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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브픽션’ 5일만에 100만…4년의 기다림이 꽃피운 대박
배급사가 외면했던 프로젝트였다. 감독은 기약없는 미래, 암담한 현실에 지쳐 ‘버스’를 갈아타기 직전까지 갔고, 제작자는 아이들을 월세 단칸방에까지 밀어넣는 극한적 상황에 마지막 부여잡았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포기할 뻔했다. 그렇게 영화 ‘러브픽션’의 성공은 힘겨웠지만 열매는 달콤하고 화려했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사연이 넘치는 게 흥행업이고, 천당과 지옥이 날마다 교차하는 게 영화계의 일이라지만, ‘러브 픽션’의 개봉과 흥행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영화를 방불케했다.

‘러브 픽션’이 지난 29일 개봉해 5일만인 4일까지 101만명을 동원하며 새봄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켰다. 한달간 승승장구하던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누적관객 439만명)도 3위로 내려앉혔고, 주연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방한까지 하며 야심을 드러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디스 민즈 워’(2위, 누적 33만명)도 큰 차로 제쳤다. 



‘러브 픽션’의 출발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뒷풀이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전계수 감독은 하정우에게 “당신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한 편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배우는 “물론 좋다”고 했다. 지금 영화계에서 ‘최고’ 중 하나가 된 하정우가 아니었다. 출세작 ‘추격자’나 ‘국가대표’ 이전의 하정우였다. 



전계수 감독은 독립, 저예산 영화인 뮤지컬 ‘삼거리극장’으로 데뷔한 무명의 신인이었다. 말뿐인 약속이었지만 하정우가 손에 쥐고 “너무 웃겨 자지러졌다”는 감독의 시나리오가 사실상의 계약서가 됐다. 전계수 감독의 데뷔작을 프로듀싱했던 엄용훈 대표는 이미 제작사 이름까지 ‘삼거리픽처스’라고 정해두고 의기투합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배우와 신인, 제작자의 기획을 국내의 투자사와 배급사들은 하나같이 외면했다. 거의 모든 영화사에 수십번씩 시나리오를 가져갔지만 이것 저것 손보라고 말만할 뿐 돈을 움직이지 않았고, 전 감독은 “고치다 고치다 더 고칠 게 없어 나중에는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여주인공을 맡을 배우도 나서지 않았다. 극중 ‘겨드랑이털을 기른 여자’라는 설정때문에 여배우들은 배역을 꺼렸다. CF가 안 들어올 것이라고 꽁무니를 뺐다. 하정우와 전 감독, 엄 대표 모두 한 입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여배우들에겐 시나리오를 돌렸다”고 했다. 하정우까지 직접 나서 백방으로 뛰며 캐스팅에 나섰다. 그러다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공효진에게서 OK를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4년간의 긴 터널을 뚫고 나오자 모든 게 전화위복이 됐다. 


하정우는 4년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막강한 스타덤에 올랐고, 공효진이라는 ‘임자’를 만났으며, 창립작이나 다름없던 ‘러브 픽션’ 프로젝트로 고전을 거듭하던 삼거리픽처스 엄대표는 공동제작한 ‘도가니’의 흥행으로 숨통을 열었다. 하정우는 4년전에 약속했던 출연료를 올리지 않았다. 4년전의 약속에 동참했고 공교롭게도 하정우와는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흥행작을 같이하게 된 조연 곽도원의 이름을 빌자면, ‘도원결의’가 꽃피운 대박이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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