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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톤 전각석에 불경10만자 새긴 菊堂,"법화경이 나를 살려.."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 온 세상에 자비를 전하기 위해 오신 부처님의 탄신일을 목전에 두고 우리 불교계는 도박 파문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승려들의 도박은 도박이 아니라 치매 예방을 위한 내기 문화’라는 강변까지 접한 국민은 그저 허탈할 뿐이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한 작가가 ‘대승불전의 백미’인 법화경 전문을 6년여에 걸쳐 완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반갑기 그지없다. 그 주인공은 서예전각가 국당(菊堂) 조성주(61) 화백. 국당은 2000일간 피땀 흘려 완성한 작품을 집대성해 ‘법화경 불광(佛光)전’을 개막한다. 진흙과 연꽃, 법화경은 중생이 불보살로 거듭나는 가르침이어서 하얀 연꽃에 비유된다. 어지러운 시대에 그 하얀 연꽃이 우리 앞에 활짝 피어났다.

# 국당을 살린 법화경= 지난 2007년 국당은 일생일대의 시련을 맞는다. 세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재충전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계는 풍비박산이 났다. 청천벽력이었다. 액수만도 수억여원. 글씨 쓰고, 각(刻)을 해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하늘은 노랗고 가슴은 두근대며 온몸의 힘은 빠지고….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샜다. 바로 그 때 불교 전시기획자이자 무용가인 전수향 씨가 그에게 법화경을 건넸다. 국당은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몸과 마음을 조금씩 추슬렀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하나둘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이에 전 씨는 국당을 엄청난 규모의 아트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 무거운 돌 지고 정릉 언덕길을 오르내리길 수백번= 기획자인 전 씨의 독려에 국당은 법화경 총 28품의 전각 설계에 들어갔다. 경전의 7만자를 모두 모눈종이에 쓰고 번호를 매기며 부처님의 설법 장면인 영산회상도 등 그림과 문양을 혼합해 디자인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설계도에 따라 한 자 한 자 돌에 새기는 작업을 하루 15시간씩 매달렸다. 너무나 막막하고 끝이 보이지 않아 중도에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2000일을 헌신한 끝에 마침내 법화경 7만자는 전각 작품으로 탄생했다.

그가 이번 작업에 사용한 돌은 5t. 돌 값만도 4억원이 들었다. 무거운 돌을 자동차에 싣고 정릉 집과 인사동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했던 그는 가계가 파산하는 바람에 산 지 1년도 안 된 자동차를 1000만원이나 손해 보고 팔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배낭에 무거운 돌을 잔뜩 담아,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집과 작업실을 오가면서 작업했다. 오뉴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정릉 집 언덕을 오르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곤 했다. 지금이라도 그만 두자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그러나 이렇듯 힘든 고비 때마다 기획자인 전 씨는 국당을 성원하고 독려하며 전무후무한 전람회를 성사시켰다.


# 그냥 전각이 아닌 하이퍼 전각= 전각은 흔히 ‘방촌(方寸) 예술’로 불린다. 사방 한 치(약 3㎝) 내외의 인면에 글과 그림을 새겨넣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당은 사방 8㎝, 심지어 무게 50㎏에 이르는 20㎝ 크기의 돌도 사용했다. 거기에 쓰고, 그리고, 새기는 서ㆍ화ㆍ인에 디자인, 조각이라는 요소를 결합한 ‘음양각의 입체 각석 작품’인 셈이다. 기법도 국당 스스로 창안한 퍼즐과 모자이크 방식을 대입했다. 그의 말로는 이같은 방식의 작품은 아직까지 세계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초유의 설치미술 작품이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초월을 뜻하는 ‘하이퍼 전각’이다.

이번 전시(5월 24일~6월 4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 나오는 메인 작품 ‘불광-대자비’는 길이가 무려 5.8m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를 여러 점 제작해 전체 작품설치 길이는 70m에 이른다. 법화경은 7만자이지만, 여타 경전까지 합치면 총 10만자다. 국당은 작업 기간 내내 고려 팔만대장경을 생각했노라고 했다. 정치ㆍ경제ㆍ사회가 모두 어수선한 작금의 현실이 희망차게 바뀌길 염원하면서 한 칼, 한 획을 새겨나갔다는 것. 또 오랜 침체에 빠진 우리 불교미술이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양은용 교수(원광대 한국문화학과)는 국당 작품을 ‘영산회상의 연꽃만다라’라 부르며 “한 작가의 예술혼에 의해 석존 정각에 바탕을 둔 구세 경륜이 경전에 머무르지 않고 지구촌을 정화할 연꽃으로 피어올랐다”고 평했다. 


# 수염까지 디자인하는 서예가= 외모에서 국당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가 수염이다. 그를 만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언제부터 수염을 길렀느냐”고 묻는다. 국당 대답은 이렇다. 한ㆍ중 수교 직전인 1992년 국제서법연합 사무국장이던 국당은 서예계의 거목 여초(如初) 김응현, 스승인 구당(丘堂) 여원구 선생과 중국에서 열린 행사에 참가했다. 그가 묵은 호텔에 면도기가 없어 1주일 이상 면도를 못했단다. 그런데 여초 등이 부쩍 자란 수염을 보고 “멋있다. 아예 수염을 길러 보라”고 해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 한ㆍ중 수교가 20년이듯 그가 수염을 기른 지도 20년이다.

국당은 자신의 수염을 공들여 손질하며 늘 모양을 낸다.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는 여타 수염쟁이들과는 다르다. 주위의 한 화백은 국당을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삼국지 관우(關羽)의 호인 미염공(美髥公)에 빗대 ‘조미염공’이라 부른다. 국당이 서예에 디자인을 접목하기 시작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 붓과 칼은 업(業), 그러나 단순한 건 싫다= 국당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붓을 잡았다고 했다. 그저 습자시간에 배운 것이지만 글씨 잘 쓴다는 소문에 중ㆍ고교 시절 내내 환경미화를 도맡았고, 군에서는 차트병으로 복무했다. 인천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예학원에 다닌 지 2년 만에 지도강사가 “더 가르칠 게 없으니 큰 스승을 찾아보라”고 했단다. 1980년 구당 여원구 선생의 전각 특강을 듣고는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가이자 전각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7년 국당은 불교경전 금강경 5400여자를 1200여방(方)의 전각으로 완성해 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는 서예계는 물론 불교계에서도 엄청난 화제였다. 서예가에게 금강경은 꼭 써보고 싶은 글감이지만 글자 수가 많아 쓰기 어렵다. 쓰기 전에 치밀한 설계가 필수다. 금강경을 쓰겠다고 해놓곤 붓을 내려놓은 서예인이 한둘이 아니다. 국당은 이 어려운 금강경을 아예 방대한 규모의 각으로 완성했으니, 그의 작업량과 열정은 짐작할 만하다. 더구나 이번 출품작 ‘불광’은 금강경의 10배는 되고도 남으니 그야말로 온 생애를 건 투혼이었던 셈이다.


# 아직도 접지 않은 노래의 꿈= 국당은 글씨와 전각으로 일가를 이뤘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꿈이 있다면 ‘노래’다. 스무 살 무렵엔 가수가 되고 싶어 열병을 앓았다. 그리곤 마침내 2007년부터 음반 ‘궤적’ 1, 2집을 냈다. 남들은 여유가 많아 음반을 낸 줄 안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해, 희망의 끈을 잡기 위해 음반을 냈다. 그래서 음반엔 슬픈 노래들이 빼곡하다. 국당은 자신이 ‘노래하는 서예가(음유서가)’로 불리길 바란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또 한 차례 음반을 낼 계획이다. 이번엔 잡아 빼고 꺾는 노래를 부르겠단다. 음악과 서예를 접목한 ‘서예 콘서트’도 기획 중이다.


뒤늦게 디자인도 공부한 국당은 지난 2006년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파리 패션쇼에서 서예필묵을 패션에 접목시켜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또 커다란 대붓 필묵 퍼포먼스를 완성해 서예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아셈(ASEM)회의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서 무려 100여회의 서예 퍼포먼스를 펼쳤다.

온 우주 만물에 생존하는 생명을 사랑하고, 서로를 귀히 여기라고 가르치는 법화경을 6년여의 각고 끝에 찬란하게 새겨낸 국당은 앞으로 우리 불교미술과 서예전각이 대중과 가까워지는데 더욱 헌신할 참이다. 02)732-2525 

yrlee@heraldcorp.com




▶작품을 살펴보는 작가 얼굴사진

부처, 용, 거북 형상의 크고 작은 인장석 수백점에 전각작업을 한 후 이를 살펴보는 국당 조성주 화백.

▶작품 사진설명

국당 조성주 작 ‘세간도’.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새겨 부처의 자비와 거룩함을 강조했다.

국당 조성주 작 ‘법화경 題印’. 설법하는 부처님의 장엄함을 드러낸 작품이다.

국당 조성주 작 ‘33관음도’.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를, 좌우에 33인의 보살을 새긴 창작불화 작품이다. 수많은 연화를 곁들였다.

국당 조성주 작 ‘해탈’. 전각석 120편에 법화경 글귀와 부처님, 소용돌이 등을새겨넣은 새로운 방식의 창작작품이다.

국당 조성주 작 ‘불광2-대자비’. 법화경 28품 중 수품인 서품을 비롯해 4개품의 1만8883자를 새긴 가로 6m의 대작이다. 서예, 전각, 디자인이 총아를 이루며 신개념의 불교미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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