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특별법’ 상임위 통과 파장
5000만원초과 예금자까지저축은행 특별계정서 보장
구제대상 8만2391명 달해
“예금자 자산 떼어내 만든
금융회사 구조조정 재원
제멋대로 쓰겠다는 것”
은행聯·손보협 강력 반발
“예금보호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법과 원칙을 깨버렸다. 앞으로 금융질서는 어떻게 잡아가란 말이냐.”
“국가의 잘못된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가난하다고 다수가 시위에 나선다면 그때도 국민의 혈세로 피해를 보상해 줘야 한단 말인가.”
국회 정무위원회가 지난 9일 여·야 합의로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을 처리하자 정부와 금융권에서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억울한 피해를 당한 저축은행 고객들을 돕는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방법과 형식논리를 벗어난 포퓰리즘이란 비판이다.
정무위가 이날 통과시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긴 특별법은 현행법상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의 피해액 일부를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보상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다. 정무위는 애초 피해자 구제에 사용할 재원을 정부 출연금과 부실 책임자(저축은행 대주주)의 과태료, 과징금, 벌금 등 국가 재정에서 조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예금보험기금으로 조성한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이용하기로 했다. 구제 대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은 18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 8만2391명이다. 구제 규모는 예금 5000만원 초과분의 55%와 부실판매책임이 인정되는 후순위채 투자금의 55% 등 1025억원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분 예금보호제도 자체를 뒤흔드는 독단이다. 예보기금은 원리금 합계 5000만원 미만의 예금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재원이다. 예금보호제도는 2002년 1월 재도입돼 10년째 지켜온 원칙이다. 특히 후순위채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투자자 책임주의’에 따라 손실분을 메워주지 않았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수차례나 부실저축은행 사태를 경고해왔다. 큰 돈을 저축은행에 맡겼다면 5000만원 미만으로 줄이거나 찾았어야 마땅하다.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중도에 예금을 깨뜨려 이자를 포기하기 싫었거나 무관심했던 부분에 대한 고객 책임도 없지 않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무위가 통과시킨 특별법은 부분 예금보호제도를 무너뜨리고 향후 구조조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특별법이라지만 헌법상 금지된 소급 입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일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돈을 엉뚱한 데 쓴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어렵사리 마련된 저축은행 특별계정(예보기금)은 오는 2026년까지 은행,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예금보험기금의 45%, 저축은행 예금보험기금의 100%를 모아 조성되는 재원으로 순수히 금융회사 구조조정에 쓰일 돈이다. 구조조정은 부실저축은행 매각시 순자산부족액을 메워주거나, 보험사고가 났을 때 5000만원까지 보상하는 것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다. 따라서 이 계정을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용으로 쓰겠다는 정무위의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예보기금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고객자산의 일부를 떼어 모은 것으로, 국민이 조성한 민간재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은행연합회, 생손보협회 등은 정무위가 수많은 은행 예금자와 보험 가입자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쌓아 둔 예보기금을 당사자의 동의조차 받지 않고 제멋대로 끌어다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쏟아부으려 한다며 쓴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은행연합회, 생·손보협회는 10일 정무위의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의 입법 저지를 위해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윤재섭 기자/i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