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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범행까지…DNA는 다 알고 있다
피부각질·비듬·타액 등 극소량 세포에서도 추출 가능…세월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아 장기 미제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
밀폐 우주복 입지 않는한
범인 DNA 남기지 않기 어려워
몰카범 9년전 성폭행 들통
성범죄 기사 5년전 유괴 죄값

2000년부터 DNA 수집
벌써 1만9301건에 달해
2년간 676건 미제사건 해결
인권과 수사 조화가 숙제


[헤럴드경제=김재현 기자] #1. 지난해 10월. 충청남도 논산의 원룸촌에서 A(당시 39세) 씨가 휴대폰을 들고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커튼이 걷혀진 방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휴대폰을 창에 대고 기다리는가 하면, 여성용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칸막이 밑으로 휴대폰을 집어넣기도 했다. 바로 ‘여성 신체 몰카범’인 것. 20여 차례에 걸쳐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대던 그는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혀 논산경찰서로 끌려왔다. 이대로면 불구속 입건되고 벌금 얼마 정도 내면 끝날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입속 세포를 체취해 디옥시리보핵산(DNA) 감식을 의뢰한 결과가 그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었다. 그는 2003년 12월께 논산의 모 모텔에서 여성 혼자 자고 있는 방에 침입, 이불로 여성의 얼굴을 덮고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강간 피의자였다. 당시 현장엔 지문도 없었고, 피해자의 얼굴을 이불로 덮어 피해자가 A 씨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등 별다른 증거가 없어 10여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이었다. 그런 그의 덜미를 잡은 것은 바로 현장에 남아 있던 정액에서 채취된 소량의 DNA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의 이 DNA는 9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서버에 정보로 남아 A 씨를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려 온 것. 공소시효가 불과 1년 남은 상태였다. 결국 A 씨는 2003년 성폭행에 대한 혐의도 인정받아 구속됐다.

#2. 2010년 여성 승객을 태우고 가다 성폭행한 택시기사 B 씨. 그는 성범죄 사범으로 경찰의 신세를 졌다. 법에 따라 구강세포를 채취해 DNA 검사를 의뢰한 경찰은 얼마뒤 국과수에서 감식 결과를 회신받았다. 성폭행 여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그는 2006년 압구정동 부근에서 등교하던 C(납치 당시 10세) 군을 납치해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야산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어놓은 뒤 부모에게 2억원을 요구한 납치 피의자였다.

당시 C 군은 B 씨의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 혼자 밧줄을 풀고 집으로 돌아와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B 씨가 잡히게 된 화근은 바로 담배꽁초였다. B 씨는 납치 당시 초조한 마음에 담배를 피웠고, 그 담배꽁초를 야산에 함부로 버렸다. 경찰은 사건 당시 주변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수거했고, 여기서 DNA를 추출해 서버에 정보를 저장해뒀다. 결국 B 씨는 5년 전 저질렀던 유괴 사건의 죗값까지 치러야 했다.

이처럼 마법과도 같은 10년 전, 5년 전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경찰의 끈질긴 노력과 함께 DNA 감식 수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DNA 감식 수사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전자 정보 결합체인 DNA를 분석해 범인을 찾아내고 여죄를 밝히는 수사기법이다.


10년 전 살인. 당시 그는 들키지는 않았다. 몸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묻힐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절도 잡범(雜犯)으로 잡혔다. 그리고 DNA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10년 전 평생 묻힐 거라 생각했던 그 사건의 범인으로 붙잡혔다. 면봉으로 입에서 찍어낸 작은 DNA 때문이었다. DNA 수사. 평생 묻힐 범죄는 없다. DNA가 잡아낸다.                   [헤럴드경제DB]

DNA 수사…대체 뭐길래?

DNA는 A(아데닌), T(티아민), G(구아닌), C(시토신)의 네 가지 핵염기로 구성된 유전자 정보 집합체다. 이 네 가지 핵 염기가 어떤 순서로 결합되는가에 따라 유전정보가 달라지는데,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면 이 유전정보가 100% 같은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착안한 영국의 알렉 제프리 박사는 DNA 감식을 통한 범죄 수사기법을 창안해냈다. 현장에 남은 DNA 정보를 갖고 수사해 범인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DNA 감식 수사가 다른 여타 감식 수사보다 효과적인 것은 사람 신체 어디에도 DNA가 나타나며, 극소량의 세포에서도 이 DNA를 추출해낼 수 있으며,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갑만 껴도 나올 수 없는 지문이나, 신발만 바꿔 신어도 헷갈릴 수밖에 없는 족적과는 다르다. 머리카락이나 혈액ㆍ정액 등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시료는 물론이거니와 비듬ㆍ손톱ㆍ각질ㆍ소변이나 대변(혈액이 섞여 나올 경우), 입을 댄 컵이나 담배꽁초 등 DNA를 추출할 시료는 무궁무진하다. 한 마디로 자신이 지나간 현장에 DNA 시료를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면 우주복이나 방사선 차폐복ㆍ잠수복 같은 밀폐옷을 헬멧까지 갖춰 입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꼼짝마”, 언젠가는 잡힌다

한국은 이미 2000년 이후 범죄현장에서 추출된 DNA를 서버에 모아왔다. 이렇게 쌓인 자료만도 벌써 1만9301건에 달한다. 이어 2010년 7월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된 이후 살인ㆍ강도ㆍ성범죄 등 11개 죄목으로 입건된 사람의 DNA를 모아 대조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DNA만도 1만6707건이다. 이 두 개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 경찰은 지난 1년 10개월여 동안 모두 676건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냈다. 고작 2만건도 안되는 데이터로 676건의 사건을 해결해냈다는 것은 그만큼 DNA 수사가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현재 DNA 수사와 관련해 가장 큰 이슈는 인권과 수사와의 조화다. 영국의 경우 벌써 800만건, 미국의 경우 1000만건의 DNA 정보를 모으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2만건에에 불과하다. 이는 DNA 정보 역시 인권이며,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일부 반발의 영향이다.

경찰과 학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DNA수사학회’를 창립했다.

이 학회는 경찰 등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사람과 국과수 등 이를 분석하는 사람, 또 형법 학회 사람이 모여 어디까지 정보 수집을 허용하고, 어디까지 막아야 인권과 수사를 조화시킬지 고민하고 있다.

한편 DNA를 이용해 범인의 외양을 유추하는 기술 등을 어떻게 한국에 적용하는가도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어디까지 법제화해 허용하고, 어디부터 막을까에 고민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용석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DNA 수사기법의 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이를 한국에 적용하는 속도는 인권 등을 고려해 한 단계 늦어지고 있다”며 “인권과 수사를 잘 조화시켜 나가면서 진보된 DNA 수사기법을 발전시켜 나가면 언젠가는 한국에 ‘미제 사건’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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