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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혹한 지존파…왜 끌어냈을까?
유현산 두번째 미스터리 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출간
시대를 뒤흔든 사건 토대로…가상의 범죄 집단 설정
사회 모순 담담하게 묘사…다음엔 조선족 조폭 다룰것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10월 9일, 벌건 대낮에 재소자 이송 중 집단 탈주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지강헌 등 12명의 대탈주극은 지강헌의 인질극과 함께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유명한 말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1994년 유례 없는 폭염으로 들끓던 여름, 충격적인 사건이 대한민국을 다시 뒤흔들어 놓는다. 일반 주택에 살인공장을 만들어놓고 무차별 폭력과 살해를 일삼은 범죄집단 지존파의 검거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에 들떠 있던 시기에 벌어진 두 사건은 조용한 일상 아래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사회의 폭력적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소설가 유현산의 장편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네오픽션)은 한국 범죄사상 가장 잔혹한 집단으로 기억되는 지존파를 모티브로 ‘세종파’라는 가상의 범죄집단을 상정, 90년대 사회적 모순과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학교 내 서열 2위이자 반항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서기표, 큰 덩치에 어릴 적부터 옆집 친구로 함께 놀았던 신정수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김다윗, 작고 왜소한 체격에 다윗의 말은 무조건 따르는 신정수, 그들보다 두 살 많고 예쁘장한 외모에 학교 서열 1위의 독한 싸움꾼 이세종과 시골에서 서울 변두리 인생으로 편입된 한동진의 초등학교 시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만 오면 침수구역으로 변하는 안양천변 빈민촌 아이들은 냄새 나고 끈적끈적한 동네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며 혼돈의 청소년기를 보낸다.

비열한 현실을 몸으로 체득하며 분노를 쌓아온 세종은 허무주의에 빠진 한동진을 제외하고 1993년 세종파를 결성한다. 이들은 조직의 단합과 범행자금 조달을 위해 납치, 강간, 살해를 일삼지만 스스로의 행동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가진 자들은 도덕성이 결여된 자들이고, 이들의 돈을 빼앗는 건 정의로운 행위라고 정당화하는 식이다. 

‘살인자의 편지’로 2010년 자음과모음 제2회 네오픽션상을 수상한 유현산 씨가 두 번째 미스터리 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냈다. 유 씨는 지난 25일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범죄집단 지존파를 사회현상적 측면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작가 유현산은 90년대, 지존파를 주목한 이유를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의 출발점이자 성찰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는 신자유주의, 소비자본주의를 부르짖던 90년대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합리적인 질서가 올 거라 생각했던 시대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밑바닥엔 박탈감이 있었고, 그것이 조직범죄 사건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범죄가 사회악에서 출발한다든지, 개인은 허수아비처럼 휩쓸려갔다는 식의 도식화는 위험하다는 게 유 씨의 입장이다.

잡지사 기자생활을 하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유 씨는 유영철 사건을 조사하다 지존파를 다시 보게 됐다. 소설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고치길 여러 번, 마지막엔 3인칭이던 게 1인칭으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 유 씨는 ‘살인자의 편지’로 2010년 자음과모음 제2회 네오픽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 씨는 “스릴러지만 우리 사회와 밀착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다음 작품으로 조선족 조폭 범죄를 다룬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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