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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말라, 겨울 인생들아, 그대들 화려한 젊은 날에/많이 오만하지 않았던가.//이제 엷은 추억을 남긴 채/소멸의 서러움에 젖어도/이미 겪은 무수한 풍상이/보석이 되어 위로한다.”(‘위로’)
“너를 내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내가 도리어 자유를 만끽한다.”(‘동행’)
“바람아, 아 바람아,/우리 함께 광야로 가자/길 없는 길 만들어 가면/거기 빛과 소금이 있어라.”(‘바람아, 아 바람아’)
뒤늦게 찾아온 시인의 시혼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사물과 자연에 예민하게 열린 감각들은 그들이 걸어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사념적이기 되기 쉬운 노년의 글쓰기와 달리 생동하는 시어들은 그래서 귀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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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들리는 휴일 아침/아내는 교회가고 빈집에 남아/FM방송 클래식에 몸을 맡긴 채/섹시한 노교수의 글을 읽는다.”(‘작은 행복’)
벗들의 실명이 등장하는 시들은 새로운 발견이다. 병실에서 만난 진념 전 장관, 눈이 작아 행복한 뚝심이 박용성 회장 등 시의 그물에 삐죽 얼굴을 내민 모습이 낯설다. 노년의 허전한 속을 보여주는 시들도 많지만 소위 ‘땡돌이’의 당참과 여유 때문에 한숨은 길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도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또 한 축인 언론인으로서 다져진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움이 번뜩인다.
“변호사,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벼슬길에 줄 선 어릿광대들/한세월 잘살자고 아등바등/뻔한 죄 지어놓고도 아닌 양/저마다 발뺌이 천리를 간다.”(‘무죄 선언’)
“자본의 정글 속에서/햇볕을 조금만 더 달라는/가냘픈 호소를/허공 중에 날려 온 나날.”(‘참회록’)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서리풀 공원’은 구호나 외침이 아닌 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막가파식 도로 개발 때문에 둘로 갈라진 서초동 사람과 동물, 곤충의 이산의 아픔을 담아낸 이 시집은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1년 후 예쁜 ‘누에다리’를 탄생시켰다. 서초구청이 8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남의 다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자연과 사물이 지닌 진면목을 보여 주려는 60편에 이르는 사진작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 관습처럼 굳어진 노년의 세계가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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