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해 3월, 한국의 서도호(Do Ho Suh) 작가가 이 미술관의 너른 방을 차지했다. 주홍빛 노방(얇은 비단같은 천)으로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듯한 계단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독립된 방을 고즈넉히 채우고 있다. 때문에 왁자지껄한 테이트 모던의 여타 전시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천정에 매달린 선홍색 계단을 접하는 순간, 관람객들은 대부분 숨을 멈추게 된다. 서도호는 “관람객들이 제 방에만 들어서면 갑자기 차분해진다네요. 명상적이란 말을 많이 듣죠”라고 했다. 그의 전시실은 테이트 모던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실 중의 하나다.
미술관측은 지난 2008년 런던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전시됐던 서도호의 ‘계단(Staircase)’ 작업에 매료돼, 퍼머넌트 컬렉션용 작품을 주문해 최근 소장하게 됐다. (참고로 서도호는 영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잇따라 전시를 개최했다. 2002년 런던 서펜타인갤러리에서 큐레이터 리사 코린(미국)의 기획으로 개인전을 열었는가 하면, 헤이워드갤러리의 기획전, 리버풀비엔날레 등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일본 도쿄의 도쿄도현대미술관(MOT+)에도 그의 ‘투영’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한옥의 솟을 대문을 푸른 헝겊으로 섬세하게 형상화한 이 작품 또한 반응이 매우 좋다. MOT측은 이 작품을 당초 6개월간 설치하려다가 1년 넘게 연장 전시 중이다. 이들 두 미술관 외에도 서도호의 작품은 세계 요소요소에서 만날 수 있다.
▶서도호를 키운 8할은 전통 한옥?= 서도호는 ‘예술 테러리스트’였던 고(故)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를 뛰는 한국의 여러 작가 중 단연 돋보인다. 서울대 미대및 대학원, 로드아일랜드대와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한 이래 지난 10여년간 서도호의 활동은 눈부시다. 2000년 뉴욕 PS1그룹전을 시작으로, 이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뉴욕 휘트니미술관,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 재팬과 모리미술관, 베니스국제건축비엔날레, 시애틀미술관 등 일일이 손꼽기 힘들만큼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요즘도 각국의 유명 미술관과 비엔날레 조직위는 그를 잡기 위해 바쁘다.
지금껏 서도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이다. 때문에 그는 ’집을 갖고 다니는 작가’로 불린다. 그 집은 섬세하게 손바느질로 ‘지은’ 집이다. 한지처럼 반투명한 천의 은은한 겹침과 손바느질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서도호의 집에 주목하게 하는 요소다.
그가 세계 미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게된 것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북동 한옥을 옥색 은조사로 지은 ‘서울 집/LA 집/뉴욕 집..’(1999)이 시초다.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한옥에서 살았던 독특한 경험과 건축적 특징, 그 정서까지 이 작품에 담아냈다. 벽이면서도 벽 너머의 공간이 보이고, 방에서 바깥의 자연을 볼 수 있게 만든 한옥집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서도호의 유소년기(1970~80년대)는 한국의 근대화가 한창이었던 시절이었다. 단연 양옥이 대세였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여의도 아파트가 최고의 선망이었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서세옥 화백)는 오히려 창덕궁 ‘연경당’의 사랑채를 성북동에 그대로 본따 지으셨어요. 구한말 마지막으로 궁궐작업에 참여했던 도편수를 수배해 그 목수와 함께 수년에 걸쳐 힘들게, 힘들게요.”
서도호는 당시엔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던 창덕궁 연경당을 부모님 손을 잡고 처음 찾았던 봄날을 잊지 못한다. 마침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한다. “그 공기, 지금도 코끝을 스치는 듯 해요. 적막함 속 찬란한 아름다움이 어린 저의 심장을 멎게 했죠. 그 후로도 몇 차례 연경당을 더 찾았고, 아버지가 고재(궁궐을 허물어 나온 목재)를 구해 연경당 사랑채를 지극정성으로 본따 짓는 과정을 지켜봤죠. 또 집안의 목가구, 콩땜 등에서부터 뜨락의 오래 된 소나무, 풀 한포기, 석물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가꾸고 꾸미는 부모님을 보며 저절로 자긍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곤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 새 세상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은 바로 그 한옥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서도호의 작품세계는 집을 떠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그에게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자,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우주적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히 소재로서의 집이 아닌 것이다. 그 집은 자아와 타자, 문화와 문화, 안과 밖 등 상이한 존재들의 관계맺음이 일어나는 장소다. 이 명징한 개념이 기반에 깔려, 그의 작업은 세계 미술계에서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 또 지역성, 특수성에 함몰되기 보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공간, 시공을 초월한 관점에서 표현함으로써 더욱 공감을 불러오고 있다.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 그 독특한 개념= 그는 ’집 속의 집‘이라는 새로운 관계항도 만들었다. 미국집 안에 한옥을 넣는가 하면 미국집에 한옥이 별똥별처럼 날아가 ‘꽝’하고 부딪히게도 했다. 최근 작업 중엔 뉴잉글랜드의 집 중앙에 한옥이 안착해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 작업의 개념은 연경당과 신기하리만치 맞닿아 있다. 순조가 창덕궁에 지은 연경당은 사실 양반가의 집을 그대로 본따 지은 것이다. 궁궐 속에 사대부의 집을 차용해온 것. 그 개념을 아버지는 양옥 일색이었던 성북동 주택가에 고스란히 옮겨왔고, 아들인 자신은 아버지가 지었던 한옥을 얇은 헝겊으로 다시 지었다. 그리곤 최근에는 서양집 속 중앙에 한옥을 집어넣는 작업도 했다. 공간의 재맥락화가 이뤄지며 순조가 시행했던 것이 부친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놀랍고 기묘한 전이인 셈이다.
또 집 속의 집이라는 개념은 ‘인연과 윤회’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나와 타자, 현세와 내세, 개인과 우주의 만남을 보여주는 ‘집 속에 놓인 집’이라는 상황은 작가의 카르마 (Karma, 업)와 같은 집적 조각이 보여 주는 관계와 윤회의 개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서도호의 작품은 다분히 개념적이지만 매우 아름답다. 치밀하고도 섬세한 작가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작가는 “외부와 단절된 건축이 아닌, 유연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추구하다 보니 반투명의 헝겊을 썼는데 그 때문에 아름답게 느끼는 듯하다”고 했다.
▶집과 옷에서 앞으론 삶의 전반을 아우를터= 서도호는 지난 2010년 결혼했다. 아내는 서도호가 거의 무명이던 시절, 뉴욕 개인전에서 그의 드로잉을 구입한 바 있다. 물론 작가는 그 사실을 당시엔 몰랐었다.
“지난해 1월에 딸이 태어났어요. 지금 14개월이에요. 그 아이를 보면 인간은 많은 걸 갖고 태어나는 듯해요. 자신만의 개성 같은 것이요. 보통은 주위 환경, 교육 등에 의해 인간이 많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딸을 보니 자신만의 것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신기하죠.”
분신이 태어나는 바람에 그는 다루고 싶은 테마가 더 늘어났다. 인간이 얼마만큼 태생적으로 주어지고, 얼마만큼 개척해 나가는지를 작품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졌다.
올해와 내년에도 그의 일정은 대단히 빠듯하다. 그중에서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주립대학의 7층짜리 건물 끝자락에 진짜 집과 정원을 짓는 작업은 특히 흥미롭다. 6월이면 마무리될 그 프로젝트는 헝겊 집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밟을 수 있는 목재 집이다. 동부(뉴욕)의 전형적인 주택을 서부(샌디에고)의 대형건물 옥상에 대롱대롱 매달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화제다.
서도호는 동부의 풀과 나무도 옮겨와 옥상에 심을 참이다. 과연 사계절이 분명한 동부에서 자란 식물이 따뜻한 샌디에고에서 잘 자랄지, 아니면 너무 잘 자라 옥상을 뒤덮을지 그 자신도 벌써부터 궁금하다고 했다.
오는 8월에는 일본 히로시마미술관, 11월에는 가나자와의 21세기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9월의 광주비엔날레와 덕수궁 내 함녕전 프로젝트도 잡혀있다. 또 대구미술관에서도 전시를 열 예정이다.
서도호는 지금까지 의식주 중 주(住)와 의(衣)를 다뤘는데, 식(食)에도 도전한다. 해외생활 중 늘 사무치게 그리웠던 어머니(정민자 아름지기 고문)의 음식을 따라 배우는 요리 프로젝트 등 그가 꿈꾸는 새 프로젝트는 보다 온기 있고, 보다 유연하다. 그러나 문화인류적, 문화사적 소통과 전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필시 서도호다운 작업이 될 듯하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삼성미술관 Le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