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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췌장암 3기 딛고 만학도 꿈 펼치는 박순근 할아버지
박순근(71ㆍ가명)할아버지는 왼쪽 손가락이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불운한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아픈 흔적이다. 월남전 당시엔 베트남으로 건너가 미군 군용 숙사를 건설하는 일을 했다. 중동 바람이 불었던 1970년대에는 건설역군으로 땀을 흘렸다.

풍파가 그치지 않았던 젊은 시절. 허나 시간이 흐르니 박 할아버지의 삶도 안정이 됐다. 두 딸과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다. 박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자신을 돌아봤다. 초등학교 조차 졸업하지 못한 지난 날이 한스러웠다. 짧은 학력이 늘 부끄러워 남들에게 들킬까 감추기 바빴던 박 할아버지. 2008년 3월 할아버지는 4년제 학력인정 초등학교인 서울 양원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늦깎이 초등학생이 됐다.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수학은 아무리 해도 어렵고 영어는 매일 들어도 잊어버리지만” 공부만큼 재밌는 일은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할아버지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2010년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피골이 상접해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았다. 병원을 찾았다. 췌장신경성 내분비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여러병원을 전전하며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탓에 암세포와 더불어 정상세포까지 죽게 돼 상태는 점차 악화됐다. 그렇게 좋아하던 공부도 잠시 내려놔야했다. 3개월여를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그 사이 암세포는 간까지 전이됐다.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되면 며칠씩 결석을 하기 일쑤지만 그래도 박 할아버지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지난해 다시 복학한 박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치르는 영어, 한자, 수학 시험 등도 늘 만점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병마와 싸우며 노력을 한 끝에 박 할아버지는 오는 22일 졸업을 맞는다. 그는 서울 종로구 소재 모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병마와 싸우며 자랑스러운 졸업을 맞이하고도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온 박 할아버지. 결국 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그 속내에는 “아직 공부가 부족한 내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되어간다는 증거죠. 아픈 와중에도 학교생활이 너무 행복했어요. 공부 자체가 내 삶의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 박 할아버지의 얼굴엔 암 투병 환자의 고통이 아닌 학업에 대한 열의가 가득차 있었다.

박수진ㆍ윤현종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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