 여행하는 등 고산증에 대비해 왔다.

티벳을 여행하려면 까다로운 퍼밋(여행 허가)을 받아야 했다. 2008년 티벳 수도 라사(拉萨)의 대규모 독립요구 시위와 2010년 승려들의 잇따른 분신 때문이었다. 모든 외국인은 여행지를 미리 허가받고, 3성급 이상 호텔에서 그룹으로 여행해야 했다. 우리는 시안에서 1인당 4100위엔(약 74만원)에 여행사와 계약을 맺었다. 베이징에서 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가격과 조건을 따진 덕분에 처음 제시됐던 4800위엔에서 상당히 할인받을 수 있었다.

열차는 2011년 11월17일 오후 4시50분 시닝서역을 출발했다. 지구 최고 고산지대의 ‘하늘을 나는 열차’를 탄다는 설레임과 중국 소수민족 문제의 ’화약고’로 들어간다는 엇갈린 긴장감이 몰려왔다.

열차는 황원협곡(湟源峽谷)을 지나 칭하이 고원의 황량한 벌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11월 중순임에도 하얗게 눈이 덮인 광활한 고원과 거친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한참을 달리는데 눈발이 날리더니 점차 함박눈으로 변해 창으로 쏟아졌다. 승객들은 넋을 잃은 채 탄성을 질렀다.
칭창열차에서 바라본 티벳고원의 장엄한 모습으로, 하얗게 눈 덮인 산 아래 오른쪽으로 유목민들의 주거지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야크와 양들이 보인다.

칭하이 고원의 풍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졌다. 터널 몇 개를 지나자 어느새 눈은 멎고 노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이 흩어져 있던 구름도 붉게 물들어갔다. 곧이어 바다와 같은 칭하이 호수가 노을을 받아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아이들도 탄성을 질렀다.

어둠이 찾아오면서 고산증에 대한 우려가 다시 몰려왔다. 멀쩡하다가도 속이 울렁거리는 듯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해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자는 게 약’이라며 일찌감치 침대에 들어갔다. 레일 위를 달리는 ‘철커덕 철커덕’ 하는 육중한 소리만이 어둠 속에 울려퍼졌다.

칭창열차는 시닝~라사 구간 1972km 공사가 완료된 2006년 7월1일 운행을 시작했다. 이로써 중국 주요도시와 라사가 모두 연결된 것이다. 베이징~라사는 4064km로 48시간이, 청두(城都)~라사는 3360km로 45시간이 걸린다.

차장의 외침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30분. 창밖을 보니 ‘格尔木(꺼얼무), 海拔(해발) 2829m’라는 팻말이 서 있는 게 아닌가. 꺼얼무는 서부의 둔황과 남부의 티벳, 북부의 시닝을 잇는 교역 요충지이다. 사방 150km 이내엔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고원의 한복판이다.

얼른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뛰어나갔다. 다른 승객들도 새벽 고원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닝을 출발한 열차가 9시간 반 동안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칭하이성(靑海省) 고원지대를 달려왔고, 이제는 평균 4000m 이상의 티벳고원을 달려야 할 차례다.

30분 정도 정비를 마친 기차가 다시 출발했다.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6시께 설핏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하얗게 눈이 내린 고원에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8시 가까이 되도록 창밖은 어둑어둑했다. 
티벳고원에 눈이 내려 점차 설원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가운데 티벳의 대표적인 유목 동물인 야크들이 고원에 내리쬐는 햇빝을 받으며 눈 사이에 드러난 풀을 뜯고 있다.

해가 뜨자 티벳고원의 웅장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곳은 고도가 4000미터를 넘어 생물학적으로 나무가 살 수 없다. 실제로 창밖엔 나무 한 포기 없는 척박한 환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땅에 납작 업드린 풀들을 뜯고 있는 야크와 양 등 동물 뿐이었다.

이런 곳에 철길을 냈다니... 역시 중국은 ‘비현실적인’ 만리장성을 만든 후예다웠다. 황량하고 거칠고 광활한 티벳고원을 연결한 대역사를 어떻게 진행했을 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철길을 따라 야크와 양을 방목하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인간의 집요함에 또다시 혀를 내둘렀다.

광활한 초원과 거칠기 그지없는 산들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열차가 놓인 가장 높은 지점인 5027m의 탕구라산맥을 지나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담수호수가 있는 안도(安多),해발 4513m의 나취(那曲)역을 통과하면서 티벳의 심장부로 접근했다.

라사에 가까와 지면서 유목민들의 거주지가 자주 나타났다. 말을 타고 초원을 누볐을 유목민들은 이제 형형색색 깃발로 장식한 트럭과 오토바이로 야크와 양을 돌보고 있었다. 전통의상의 유목민들이 손을 흔들었다. 겨울에 대비해 야크와 소들의 똥을 말려 쌓은 연료 더미들도 눈에 띄었다.

오후 4시가 넘자 라사강이 보였다. 듬성듬성 하던 유목민 거주지가 농촌으로 변하더니, 2~3층 높이의 신축건물들이 나타나고, 공장지대가 이어졌다. 맑고 푸르던 라사강이 갑자기 탁해지고, 무질서한 파괴와 개발의 현장이 펼쳐지더니, 청명했던 하늘에 뿌연 먼지와 매연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사는 라사’에 들어선 것이다. 
해발 4000m가 넘는 척박하기 그지 없는 티벳 고원지대이지만 칭창열차가 지나가는 철길 주변에서 유목민들이 야크와 양들을 방목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열차는 시닝 출발 24시간 만인 18일 오후 4시50분에 라사역에 도착했다. 세계의 지붕인 티벳의 중심도시이자, 신비로운 티벳 불교의 성지인 라사에 도착한 것이다. 세계의 고원을 ‘무사히’ 넘었다는 야릇한 흥분도 몰려왔다.

라사의 포탈라궁(布达拉宫)을 본떠 만든 역사 한복판에 ‘과학을 발전시키고 해방사상을 새롭게 개척한다’는 공산당의 선전문구가 도전적으로 내걸려 있었다. 기분이 야릇했다. 무장한 인민해방군이 출구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공안(경찰)들은 경직된 표정이었다.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왔다. 티벳인의 정신적 고향에 왔다는 낭만에 빠져 있던 내게 찬물을 확 끼얹는 듯 했다. 실상 여기는 중국의 최대 골치거리인 소수민족 문제의 최전선이자 아슬아슬한 분쟁지역이었다.

역을 빠져나오자 티벳 출신의 28세 청년 가이드가 하얀 천을 목에 걸어주며 티벳식 환영식을 베풀어 주었다. 1500년 전 중국-티벳 외교에 역사적 다리를 놓은 당 태종의 딸 문성공주가 티벳의 전설적인 왕 송캄쳄포에게 시집올 때도 이런 식의 환영을 받았을까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 6박7일간의 ‘허가된’ 티벳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24시간의 칭창열차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흥분, 환상 그 자체였다. 대자연의 웅장함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끈질김, 거기에 철길을 낸 중국의 저돌성 등이 응축된 한편의 드라마였다. 원초적인 생명과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에 대한 끝없는 생각과 성찰을 요구하는 여정이었다.

칭창열차에서 넋을 잃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아내가 “여기가 중국여행 강추 1번!”이라며 기존의 ‘강추 1번=항저우‘ 입장을 바꿨다. 나도 “중국 여행을 하려면 칭창열차를 타봐야 한다”고 맞장구 칠 수 밖에 없었다.

자유기고가/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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