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대한민국 과힉기술 발전에 온 청춘을 바친 키다리 아저씨
휴먼다큐: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대담=조진래 산업부장

192㎝의 무척이나 큰 키, 늘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람. 차분한 학자풍의 이미지...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의 첫 인상은 ‘인자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정말 굴곡없이 평안하게 살아왔을 것 같은 느낌이 온전했다. 실제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삶에서 한 번도 위기 또는 실패라고 할 만한 사건이 없었다고 말한다. 오죽 했으면 부인마저 “대책없는 낙천주의자”라고 했을까.

“그래도 제가 전국체전 은메달리스트 출신이예요(웃음).” 전혀 의외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재학시절, 단지 키가 커 다리가 길다는 이유로 조정부에 스카웃됐다. “해군사관학교만 없었다면 당시 모든 조정대회 우승은 우리 몫이었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따뜻한 가슴 속에 숨어 있는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울산대학 총장에 취임하자 마자 교수 커리큘럼을 완전히 뜯어고친 강단, 비록 짧은 장관 재임기간 이었지만 초중고 교육은 지자체로 내려보내고 대학을 과학기술 연구개발(R&D)사업과 연계하려 했던 혜안, 그리고 젊은이의 도전정신과 청년창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에는 결연함 마저 느껴졌다.

그가 행했던 많은 임무들은 사실 녹록치 않은 것 들이었다. 그것들을 그가 자신의 일이라 여기고 특유의 낙천적 성격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힘든 줄 모르고’ 잘 넘겨온 것 뿐이다.

김 위원장은 52년생 용띠다. 올해 흑룡의 해를 맞았다. 국과위 출범 1주년과 함께 취임 1주년을 앞둔 그에게 올해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 과학과의 만남, 그것은 운명이었다

반평생 넘게 공학도로 살아온 김도연 위원장. 그는 처음부터 인생의 진로를 이공계로 택했을까. 의외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가 아닌 문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이었을까? 그 무렵 ‘공대 붐’이 거셌다. 의대보다 공대를 더 펴 줬던 때 였다. 결국 3학년 때 이과로 전과했다. 수학 때문에 처음에는 고생을 좀 했지만, 곧 성과를 냈고 “전망이 좋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서울대 재료공학과에 진학했다. 마침 포항제철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후 시험이라면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에 첫 기수로 입학해 석사를 마쳤다. 운 좋게도 프랑스 정부가 외교관계 개선을 위해 특별히 시작한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왔다. 이 유학은 향후 그가 문과와 이과를 넘나들며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밑거름이 됐다.

▶과학행정가, 연구원, 교수… 그래도 가장 큰 보람은 가르치는 일

그는 2008년2월에 현 정부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재임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여러가지 실험적 정책을 시도하다 좌절됐다. 과학기술계 인사로는 처음 교육부처 수장을 맡았던 것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그러다 정몽준 의원(현대중공업 대주주)을 만났다. 그의 간곡한 부탁에 울산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해부터는 국과위 위원장을 맡아 과학분야 컨트롤 타워의 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런 다양한 경력 가운데, 후학을 양성하고 좋은 제자들을 길러낸 것에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미리 알았으면 거기에 힘을 많이 쏟았을 것”이라는 아쉬워했다.

김 위원장은 알아주는 재료공학 전문가다. 특히 세라믹 소재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석학이다. 1997년 정부의 첫 창의연구사업과제를 맡아 연간 100만 달러라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8년 간 세라믹 소재의 기초연구에 몰입했다. 덕분에 동경대 펠로우교수직을 제안받을 정도로 괄목할 성과도 일궈냈다. 세라믹은 현재 산업계 전반에 걸쳐 쓰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의 소재다. 그가 길러낸 후학들 가운데 몇 명은 현재도 벤처기업을 설립해 그의 세라믹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지방에 좋은 대학이 있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김 위원장은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을 존경한다. 포스코 초창기에 인턴사원으로 7, 8월 여름방학 때 근무하며 먼 발치에서 나마 고인을 흠모했던 기억을 얘기한다.

그는 고 박 회장의 치적 가운데,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려있다는 확고한 신념 하에 지방인 포항에 포스텍(포항공대)를 세운 것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김 위원장은 “지방에 좋은 대학이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포스텍 같은 대학이 몇 개만 더 있어도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와 했다.

울산대도 그렇게 만들려 애썼다.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학교운영에 전혀 관여치 않은 덕분에, 정말 소신껏 일 할 수 있었다. 그는 “울산대가 국내 대학 가운데 포항공대 다음으로 재단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며 이런 대학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희망했다.

▶개혁이 시급한 교육현장 ... 교육에도 시장 기능 접목하고파

그는 교과부 장관 재임 때 초중등교육의 과감한 지방위임을 추진했다. 중앙정부는 대학교육과 과학기술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반대가 거셌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도 “시도할 만한 도전이었고 앞으로도 해볼만 한 시도”라고 말할 만큼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시절엔 처음으로 학장 직선제를 없앴다. 2년 마다 선거를 통해 학장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4년 임기의 임명제로 바꿨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욕심이 없었다. 기존 규정대로 2년만 하고 깨끗이 물러났다. 덕분에 그는 존경받는 서울공대의 마지막 직선 학장으로 남아 있다.

울산대 총장시절엔 개방과 경쟁을 강조하며 인터넷 공개강의제를 전격 도입해 화제를 낳았다. 다른 나라에선 모두 하는 제도인데도 교수들이 타성에 젖어 동참하지 않자, 그가 먼저 총대를 맸다. 자신의 동영상 강의를 매번 학교 인터넷에 올렸다. 몇 년 후 이 학교의 공개강의는 40개로 늘어났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수 연봉제도 도입했다. 우리 교육현장에도 시장 기능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교수라면 얼마의 연봉이 되든 모셔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교수로 모셔오지 못하는 것도 현격한 처우 때문이란다.

그는 우리 대학 등록금이 꼭 비싼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이공계 등록금이 연간 700만~800만원 인데 반면에 미국은 4만 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로 어떻게 똑 같은 교육이 되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비현실적인 규정에 발이 묶인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서도 일침도 했다. 화학 교사가 물리교사 자격증이 없어 물리를 못가르치고, 영어가 유창한 사람이지만 교사자격증이 없어 영어를 못가르치는 현실을 안타까와 했다. 대학과 대학, 과와 과 간에 쳐져 있는 벽을 허물지 않으면 안된다며, 우리 사회의 페쇄성을 비판했다. 개방과 협력 만이 우리 교육계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얘기다.

▶은퇴하면 뭐 하겠냐고? ... 2촌5도로 준비해요

아직 은퇴하기는 이른 나이지만, 그가 준비하는 은퇴 후 삶은 후진양성이나 과학기술계 개혁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닌 바로 ‘농사’다. 우연찮게 미국의 전원생활이 마음에 들어 지난 1999년부터 경기도 이천 곤지암에 땅을 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촌5도, 주말 이틀은 농사지으러 간다는 그는 첫 해 고구마를 캐고 환호성을 질렀다며 수확의 즐거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충북 감곡에 땅을 마련해 첫사랑인 아내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후 전원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도 이끌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내비쳤다. “우리나라 책, 참 안팔리더라”라며 청소년들이 과학에 관심가질 수 있도록 흥미로운 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정리=문영규 기자 @morningfrost>

ygmo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