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자유무역협정)와 제주해군기지가 4ㆍ11총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청와대가 이데올로기 논쟁에 불을 지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권의 총선 슬로건인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돌려 놓아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주요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과의 토론회에서 “한미FTA에 유독 반대가 큰 것은 혹시 이데올로기의, 반미와 관련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그러한 현상이) 현실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지금 가장 반대하는 것이 제주해군기지, FTA”라며 “경제 플러스 안보 문제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동안 이들 문제에 대해 야당의 ‘말 바꾸기’와 ‘정치 논리’라는 점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특별기자회견에선 “(전 정부)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추진했던 분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며 “이들 문제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논리로 싸울 문제가 아니다”는 점을 명확히 했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명숙 통합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 등을 직접 언급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같은 비판에서 최근엔 한 발 더나아가 ‘이데올로기’ ‘반미’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이념논쟁의 포화를 쏘아 올린 것. 이 대통령이 이날 ‘반MB 정서’에 대해 “국민의 의식은 정치공학을 뛰어 넘는 변화가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치공학적’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속내를 내비쳤지만 정작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정치공학의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이와함께 잇달은 언론인과의 대화 자리 때마다 수위를 높여가며 할 말을 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이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이데올로기 논쟁에 불을 지핀 데에는 한국사회에서 ‘이념’ 만큼 호불호(好不好)가 강한 것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념과 관련된 주제는 민주당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도 보수층을 ‘이념’이라는 공통분모로 결집해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쐐기를 박겠다는 전략으로도 읽히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표면상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책문제를 정치공학적, 이념적으로 계산하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에 따른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을 흔들림없이 지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발언일뿐 총선ㆍ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한다는 신념은 굳건하다”고 말했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