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6시 서울 흑석동 중앙대 유니버스시티 클럽 11층에서 열린 민병문 시인(본지 고문)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53년 우정의 시화집 ‘새벽에 만날 달’(온북스) 출판기념회는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처럼 고희를 훌쩍 넘기고도 청춘의 꿈을 실현시킨 우정의 산물이란 점에서 특별했다. 노년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풍경을 담은 시와 박용성 회장의 응시적인 작품 사진이 어울린 시화집은 시중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959년 서울상대 17기 동기생인 민 시인과 박 회장은 언론인과 기업인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번 시화집을 통해 예술가로서 제대로 조우한 셈이다.
민 시인은 애초 문학청년이었다. 50년대 후반 황폐한 시절, 헛헛한 학생들의 마음에 등불처럼 길을 비춰 준 잡지 ‘학원’에 등단, 촉망받던 학생문인이었다. 박용성 회장 역시 젊은 시절 예비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며 카메라 공부에 빠져들었다. 다만 박 회장은 분초를 아끼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치열한 경영 현장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사진을 찍어 왔다. 현재 60만장 이상의 동식물 등 다양한 사진을 두산백과사전 엔싸이버에 지식공유를 위해 올리고 있다. 반면 민 시인은 정론직필의 언론인 길을 걸어오며 시와는 멀어졌다. 그러던 게 늦바람 시혼이 찾아와 3년 전 첫 시집 ‘서리풀공원’을 냈고, 이번이 두 번째 시집이다.
주위에선 둘을 ‘이상한 커플’로 여긴다. 언론인과 기업인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을 뿐 아니라 얼핏 외모로 볼 때도 서로 어울릴 성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신에 여려뵈는 민 시인과 달리 ‘대륙적’ 기질이 엿뵈는 호탕하고 단단한 체격의 박 회장의 오랜 ‘동거’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마련이다. “단지 대학을 같이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50년 우정을 지켜올 수 있는지 이상하다”며, 이날 출판기념회 축사에서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둘의 관계를 70년대 미국 ABC 드라마 ‘오드 커플(‘The Odd Couple’)’에 빗댔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서 민 시인은 “우리 사회가 요즘 막말 사회가 되면서 국가 품격이 떨어진 건 시를 읽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그리 된 것 같다”며, 정치인들도 시를 알아야 유머도 생기고 몸싸움 국회도 사라질 것이라고 ‘시 읽는 사회’를 제안했다.
박 회장은 당초 시화집 출간에 대해 “대한체육회장이 별일 다 한다는 소리나 듣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찜찜한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이날 “시집에 실린 사진을 보니 너무 좋다”는 소회를 밝혔다.
차인태 MBC 나눔 고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출판기념회엔 민 시인과 박 회장의 반세기 우정을 지켜보며 교유해온 100여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이동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 이필곤 전 삼성자동차 대표이사 회장, 손길승 SK 명예회장,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안공혁 전 손해보험협회장, 김진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위원장, 박승철 삼성서울병원 VIP 진료실장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칠순 청춘’들이 대거 참석, 성황을 이뤘다.
/meelee@heraldcorp.com,사진=박현구 기자/ph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