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가르마의 장발머리, 건달의 거만함이 배어있는 말투, 속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기괴한 남자 박창우.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에서 건달 박창우로 열연한 김성균은 주연배우 최민식, 하정우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관객들에게 김성균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쉴 틈 없이 연기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 충무로에 입성, 기성배우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연기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김성균은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실감이 안 난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그에게서 영화 속 박창우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 “최민식, 하정우와 연기? 자다가도 벌떡”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이름값’하는 배우로 알려진 최민식과 하정우와 호흡을 맞췄다. 신인인 그에게 ‘거물’인 두 배우와의 호흡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최민식, 하정우 선배님과 마주했을 때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두 선배님이 제 눈 앞에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었죠”
첫 스크린작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선배들과 촬영을 해야 했던 김성균. 극중 그의 비중은 상당하다. 어디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연기는 그가 그동안 얼마나 피땀 어린 노력을 했는지 가늠케 했다.
“하루하루 긴장한 상태로 촬영했죠. 첫 스크린작인만큼 부담감도 엄청났고요. 자다가도 새벽에 깨 화장실에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연기를 하니, 캐릭터가 굳어지더라고요”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어요. 그리고 형배 옆에 서 있을 때는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나중에 충분히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가급적 제 대사가 없을 땐 행동을 자제했죠”
-“최민식 폭력신, 아버지를 때리는 것 같았다”
극중 박창우가 최익현에게 갖고 있는 불만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자신과 최형배의 사이에 큰 걸림돌인 최익현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때마침 찾아온 기회에 박창우는 최형배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김성균은 관객들의 혐오감을 자아낼 정도로 완벽히 캐릭터에 몰입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는 이 같은 공 역시 최민식에게로 돌렸다.
“제가 감히 (최민식)선배님을 때려야 한다니 얼마나 부담이 됐겠어요. 마치 아버지를 때리는 느낌이었죠. ‘연기대로 해야지’라고 생각해도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선배님께서 따뜻한 조언으로 저를 안심시켜 주셨죠”
범죄를 그린 영화인만큼 극중 등장하는 폭력신은 잦다. 최민식 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조직원 형들은 촬영 중 멍드는 일도 다반사였죠. 어디서 다쳤는지도 모를 정도로요.(웃음) 저는 하정우 선배님의 오른팔이라 직접적인 패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 콘셉트여서 큰 부상은 없었어요”
‘폼나게 살고싶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성격에 맞게 촬영장은 늘 남자배우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촬영시간 외에도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대화의 장을 열며 돈독한 정을 쌓아갔다.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죠. 대기하는 시간이 지치지 않았어요.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는 최민식, 하정우 선배님이었죠. 저는 그 분들의 장난에 밥숟가락 얹는 정도였어요.(웃음) 선배님들과 가까워졌고, (곽)도원이 형 같은 경우도 촬영장에서 만난 뒤 가깝게 술친구 하면서 지내고 있죠”
-보물 1호 가족 “아내와 연기 호흡 맞추고 싶다”
그에게는 ‘연기’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한 오랜 연인이자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두 아들. 그렇기에 그의 전부인 ‘연기’에 있어 가족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어요. 예를 들면 가난한 부부의 사랑이야기랄까요. 상대 여배우요? 당연히 제 아내죠. 제 아내를 처음 만난 것도 연극무대였어요. 아내도 연기에 욕심이 있지만, 지금은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죠”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김성균. 그는 “제 아이가 연기를 하고 싶어한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극의 말미 최익현의 손자로 등장한 아기는 실제 김성균의 아들이다.
“마침 그 장면에 맞는 아기를 물색하던 중 제 아이가 낙점이 된 거죠. 저보다도 아내가 욕심을 많이 냈어요. 엄마의 치맛바람이 무섭다더니 제 아내가 그럴 줄 몰랐네요.(웃음)”
실제 ‘아버지’ 또는 ‘남편’ 김성균의 모습은 어떨까. 그는 자신보다 가족을 더 생각하는 속 깊은 평범한 가장이었다.
“집에서는 아들과 시간을 거의 보내죠. 또 집안에서 남자가 강한 척 하는 건 못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싸움이 나더라도 아내에게 져주려고 노력하죠. ,아내는 자신이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허당같이 귀여운 구석이 많이 있어요. (웃음)”
- “연기? 일상 속 달력과 같아”
연극배우에서 충무로 배우로 거듭난 김성균. 그에게 연기는 단순한 캐릭터의 표현이 아니라 일상 속 달력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저는 날짜나 연도를 잘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특이하게 작품의 개봉일은 절대로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그 때가 언제였지’ 싶을 때쯤에는 그 당시 제가 봤던 작품을 떠올린답니다. 심지어 ‘아들이 ‘라이어’ 할 때 태어났지’라고 기억할 정도니까요”
이렇듯 연기를 일상의 일부로 정의내린 김성균은 관객들에게 ‘인간적인 배우’로 남길 원했다.
“관객들이 저를 인간적으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 배우가 하는 연기는 그냥 재밌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네요. 지루한 느낌을 전혀 풍기지 않고,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죠”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느긋이 자리를 일어서는 그에게 올해의 목표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아들도 이제 둘이니까 차나 한 대 마련하고 싶네요.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말이죠. (웃음)”
김성균처럼 첫 스크린 데뷔작으로 존재감을 빛내는 배우는 희박하다. 하지만 김성균은 단 한 편의 영화로 ‘모든 근육이 이완된 편안한 연기’를 선보였고, 반응은 뜨겁다. 그가 이 같은 열기에 힘입어 관객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배우가 되길 바래본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사진 김효범 작가(로드포토스튜디오)/ jwon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