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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간다’…국악과 팝핀, 그리고 ‘힐링’이 있는 무대
국립창극단 주역·팝핀현준의 부인, 소리꾼 박애리의 삶과 무대
남편 팝핀현준과 한 무대서 호흡
마음 안 맞아 다툰적 없어
사전 리허설 거의 안할 정도

동·서양 스트링의 다채로운 앙상블
쇼스타코비치 ‘왈츠’에 팝핀 독무
판소리 ‘사랑가’는 현대버전으로

‘겨울 달도 희고
내리는 눈도 희다
마치 내 백발의 벗 같구나…’
‘단가 사철가’처럼
삶의 의미 되새길 공연됐으면


쌀쌀한 겨울날씨가 저만치 물러나는가 싶더니, 봄기운이 슬금슬금 우리곁에 다가왔다. 봄 햇살 한가닥, 향기로운 봄 내음 한 주먹씩을 담아 관객에게 선사하는 따뜻한 무대가 있다. 국립창극단 주역이자 팝핀현준의 부인, 만능 소리꾼 박애리가 오는 20, 21일 이틀간에 걸쳐 ‘박애리, 봄날은 간다’ 무대를 선보이는 것. 최근 국립극장 한 카페에서 만난 박애리(35)는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힐링(치유)’을 선물하고 싶다며 곰삭힌 듯 맛깔난 소리 한 자락과 함께 ‘소리’와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신명나게 이어갔다.

▶소리꾼 박애리와 춤꾼 팝핀현준이 만나면 어색하다고요? 천만에 말씀, 찰떡궁합= “현준 씨는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생각이 깊고 오히려 저보다도 진중한 면이 많아요. 춤에 대한 자기 확신과 가치관이 분명한 사람이죠. 학창 시절에 가세가 기울어 노숙을 하면서 지낸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춤 하나 바라보고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은 ‘팝핀 현준’이란 이름으로 살잖아요. 그 모습에서 ‘예술혼’ 같은 게 느껴지고, 저와 통하는 면이 많아요.”

소리꾼 박애리는 두 살 연하인 남편 팝핀현준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다. 단 20초의 공연을 위해 3박4일 이상 구슬땀 흘리는 걸 잘 알기 때문. 팝핀현준도 박애리가 북을 치며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대박’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이지만 이렇게 ‘무대’에 대한 열정과 소신은 마치 소울메이트처럼 일치한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도 ‘뛰다, 튀다, 타다’라는 공연 무대에서였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낳은 딸의 이름은 그래서 ‘예술’이다.

“뱃속에서 예술이처럼 박수를 많이 받은 아기도 드물 거예요. 울다가도 ‘아리랑’을 불러주면 뚝 그치죠. 태교엔 ‘모차르트’가 최고라곤 하는데, ‘우리 소리’도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해요.”

결혼 후엔 박애리와 팝핀현준이 함께 무대에 설 기회도 많아졌다. 출산 후 국립창극단에 복귀한 뒤 갖는 첫 무대, ‘봄날은 간다’에서도 부부는 함께 호흡을 맞춘다. 서로를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무대를 함께 준비해도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는 법이 없다. 그래서 사전 리허설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전체적인 그림만 그려지면 언제나 현장 분위기에 맞게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져요. 현준 씨는 똑같은 춤을 계속 춰야 하는 게 몸에 맞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본인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돋보여야 할 부분에서는 현준 씨가 저를 배려해주고, 저 또한 현준 씨의 춤이 선율에 잘 어울릴 수 있게끔 무대 한쪽으로 물러서서 노래하죠.”

▶관객들에게 ‘힐링(치유)’과 ‘국악의 매력’ 선사하는 것이 목표= “관객분들에게 ‘한편의 에세이를 읽은 느낌’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공연의 타이틀을 ‘봄날은 간다’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박애리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여유’의 참맛을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래서 공연 레퍼토리도 이런 느낌을 전할 수 있는 곡들로 정했다. ‘단가 사철가’가 대표적이다.

“단가 사철가 중에 ‘겨울 달도 희고 내리는 눈도 희다. 마치 내 백발의 벗 같구나. 병든 날, 근심걱정 하는 날 다 빼면 40년도 못되는 인생, 한잔 더 하시게’라는 대목이 있어요.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해요.”

한편, 이번 공연에는 ‘한’과 ‘애절한 정서’로만 대표되는 판소리의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이색무대가 많다. 드럼, 바이올린, 라틴타악 등 서양 악기와 대금, 피리, 가야금까지 두루 사용해 다채로운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매화 향기’(작곡 강성구)는 마치 영화음악 같은 느낌의 곡으로 관객들은 스트링 악기와 잘 어우러지는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또 판소리 ‘사랑가’의 한 대목을 현대 버전으로 개사한 무대도 이색적이다.

“원래 판소리 하면 전라도 방언이 딱 떠오르죠. 그런데 경상도 출신 이몽룡과 전라도 출신 춘향이가 사투리로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말을 섞어 대사를 주고받아요. 같은 내용이라도 관객들의 몰입도와 공감대를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재미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려고요.”

팝핀현준의 독무는 국악관현악단과 밴드가 함께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배경음악으로 펼쳐진다. 이어 팝핀현준과 박애리의 합동공연에서는 소리꾼 박애리와 춤꾼 팝핀현준의 공통된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제가 ‘엄마야 누나야’를 부르면 현준 씨가 춤을 춰요. 전통적인 소리와 현대적인 몸짓, 각기 다른 것이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이야기를 저는 소리로 하고 현준 씨는 몸으로 표현할 뿐이죠. 결국엔 무대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하나’가 될 거예요.”

박애리가 이처럼 무대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국악의 진짜 매력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9세 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해서 23세 때 국립창극단에 입단했어요. 창극배우로서, 소리꾼으로서 젊은 날을 다 바쳐 살아왔기 때문에 그만큼 애정이 깊어요. 판소리는 우주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도 국악의 매력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황유진기자 /hyjgogo@heraldcorp.com 

[사진제공=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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