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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개성 상인’ 박성철
개성공단 발판 삼아 우량 패션기업으로 탈바꿈, 신원그룹 회장을 만나다
개성 사람들 손재주 좋지, 머리 좋지…세금 없고 말 잘통하지…기업가 마인드로 개성공단은 황금어장이야

초코파이 나눠주고 8년간 매일같이 인사…종교활동도 패션쇼도 일터에서 나누는 문화교류일 뿐 선교·통일 같은 큰 의미 없어

한 벌에 2000만원 하는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 해부해 보니‘ 비접착’기술이 관건이더라고…그래서 그 방식으로‘ 반하트 옴므’만들었지

伊·佛 디자이너와 협업 명품화 시킬것·7월엔 중국 항주백화점 입점 예정…브랜드 파워 키워 패션한류‘ 국위선양’했으면


“이거, 개성에서 만든 거야. 얼마나 잘 만드는지 몰라. 세계 최고야, 허허.”

감색 슈트에 하늘색 줄무늬 셔츠, 줄무늬와 같은 색상으로 맞춘 넥타이가 화사하다. 봄이 성큼 이 ‘남자의 옷’에 내려앉았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시원함이 ‘동안’ 얼굴과 어우러져 꽃중년이 부럽지 않다. 40년을 매일같이 참석하는 새벽기도와 술ㆍ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생활습관이 ‘절대동안’ 비결이다. 패션그룹 신원의 박성철(72) 회장은 아직도 젊다.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새벽기도가 젊음의 비결이라고 한다. 박 회장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의‘ 반하트 옴므’ 쇼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타일 거장 알바자 리노와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명품을 지향하는‘ 반하트 옴므’는 오는 7월 중국 최대 백화점에 입점하며 해외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한때 국내 서열 30위까지 올랐던 신원그룹은 90년대 후반 IMF 시절 워크아웃을 겪었다. 신원이 다시 우량 패션기업으로 탈바꿈하고 개성공단 사업에 집중해온 지난 8년간 언론에서 박 회장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고급 남성복 ‘반하트 옴므’와 여성 SPA브랜드 ‘이사베이’ 등을 론칭하며 신원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박 회장의 남다른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2월 1일 출범한 지식경제부 ‘명품창출 포럼’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박성철 신원 회장을 최근 마포구 신원 본사에서 만났다.


-지금 입고 계신 옷도 개성에서 만들어진 건가요?

▶이거 북한산 수제 양복이지. 그것도 개성공단 질 좋은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거야. 남쪽보다 손기술이 훨씬 좋아. 가서 보니까, 개성 사람들 손재주 좋고 머리도 아주 좋아요. 개성공단 사람들 고등학교 출신 76%에 대학교 출신도 24%나 돼요. 또 자리를 자주 옮기는 일이 없어서 지난 8년간 한 분야만 전문으로 파니, 지금 다들 옷 너무 잘 만들어. 말 통하지, 기술 좋지, 세금 안 붙지. 기업가적 마인드로 개성공단은 황금어장과 다름없어요.

실제로, 개성은 공장이 들어서기에 경제적 환경이 그만이다. 인도네시아, 중국 임금의 20~50%이다. 또 세금이 없고 말이 통한다. 숙련된 노동자들의 수준도 높다. 박 회장은 현재 무역량 9위, 수출 7위의 대한민국이 무역규모 2조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북한의 노동력이라고 말한다. 개성공단은 그 중심에 있다. 그는 8년 전 개성공단에 입주하기 전부터 대북사업을 해왔다. 그러니까 올해로 17년째다. 당시엔 중국 베이징에서 평양 사람들과 만나 사업 논의를 했다. 한 달씩 걸리던 일이다. 그러다 6ㆍ15 선언이 나오고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훨씬 일이 단순해졌다.


-개성공단 초코파이 일화가 유명합니다. 신원이 음식, 패션쇼 등 문화교류에도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인데요.

▶우리 때문에 다른 기업들도 초코파이를 나눠주고 있어요. 그런데 신원이 노동자들 먹을거리 챙기고 아침 저녁으로 따뜻하게 인사해주고 그러는 일은 개성에서만 하는 게 아니야. 전 세계 모든 공장에서 동일하게 하는 일이지. ‘인간적인 예우’와 ‘주인 아닌 종의 태도’가 내 경영관리 철학이죠. 영하 10도가 돼도 남쪽 직원들이 개성공단 노동자들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해요. 저녁에도 “수고했다”고 챙기지. 8년간 매일 말이야. 대북사업 하면 ‘퍼주기’라고 비아냥거리는데, 퍼준 거 맞어. 라면, 초코파이, 미숫가루… 나, 먹을 거 잔뜩 퍼줬어, 허허. 


-신원의 기업문화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북한 땅에서 종교 활동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반감도 있었는데요.

▶공장에 불이 난 적도 있어요. ‘왜 우리 체제를 바꾸려 하느냐’ ‘너희 기업은 왜 들어왔느냐’ 욕도 많이 먹었지. 아, 너무 세게 쓰지는 마, 공장 운영해야 해, 허허허. 처음엔 종교색이 짙다고 신원을 ‘제일 나쁜 기업’이라고 불렀어. 그런데 이제 인사 잘하지, 먹을 거 많이 주지. ‘제일 좋은 기업’ 됐지 뭐. 아마 개성공단 입주업체 중 개성 사람들이 제일 들어오고 싶어 할 거야. 시설도 아주 좋아요.

개성공단에 입주한 신원은 남쪽에서 그렇듯 북한에서도 새벽기도, 수요예배 등을 쉬지 않는다. 비난도 많이 받고, 위협도 종종 있었다. 지난 정권 때 고(故)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체제에 도전하는 듯한 행동은 삼가 달라”고 요청까지 받았다. 현지 공장에 방화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박 회장이 지향하는 바는 ‘선교’나 ‘체제 도전’이 아니라 순수한 노동현장에서의 문화교류다. 


-개성공단 패션쇼라는 것은 획기적인 만큼 난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6개월 만에 허가가 났어요. 가슴이 보인다, 치마가 짧다. 안 되는 이유도 많았지. 북한 남자들은 책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고 보더라고. 그렇게 문화 차이가 나는 곳이지. 무슨 속셈이냐고 많이들 묻지. 그런데 그것뿐이야. 분단 60년의 차이 극복은 정치만으로 힘들어. 개성은 신성한 노동이 있는 남과 북의 ‘일터’잖아.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문화, 마음, 습관을 나누면서 정드는 거지. 통일, 선교 뭐 그런 큰 의도 없고 그저 같은 민족을 인간적으로 대하면 그만이야.


-최근 신원은 ‘반하트 옴므’로 남성복 명품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맞물린 시기에 ‘명품창출 포럼’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지경부에서 100개 기업을 선정해서 명품창출 운동을 시작한다는 게 진짜 ‘명품’이지. 시의적절했다고 봐요. 100개 기업 중 패션기업 비중이 크지도 않은데 내가 회장이 됐어. 아무래도 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것과, 70년대 미국의 ‘안티덤핑(Anti-dumpimg)’ 운동 때 버텨냈던 걸 높이 사준 것 같아. 근데, 나 무지 바빠요. 교회 일도 많고. 2년 임기라는데, 딱 1년만 하려고.

1970년 처음 의류 하청공장을 세운 박 회장은 나중에 무역회사를 차려 직접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웨터 단일품목으로 86년 1억달러 수출을 기록,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박 회장은 미국 ‘안티덤핑 운동’에서 살아남은 것을 스스로도 뿌듯하게 여긴다. 한때 미국에서 덤핑반대 운동이 일어나 한국 홍콩 대만의 수출길이 막힐 처지에 놓였다. 이때 민간업자들이 모금을 해 법률회사 3군데에 의뢰를 했다. 홍콩과 대만은 지고 한국은 이겼다. 한국이 지금 세계 섬유의 본산지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흔히 기자 출신이 사업하면 다 망한다는데, 짧은 기간 경제부, 정치부, 논설위원까지 거치신 경력이 특이합니다.

▶경제부 섬유기자 하다가 국회 출입 기자를 했지. 그러다가 DJ 공보담당비서관을 했어. 목포고 학생회장 출신인 걸 알고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DJ가 젊은 표를 의식해서 발탁한 거 같아. 어릴 때부터 꿈도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직접 출마도 했는데 잘 안 됐어. 아예 접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주 만족하지. 내가 신안 출신인데, 뭐 잘됐어야 한화갑 씨 정도 됐겠지? 기업인 돼서 보람 있어. 각 나라에 공장 세워 일터 주고, 개성공단에 입주도 하고, 나이 들어서 이렇게 정정하게 일하고….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해. 과연, 정치 계속했으면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섬유 기자를 하신 게 의류사업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원래 패션에도 관심이 있으셨는지요.

▶그건 아니지. 기자 하면서 본 눈썰미로 시작한 의류공장이긴 한데, 사실 사업 하면서 많이 배웠어. 세계에 수출을 하다 보니까, 해외 패션에 눈이 가더라고. 처음 스웨터를 만들면서 160개국에 수출했어. 디자인만 2만여 개였지. 각 나라 패션 특징에 눈을 뜨고 있었는데, 마침 내수가 일어나는 분위기에 1990년에 베스띠벨리, 씨를 론칭하면서 본격적으로 나선 거지.



-승승장구하던 신원도 IMF 때 뼈아픈 구조조정과 함께 브랜드들을 정리했는데요.

▶신원은 워크아웃 제일 먼저 들어갔다가 제일 먼저 나왔어요. 다른 데 돈 안 빌렸어. 부동산, 골프장, 지역방송 등 가진 것 모두 팔았지. 사람이 늘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기업도 그래. 아팠다 나았다 하면서 사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과정 속에서 탈장도 일어나고, 암도 걸렸어. 수술을 5번 했으니까…. 2500명이던 직원을 700명 남기고 감원했지. 다시 배가 오면 태우기로 약속하면서. 지금 다시 2300명이니 많이 이뤄진 거지. 이번에 ‘세스띠’ 재론칭하는 것도 그런 약속의 연장선에 있는 거예요. 



-패션시장이 명품과 패스트패션으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신원만의 전략은 무엇인지요.

▶명품은 남성복 ‘반하트 옴므’를 전개하고 있어요. 패스트패션은 여성복 ‘이사베이’ 를 중국시장에 SPA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고. 특히 반하트 옴므는 이탈리아의 거장을 스타일 디렉터로 영입해 콜러보레이션을 진행해요. 여전히 세계 패션시장에서 한국은 1군도 2군도 아닌 3군에 불과해. 1군에 속하는 이탈리아 프랑스의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은 명품화 전략에 아주 중요하죠. 최근 패션업체들이 해외 브랜드를 인수하고 있는데, 그것도 영리한 전략이지. 300억 주고 사서 3000억짜리로 만들면, 한국 글로벌 명품 되는 거니까.



-결국은 패션명품의 제품력이란 브랜드 파워로 귀결됩니다. 최근 10대들 사이의 브랜드 열풍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뭐, 그런 사회적 현상은 일시적인 거 아니겠어. 벌써 다른 걸로 유행 바뀌었지? 잘은 모르지만 홍보, 선전을 잘했나 봐. 기업 차원에서 보면 매우 잘한 거고…. ‘명품’이란 이름이 있는 물건이란 뜻이잖아요. ‘김연아, 박지성? 어느 나라 사람이야?’ 했을 때 ‘한국인이래’ 하는 게 국위선양인 것처럼, ‘이거 어디 거야?’ 했을 때 ‘한국 거’라는 대답은 실로 어마어마한 거지. 그런 차원에서 보면 브랜드 파워가 생긴다는 건 매우 훌륭한 거지.

그래서 박성철 회장은 신원의 전략을 브랜드력 강화에 둔다. 물론 그것은 해외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명품’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오는 7월 세계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중국 항주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있는 ‘반하트 옴므’ 는 이탈리아 브리오니 양복의 총판 경험으로 이뤄낸 결과다.


-기존 지이크파렌하이트가 중국에서 반응이 좋습니다. 반하트 옴므에 대해서도 그만큼 기대하시는지요.

▶브리오니가 한 벌에 2000만원이죠. 아무리 봐도 우리가 만든 것과 큰 차이는 없는데 말이야. 기술자들을 현지 공장에 보냈어. 해부해 보니 ‘비접착’ 기술이 관건이더라고. 아주 부드럽고, 날씬해 보이고, 비를 맞아도 금세 원형이 돌아오지. 그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게 개성공단의 ‘반하트 옴므’예요. 물론 아직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 이외엔 수출될 수 없지만…. 지이크파렌하이트는 항주백화점 남성복 매출 1위예요. 그것 때문에 백화점 사장이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반하트 옴므’ 입점계약을 맺었어. 기대가 커요. 또 중국에서 패션 한류가 슬슬 불고 있는데, 이것도 어느 정도 작용할 거라고 봐.

“이거 이야기 된다” “이거 숨은 이야기야” “이거 쓰면 좋지” 하면서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기자 선배’답게 조언을 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명쾌하고 날카롭다. 종교적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전혀 머뭇거리거나 거리낌이 없었다. 특히 창세기부터 잠언 등을 인용해 틈틈이 ‘설교 아닌 설교’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잠언 3장 13~14절이라는데 “지혜를 가지라, 지혜를 갖되 온전한 지혜를 가지라…”라며 구절을 줄줄 꿴다. 신원의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마포에서 유흥을 즐기다 보면 새벽기도 가는 박 회장과 마주치기도 한다는 후문.


-40년 가까이 새벽기도를 나가신다고 들었는데, 요즘도 변함 없으신지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교회 갔다가 회사 오면 6시예요. 그러면 그때는 해외 공장들은 퇴근시간이죠. 현지 담당자와 통화를 해요. 매일이 그래. 하루도 안 걸러. 요즘 반기독교 정서 있는 거 나도 알지. 하지만 훌륭한 사람도 많잖아. 미국의 록펠러를 봐. 이 땅의 재산은 내 것이 아닌 하늘의 재산으로 알고 관리하는 게 ‘청지기 사명’인데, 바로 그게 기독교 기업인의 마인드여야 한다고 봐요.


-세 아드님 중에 목사가 된 큰아드님을 가장 편애(?)하신다는 소문이 있는데요.

▶아들이 셋인데, 하나는 옆에서 내 일 돕고, 하나는 회계사, 하나는 목사야. 큰아들이 목사인데 이 녀석이 하버드, 예일, 워싱턴, 파슨스, 댈러스 5개 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 결국 목회일 하고 있어. 아들 녀석 스스로 목사 하길 원한 거야. 난 한 번도 권한 적이 없어. 패션, 변호사 일 등 이것저것 도전하다가 본인이 택했어. 그런데 난 아들 셋 중에 목사 하는 이 녀석이 제일 예뻐, 허허.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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