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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철 학원가, “족보 삽니다.”
[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K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21)씨는 얼마 전 5만원에 족보를 샀다. 족보는 이번 학기 수강하고 있는 수업의 지난 해 기출문제다. 족보를 구하기 위해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 “00수업, 족보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전공배정을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해당 수업에 대한 정보도 없고, 시험에 대한 불안함이 큰 상황에서 족보는 매우 절실했다. 다행히 몇몇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 중 한 학생이 5만원에 족보를 팔았다.

S 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7) 씨도 최근 복수전공하는 경제학과 수업의 중간고사 족보를 구했다. 지난 해 가입한 학회 선배가 제공한 것. 복수전공을 해서 경제학과에 인맥이 없어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매번 시험 때마다 지난 학기와 100% 똑같은 문제를 출제하는 교수의 수업이기 때문에 족보를 구하는 것이 학점의 당락을 좌우한다. 취업을 앞두고 있어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족보는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다행히 족보를 구해 이번 중간고사는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취업난으로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대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가에 꾸준히 있었던 ‘족보 구하기 전쟁’도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 족보를 구하기 위해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거나 일부러 새로운 인맥을 만드는 것.

대학생들이 시험기간에 족보를 구하는 게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선배들이 같은 학과 혹은 동아리 후배들에게 자신이 본 시험의 족보를 물려주는 일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현상은 족보를 물려줄 선배가 없다는 점이다. 학과 활동이나 동아리 등 대학에서 단체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줄어들면서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인맥을 찾기도 힘들어졌다.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 족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일부 학생들은 족보를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학회나 학과 내 소모임에 가입하기도 한다. 학회나 소모임에 가입하면 취업에 필요한 정보도 얻고, 인맥을 형성해 족보도 구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올해 Y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모(25·여) 씨는 지난 마지막 기말고사 때 경제학과 클럽에 가입해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함께 족보를 풀어 답을 만들어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문제는 족보에서 숫자도 바뀌지 않고 똑같이 나왔다. 이 씨는 “취업을 앞두고 학점 세탁 고민하는 고학번들이 선호하는 수업”이라며 “이렇게 족보를 구하면 시간도 안 뺏기고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족보의 매매도 이뤄진다. 한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족보를 주면 사례 하겠다’는 게시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게시판에는 ‘00교수님 수업 족보 구합니다. 협의 후 사례’ 혹은 ‘5만원 주겠음’이라는 제목을 단 글들이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4월 들어서만 수십 건 게재돼 있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모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ID 드렁***은 게시판에서 “시험지 유출이 불가능한 과목의 시험 문제를 규모가 큰 특정학회가 조직적으로 매 학기 시험 문제를 복기해서 족보를 만들고 자신들끼리만 공유한다”며 “공부하려고 모이는 학회에 족보 때문에 가입하는 학생도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ID ‘㈜문제***도 “학점이 상대평가로 매겨지는데 특정 학회가 배타적으로 족보를 관리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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