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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텍스·유리섬유…조각이 말랑말랑하다
美 요절 천재작가 에바 헤세 ‘10년 창작혼’ 서울에
잘 쓰이지 않는 소재 사용

물질-비물질 팽팽한 긴장감

스펙터스&스튜디오워크展

내달 17일까지 국제갤러리


34세로 요절한 천재작가 에바 헤세(1939~1970)의 초기 작품이 서울에 왔다. 서울 소격동의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는 ‘에바 헤세:스펙터스&스튜디오워크(Spectres and Studiowork)’전을 28일 개막했다. 

에바 헤세는 불과 10년의 짧은 창작활동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의 한 명으로 꼽혀왔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어머니의 자살 등을 겪은 작가는 ‘유령의 이미지’라 불리는 기이하고 뿌연 표현주의 화풍으로 유명하다.

그는 조각가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이 무겁고 차가운 금속으로 미니멀리즘(표현을 극도로 자제한 미술사조)을 추구한 것과는 달리, 헤세는 ‘부드러운 조각’을 시도했다. 섬유유리, 라텍스 등 조각에 거의 쓰이지 않던 소재들과 플라스틱 등 공업용 재료를 끌어들여 새로운 예술실험을 거듭한 것. 이 같은 활동으로 인해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뇌졸중으로 세상을 뜨고만다.

서울 전시는 크게 두 부문으로 짜여졌다. 우선은 헤세의 자화상에 가까운 회화들이다. 헤세는 예일대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1960년 첫 스튜디오에서 48점의 회화를 제작했다. 갈등을 겪던 자신의 내면을 그린 그림 중 20점이 이번 서울 전시에 나왔다. 모두 추상에서 반(半)구상 형태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시기 작가는 “오직 그림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끝까지 해내야만 한다. 페인팅은 내 존재 자체와 완벽하게 상호의존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부드러운 조각’이란 신개념을 선보인 에바 헤세의 조각‘ Studiowork-무제’. 1969년. 43.7x28.5x11.5㎝ ⓒEva Hesse.                                                [사진제공=국제갤러리]

갤러리 2층에는 조각들이 배치됐다. 모두 1960년대 중후반에 만든 것들이다. 헤세는 미술계를 풍미하던 미니멀리즘 열풍 속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독창적인 조각을 추구해왔다. 전시에는 라텍스, 유리섬유, 면직물, 왁스 등을 사용한 실험적인 소품들이 다채롭게 나왔다.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헤세의 조각은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한다.

짧은 생애임에도 헤세는 ‘물질’과 ‘비물질’, ‘기하학’과 ‘유기학’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존재’와 ‘부재’, ‘형상’과 ‘정신’ 등 본질적 개념을 아우르며 신선한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시기의 작품들은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차분히 돌아보게 한다. 4월 17일까지. (02)735-8449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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