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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늦깎이 예술가…은퇴는 없다”
범죄사회학자서 장신구 디자이너로, 경제학자서 화가로…남다른 ‘인생 2막’ 즐기는 두 작가의 황홀한 노년
김인숙 교수
어린시절부터 유리공예 관심
전세계 돌아다니며 안목쌓아
개인전 ‘구슬정원’벌 써 9회째

정현식 교수
정년퇴임 무렵부터 미술수업
2011 대한민국회화대전서 특선
가족 등 주변 사람 즐겨 그려


은퇴 후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중년 모두의 고민이다. 여기 두 명의 학자는 인생 2막을 ‘예술’과 함께하고 있다. 한 명은 오색의 구슬을 꿰어 독특한 장신구를 만들기 바쁘고, 다른 한 명은 붓을 잡고 화폭을 채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대학교수였던 두 사람은 퇴임 전부터 틈틈이 준비한 덕에 자신만의 ‘꽉 찬 삶’을 영위하고 있다. 두 노(老)교수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보자.

▶범죄사회학자가 영롱한 장신구를?= 김인숙(73) 국민대 명예교수는 범죄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자다. 국민대 사회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그는 지난 2002년부터 ‘인생 2막’을 장신구 디자이너로 보내고 있다. 김 교수는 해마다 봄이면 ‘구슬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영롱하면서도 대담한 장신구를 선보이는 작품전을 연다.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개인전을 가진 그는 “어느새 내 개인전이 9회에 접어들어 스스로도 놀랐다”며 “강단에 서던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쌍용그룹을 창업한 고(故) 김성곤 회장의 큰 딸로, 남편(前 나라기획 조해형 회장)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둔 김 교수가 퇴임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는 “은퇴한 교수들이 마땅한 일을 못 찾아 방황하는 걸 많이 봤다. 그래서 미리미리 방도를 찾았다”고 했다. 때문에 2002년 퇴임과 함께 곧바로 장신구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영롱한 유리공예를 무척 좋아했다. 외국을 다녀온 아버지는 희귀한 유리공예품을 딸에게 안기곤 했다. 어른이 돼 더욱 유리에 빠져든 그는 대학원(미국 뉴욕대)시절에는 틈날 때마다 뉴욕의 앤티크 갤러리와 벼룩시장을 찾았다. 그러면서 점차 세월의 더께가 스민 낡은 구슬과 옥, 진주, 밀화(송진이 굳은 것), 산호 등에 마음이 끌렸다. 이후 교수시절에는 영국, 프랑스며 인도, 태국, 미얀마의 벼룩시장과 앤티크 페어를 부지런히 누볐다. 인도는 열 번도 더 갔다.

그렇게 모은 구슬과 희귀한 돌(준보석류)을 알알이 엮거나 이어붙이며 김 교수는 목걸이도 만들고, 브로치며 귀고리도 만든다. 철사며 철판을 수시로 구부리고 연결하느라 그의 손은 ‘사모님 손’과는 거리가 멀다. “좁쌀보다 작은 구슬을 일일이 이어붙이다가 밤을 꼴딱 샌 적도 부기지수”라는 그는 “고된 작업이지만 온전히 나만의 내밀한 순간이라 이를 즐긴다”고 했다. 게다가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김인숙표 장신구’를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의 장신구는 대담하다. 남들은 ’보석’이라 부르며 값을 자꾸 높이려들지만 애써 ‘구슬’로 낮춰(?)부르며 보다 많은 이들과 친근하게 소통하길 즐긴다. 다이아몬드 같은 고가의 보석 대신 낡은 청동구슬, 양식진주, 옥, 밀화를 즐겨 쓴다. 오래 된 골동품과 자연석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로움에, 그만의 독자적인 조형감각을 더하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공예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디자인은 공예가 못지않게 독보적이다. 10m 전방에서도 ‘김인숙 디자인’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한 게 특징이다. 기왕에 장신구를 착용한다면 올망졸망한 것보다는 하나를 달더라도 대담하게, 개성있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때문에 그가 만든 브로치를 달고 모임에 나가면 “어디서 그런 멋진 장신구를 구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게 된다.

그는 디자인을 할 때 되도록이면 동서양 미감이 공존하도록 한다. 또 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장신구를 즐길 수 있도록 진귀한 원자재값에 비해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있다. 그에겐 외국인 팬도 많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해외 정ㆍ관계 유명인사와 그들의 부인들이 그의 팬이다. 외국 전시 제의도 줄을 잇는다.

서울 이태원 자택의 좁은 방에 작업대를 들여놓고 장신구를 만드는 그는, 아버지(김성곤 회장)에 대해 묻자 “통도 크시고, 사업감각도 남다르셨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남자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작업을 하고 싶지만 중국인들이 옥이며 산호 같은 원자재를 싹쓸이해 문제라면서도 밝은 모습이다.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 않겠느냐”면서.

▶딱딱한 경제학자, 감성을 찾아 나서다= 성균관대 경제학과에서 30여년간 미시경제학과 국제경제학을 강의했던 정현식(70) 명예교수는 요즘 화가 데뷔를 코앞에 두고 있다. 정년퇴임(2008년) 무렵부터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해 그룹전에 몇 차례 참여해 오다가, 굴지의 아트페어(A&C아트페어)에 초대돼 단독 부스에서 작품전을 여는 것. 대치동 SETEC에서 5월 1일까지 열리는 이 페어에는 고(故) 백남준 작가를 비롯해 300여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

진주사범학교와 연세대를 거쳐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그는 “30여년간 경제학을 가르치며, 논리를 따져가면서 살았으니 이제는 감성적으로 살고 싶다”고 밝혔다. 딱딱한 경제학 논리와 수학적 마인드로 무장한 채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하며 팽팽한 접전을 벌였던 삶에서 멀어져, 정반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다는 것. 그래서 은퇴 후의 삶을 ‘창작활동’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미술 배우기에 돌입했다. 홍익대 미술교육원 등에서 미술의 기초와 유화실기 등을 배웠는데, 고교시절(진주사범) 여학생들과 야외 사생을 갔던 추억이 간간이 떠올라 좋았다며 미소를 짓는다.

“무엇이든 어린 시절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진주사범에 다닐 때 음악, 무용, 체육 등을 배워야 했는데 나는 미술반을 택해 들로, 산으로 사생을 제법 다녔다”는 그는 그 시절 배웠던 가락이 있어서일까 그림 솜씨가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매우 빼어나다. 미술작업에 대한 열망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끓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휴화산처럼. 그것이 발화돼 신명나는 붓질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까.

정 교수는 “그림은 대하면 대할수록 빨려 들어간다”며 “우리 주위에 그리고 싶은 게 무척 많다. 그림을 그릴 땐 정말이지 두통도 싹 사라진다”고 했다. 물론 아직도 캔버스에 마주 앉으면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할 때도 많고, 그림이 잘 안 풀릴 때도 많지만, 대상을 열심히 관찰하고 이를 그림으로 옮기며 몰입하는 순간은 말로 표현키 어려운 짜릿함이라고 밝혔다. 


누가 보건 말건, 인정하건 말건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해가 지는지 달이 뜨는지도 모를 정도라는 그는 지난 4년간 어느새 150여점에 달하는 유화를 그렸다. 인물화도 있고, 정물이며 풍경도 있는데 그의 곧고 성실한 성정을 닮아 작품들은 구도가 탄탄하고 섬세하면서도 맑은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정 교수는 “주위에서 화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직은 미술학도일 뿐”이라며 똑같은 대상을 그려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을 때 진정한 화가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올해 아내와 나는 고희를 맞는다. 우리 부부의 고희, 특히 아내의 고희를 기념하는 뜻에서 아내의 초상을 그려봤다”며 ’소피아(Sophia)’란 작품을 보여준다. 그 속에선 초로의 한 여성이 수줍게 미소짓고 있다.

이어 “그림을 그리면서 사물을 감성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감성적일수록 일상을 더 큰 감동으로 느끼며 살 수 있다”며 “당연한 것으로 지나칠 수 있는 대상에서조차 새로운 느낌을 받고 감동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더욱 풍요로운 삶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내 외에도 손자손녀 등 가까운 사람들을 즐겨 그린다. 비내리는 거리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우산을 받쳐든 채 뒤뚱뒤뚱 걷는 어린 아이를 그린 그림은 구도도 근사하고, 소녀의 표정이 생생해 몹시 사랑스럽다. 삶의 한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 이를 유려하게 표현한 그림의 매력이 잘 드러나 있다. 유화지만 기름기를 뺀, 담백하면서도 격조있는 그림이란 점에서 정 교수의 감춰진 역량을 엿보게 한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정 교수는 ‘미시경제학’ 등의 전공서적 외에 투안(Thuan) 대주교의 저서 ‘희망의 길’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요즘 들어 환경규제와 국제무역 및 산업구조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으로, 화가로써 인생의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즐겁게 직조하는 그는 묵직한 그림들을 가뿐히 들곤 “이제 그림을 완성하러 가야 한다”며 나섰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ㆍ박해묵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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