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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마다 ‘장’ 섭니다…5일마다 ‘情’ 팝니다
사람 냄새에 삶의 향기까지 품은 전통 오일장…시골 아낙들의 수다에 상큼한 봄나물 좌판 넉넉한 시골인심 한가득 장만하고…
모시 거래되는 국내 유일 한산오일장…상인간 팽팽한 긴장감과 ‘밀당’ 흥미

지리산서 난 약재·산나물이 모인 구례…투박한 사투리에 살가운 정마저 느끼고

조선 3대 장으로 불리는 안성장…안성맞춤박물관서 유기제작과정도 한눈에


봄 하면 ‘꽃구경’이다. 하지만 사람 냄새, 삶의 향기까지 품은 ‘진짜 봄’을 느끼기엔 전통 오일장만한 곳이 없다. 시골 아낙들이 캐낸 향긋하고 상큼한 봄나물이 좌판에 가득하다. 인근 바다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도 장터 한켠을 차지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뜨끈한 가마솥국밥이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국밥뿐만 아니라 넉넉한 시골 인심까지 어우러져, 장터는 말 그대로 ‘구수하다’. 매월 1과 6으로 끝나는 날, 혹은 3과 8로 끝나는 날 등 지역별로 장 서는 날도 다양하다. 충청남도 한산장, 전라남도 구례장, 그리고 서울 인근 안성장까지. 오일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보면 완연한 봄을 만나게 된다. 


모시전이 열리는 한산오일장(충남 서천 한산)

한산오일장은 모시가 거래되는 국내 유일의 전통시장이다. 천년 역사의 한산모시짜기 기술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한산오일장으로 간다. 한산터미널에서 한산초등학교 사이에서 열리는 한산장이 정기시장으로 등록된 것은 1926년. 한때는 현재의 4배 규모로 서천군에서 가장 컸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 바짓가랑이 사이로만 다닐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장이 본격적으로 서는 시간은 오전 9~10시. 하지만 한산장의 명물인 모시전을 보려면 새벽 6시 전에 한다공방 옆 모시거래장에 도착해야 한다. 4월부터 6월까지 성수기다. 모시전이 이른 새벽에 열리는 이유는 깜깜할 때 백열등에 비춰 보아야 품질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할머니들과 한푼이라도 깎으려는 모시상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과 ‘밀당’이 볼 만하다.

장터 초입 채소전 거리를 지나 어물전과 잡화전을 구경한다. 어물전의 주인공은 서천의 특산품인 박대. 꾸덕꾸덕하게 말린 박대는 찜이나 조림, 구이로 만들어 먹는다. 잡화전에는 검정, 노랑 고무줄부터 빨래집게, 면봉, 손톱깎이까지 ‘없는 물건’이 없다.

장터에서 5분 거리엔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1850~1927)생가와 전시관이 있다. 독립협회, YMCA, 조선교육협회 활동 등 월남의 일대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자녀와 함께라면 둘러볼 만하다. 1박2일 이상 여유롭게 일정을 잡았다면 자전거를 타고 금강변을 달려보자. 서천, 부여, 강경, 군산, 익산 등을 두루 지나는 7개의 자전거 테마 코스가 있다. 영화 JSA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과 폐교를 활용한 숙소 ‘갈숲마을’도 방문해 보자. 

200년 역사의 구례오일장에 가면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온갖 약재와 향긋한 봄나물을 만날 수 있다. 좌판들 사이로 오가는 투박한 사투리가 시골 장터의 풍취를 더한다. 
[사진ㆍ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약초ㆍ봄나물이 풍성한 구례오일장(전남 구례)

구례장은 산수유, 벚꽃이 줄지어 피어나는 지리산 자락에 있다. 산에서 나는 온갖 약재와 산나물이 모이는 곳이라, 구례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들뜬다.

구례오일장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그 어느 장터보다 ‘구수’하다. 번듯한 점포와 좌판들 사이로 투박한 사투리가 오간다. 깔끔하게 새단장한 모습이지만, 덤으로 나물 한줌 얹어주는 살가운 정과 풍취만은 예전 그대로다.

초입 골목길에 들어서면 은은한 약재와 산나물 향기가 반긴다. 산수유부터 당귀, 더덕, 칡, 생지황 등 약초들이 한가득이다. 생소한 약초에 대해 넌지시 물었을 뿐인데, 약재상 주인장은 다락 깊숙한 곳에서 떡하니 ‘귀한 것’을 한줌 꺼내어 준다.

지리산 일대 기름진 땅에서 나는 고사리, 쑥, 냉이 등 봄에만 만날 수 있는 산나물들이 곁들여지면서, 봄 장터는 더욱 풍성해진다. 할머니들이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내놓은 나물들이 먹음직스럽다.

구례오일장은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된다. 조선시대에는 섬진강 뱃길을 따라 타지 상인들도 와서 물건을 거래했다. 인근 화개오일장이 상설 장터로 변한 이후, 구례장이 섬진강 줄기에서 오일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전통 장터를 되살리는 취지에서 30여동의 한식 장옥과 4동의 정자를 갖춰 새롭게 단장했다.

약재를 파는 곳과 쌀을 파는 싸전이 어우러져 있고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면 채소전과 잡화전, 어물전이 이어져 있다. 골목 사이사이 분위기를 돋우는 감초 같은 상점들도 많다. 특히 대장간이 볼거리다. 시뻘건 불에 낫과 호미를 달구고 두들겨 대느라 이른 아침부터 열기가 후끈하다. 장터에 놀러 온 꼬마들에게는 투닥거리는 대장간 풍경이 마냥 신기하다.


‘조선 3대 장’ 명성의 안성오일장(경기 안성 서인동)

수도권에서 전통시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는 안성장이 있다. 안성은 예부터 산수가 온화하고, 자연재해가 없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안성은 경기와 호남바닷가 사이에 있어 화물이 모여 쌓이고 공장과 장사꾼이 모여든다”고 말하고 있다. 안성 중앙시장 주변에 ‘와이(Y)’자 형태로 늘어서는데, 길이는 약 1.5㎞이다.

안성장은 조선시대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조선 3대장으로 불렸다. 한양을 향하는 상품과 사람들이 안성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 ‘안성장은 서울장보다 두세 가지가 더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영조실록’에는 안성장이 서울 이현시장이나 칠패시장보다 커서 물화와 도적떼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시장은 초입부터 시끌벅적하다. 달래며 냉이, 두릅, 버섯, 더덕 등 나물과 채소, 푸성귀를 펼친 좌판이 늘어서 있다. 커다란 비닐봉지 한가득 담아도 5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덤으로 한 움큼 가득 더 담아준다. 어물전도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안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성맞춤’이라고 말하는 ‘유기’다. 안성 유기가 유명했던 이유는 깐깐한 서울 양반가들의 그릇을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 이 지역의 정교한 유기그릇 제작 기술은 당시 양반들이 선호하던 작고 아담한 그릇을 만드는 데 적합했다. 바로 여기서 ‘안성맞춤’이란 말도 생겼다. 장터 근처 안성맞춤박물관에서 유기 제작 과정과 특성을 모형과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박동미 기자/pdm@herald 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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