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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고향, 여행 그리고 회한
노부모와 함께한 고향여행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가는곳마다 머리속에 담고

이젠 한이 없다던 당신말씀…


“아비야. 내가 이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다.” 지난해 낙상으로 한 달여나 병원신세를 진 후 어머니는 이 말을 달고 사셨다. 처음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도 “왜 그런 소리를 자꾸 하느냐”고 나무라셨다. 나중에야 “아비 부담되게”란 말이 생략됐다는 걸 알았다. 

“당신이 모시고 한번 다녀와요.” 고향에 다녀오고 싶다는 의미를 먼저 알아차린 건 아내였다. 화장대에 일본 책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그랬구나. 거동이 불편해 두 분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들이 결정해줘야만 하는 여행이었다.

어머니는 교토에서 태어나셨다.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곳이다. 해방 후 외할아버지와 귀국할 때까지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니셨다. 조선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 살아 크게 차별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교토의 추억은 늘 아름답게 남아 있다. 점점 더 그곳이 그리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향 여행은 그렇게 부랴부랴 급조됐다. 겨울휴가를 낼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비 바쁜데…” 하시면서도 얼굴엔 아이 같은 웃음꽃이 피었다. 여행은 즐거웠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작부터 마음 짠해지는 일이 생겼다. 환전 창구에서였다. 은행에선 3만엔 이상을 환전하면 무료로 여행자보험을 들어준다. 오랜 고객에 대한 우대서비스였다. 그런데 두 분 다 안 된단다. 80세 넘은 고령이어서다. 보험도 안 될 정도로 나이 드실 때까지 아들은 뭘 했을까. 아이들 커가는 것만 알았지 부모님 나이 들어가는 건 모르고 살았구나. 회한이 밀려왔다. 그런 일은 여행 내내 생겼다.

간사이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빌렸다. “내비게이션 소리 좀 더 키워봐라.” 귀가 많이 어두워지셨구나. 그러고 보니 TV 소리가 점점 커졌던 이유를 알겠다. 점잖고 느긋하던 분인데 잔소리도 늘었다. “저 차는 왜 빨리 안 가나? 여기서 좌회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성격도 좀 급해지신 게 분명하다. 그걸 여태 몰랐다니. 생각해보면 몰랐던 건 아니다.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렌터카를 빌린 후 오사카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오사카성에도 가고 박물관에도 들렀다. 그때 또 알게 됐다. 두 분의 걸음이 그렇게 느려진 것을. 가끔은 멈춰 숨고르길 해야 한다는 것을. 화장실에 그리 자주 가신다는 것을.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길은 일부러 국도를 택했다. 시골 풍경도 즐기고 아무 편의점이나 들러 화장실 가기도 편해서였다. 무엇보다 급할 게 없는 여행이니까.

교토의 고향 부근은 변하기도 했고 그대로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초등학교는 중학교가 되어 있었다. 아동인구가 줄어 통폐합이 심심찮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운동장 저편 건물은 좀 더 크게 지었을 뿐 위치는 예전 그대로란다. 목욕탕 자리엔 자그마한 건물이 들어섰고, 동네에서 유일했던 피아노집은 새로 지었지만 모양은 그대로 있단다. 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미동도 없이 바라보곤 했다. 마치 머리에 사진을 찍어 넣는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보다 훨씬 오래 남을 게 분명하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인 모양이다.

여행의 재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식이다. 일본의 음식들은 짜다. 생각보다 많이 짜다. 하지만 그리 짠 줄을 모르신다. 미각이 둔감해진 게 분명하다. 아직 얼마나 더 느끼게 될까.

가는 식당마다 어머니는 “아비야, 많이 시키지 마라. 남기면 안 된다”고 하셨다. 일본 라면집에서 만두 하나를 더 시켜도 “누가 다 먹을 거라고” 하신다. 물론 100엔당 1500원에 육박하는 엔고 때문이다. “돈 나가는 게 무섭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교토 채소만 쓴다는 뷔페식당에 가서는 영 다른 분들이 되셨다. “맛있네. 괜찮네”를 연발하신다. 배부르다면서도 접시를 또 채운다. 식당을 나오며 말씀하신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네.”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간사이 공항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이제 정말 한이 없다.”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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