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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터株 영욕의 12년… ‘빛과 그림자’는?
【헤럴드경제= 한지숙 기자】‘대주주가 등록 이후 지분을 팔아 동종 경쟁 업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내용을 공시하라.’

지난 2000년 3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를 통과할 때는 이런 단서 조항이 붙었다. 연예매니지먼트기업이 공식 루트를 밟아 코스닥에 입성한 것은 당시로는 처음 있는 일. 연예기획사에 덧씌워진 두터운 의혹의 시선을 벗기란 간단치 않았다. 대주주의 ‘먹튀’ 등 뒤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관리감독 당국이 대주주이자 대표였던 이수만 프로듀서에게 일종의 안전장치를 달았던 셈이다.

1990년대 중반 1세대 아이돌그룹 ‘HOT’와 ‘SES’를 키워낸 SM은 대영에이엔브이와 함께 이렇게 어렵사리 코스닥의 정문을 통과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HOT’는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로, ‘SES’는 ‘소녀시대’로 바뀌었을 뿐 시장과 투자자가 우려했던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 외형은 커졌고 내실은 탄탄해졌다. 매출은 8배, 영업이익은 12배 불어났다. 기업 제품에 해당하는 소속 아티스트 수가 다양하게 늘었다. 수요 시장은 국내에서 전 세계로 넓어졌다. SM은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명실상부한 수출 효자 기업이다. 이 프로듀서는 이제 K-팝(Pop)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1월 한류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자리에서 이 프로듀서는 “과거 현진영이 무대에서 팬티가 나왔다며 금지를 당한 적도 있었고, HOT의 문희준이 노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로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며 감개무량해했다. 장인 혼이 담긴 그의 수상 소감은 12년 전 그를 향했던 의혹의 시선들이 부끄러우리만큼 당당했다. “연예계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연예계에서 죽을 것이다.”

▶언제까지, 어디에서까지 빛날 수 있을까=SM을 필두로 한 엔터테인먼트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알토란’ 투자 대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확산되면서부터다. 전 세계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서비스되는 뮤직비디오 동영상을 통해 K-팝 그룹의 군무를 따라하는 ‘커버댄스’ 문화가 절로 생겼다. 이는 곧장 불티나는 공연 티켓 판매로 이어졌다. 불과 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SM은 2009년까지만 해도 국내 시장 중심이었고, 적자도 심했다. 2009년 동방신기의 인기가 궤도에 올라 해외에서 한 공연이 2010년 상반기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양적ㆍ질적으로 달라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 지역에서 동방신기와 소녀시대의 음반을 전혀 내지 않았는데도 공연이 매진 사례를 빚는다. 이 열풍이 단기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종 업계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SM에 이어 10년 만에 코스닥에 직상장하면서, 투자자의 관심은 온통 엔터테인먼트주(株)로 쏠렸다. SM의 시가총액이 한때 1조원을 넘었는가 하면, YG 대주주 양현석 프로듀서는 이수만, 키이스트 대주주 배용준을 제치고 연예계 주식 부자 1위에 올랐다.

요즘 증시가 유럽발 리스크로 주춤하는 사이 엔터테인먼트주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지만 증시전문가들은 SM과 YG의 실적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입을 모은다.

김창곤 대우증권 연구원은 “SM이 지난해 동원한 공연 관객이 58만명이었는데, 올해 8월까지 ‘SM타운’ 관객 수는 103만명으로 확정 상태이며, 연말 150만명까지 무난할 것으로 본다. YG도 지난해 17만명에서 상반기에만 30만명이 공연을 봤다. 우리나라보다 10배 큰 일본 음악 시장에서 이제 막 점유율 5%를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성장성을 높게 봤다. 김 연구원은 K-팝이 반짝 열풍에 그칠 것이란 일각의 시각에 대해 “과거 국내에서 불던 홍콩 영화 인기처럼 시들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항시 존재하는 리스크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현정 SK증권 연구원도 “매출을 쉽게 예측할 수 없고 흥행에 좌우되며 인적 리스크란 한계는 있지만, 제조업이나 대기업에도 리스크는 존재한다. 주요 아티스트들이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뤘고, 아티스트를 활용한 드라마 제작 등 사업 영역 확장도 긍정적이어서 중장기적으로 좋다”고 내다봤다.

해외 시장 전망은 낙관적이다. LIG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엔터&미디어 시장 규모는 지난해 1700조원에서 올해 1800조원으로 6.4% 증가가 예상된다. SM의 매출 의존도가 높은 세계 1위의 음악 시장 일본은 194조원에서 204조원으로 5% 성장이 전망된다.

▶제2ㆍ제3의 SM, 드라마 제작 분야 SM은?=상장사 가운데 방송 외주 제작 대표주 팬엔터테인먼트가 SM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비스트’ ‘포미닛’을 소속 가수로 둔 큐브엔터테인먼트, ‘티아라’의 코어콘텐츠미디어 등 동생들이 맏형 SM과 같은 규모로 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외주 제작사는 방송사에 묶여 자유롭게 사업을 전개할 수 없는 점이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신인을 발굴해 음반ㆍ음원ㆍ공연, 광고CF, 드라마 출연, 초상권 판매 등 여러 형태로 사업화가 가능한 SM이나 YG와 달리, 팬엔터테인먼트 초록뱀미디어 IHQ 등은 드라마 저작권과 해외 사업을 방송사와 나눠 가진다. 팬엔터테인먼트는 음반 기획, 매니지먼트 사업을 영위하지만 1분기에만 이 같은 드라마 매출 비중이 80%가 넘는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SM의 10분의 1도 못 되는 400억원 미만. 시장에서 ‘대접’이 다르다는 얘기다. 김창권 연구원은 “외주 제작사의 매출구조는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코어콘텐츠미디어와 ‘제국의 아이들’의 스타제국, ‘씨스타’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장래에 상장을 추진 중인 2군 기획사들은 아직 경영 체계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대표가 기획ㆍ경영ㆍ재무 등을 총책임지는 1인 형태 기업인 탓에 경영자의 모럴해저드나 잘못된 경영 판단 등 경영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먼저 없애야 한다.

이현정 연구원은 “국내에 수많은 기획사가 생겨났고, 경쟁도 더욱 심해졌다. 신생 기업이 경쟁을 통한 질적 검증을 거치고 노하우를 쌓아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SM이나 YG 같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기획사가 나오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림자는 옅어졌을까=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 만큼 그 이면의 그림자도 짙다. 우회 상장, 빈번한 상호 변경, 잦은 주인 교체,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 상장 폐지 등이 엔터 분야에선 유독 잦았다.

유재석 강호동 등 유명 MC군단으로 이름을 날린 팬텀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 골프공을 만든 팬텀을 통해 2005년 음반회사 이가엔터테인먼트와 비디오ㆍDVD 유통사 우성엔터테인먼트가 동시 우회 상장한 뒤 플레이어엔터테이먼트를 잇달아 흡수ㆍ합병하며 각종 ‘재료’로 한때 주가가 37배 이상 급등하기도 했던 회사다. 하지만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횡령 및 배임 사건이 불거져 2008년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드라마 ‘주몽’ ‘황진이’의 제작사 올리브나인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다 2010년 ‘상폐’의 전철을 밟았다.

코스닥에선 또 회사와 아무 관련 없는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주가를 조작하는 일도 허다했다. 스타의 지분 매입 소식은 개미투자자들의 관심을 사 주가를 띄우기 좋은 ‘재료’이기 때문.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이 유명하다. 2005년 PV 제조사인 ‘뉴보텍’은 ‘주식회사 이영애’를 설립, 연예 사업에 진출한다고 허위 공시를 냈다가 이영애로부터 피소당한 사건이다. 이 회사 대표는 지난해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수 ‘비’ 역시 ‘먹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2007년 비는 지인과 함께 매니지먼트회사 제이튠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우회 상장했다가 2010년 주식 전량을 매각, 투자자들로부터 주가 급락의 ‘주범’이란 맹비난을 받았다.

한승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엔터기업이 좋아지고 있고 지속성 있는 회사도 있지만 시가총액이 작고 ‘이벤트’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어, 분석하는 입장에선 주가 예측도 잘 되지 않고 연예업의 속성상 분석하기 복잡하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과연 ‘가치투자’가 가능한지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한다”고 투자에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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