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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 잠시 즐겁고 오랫동안 시달릴 ‘재벌세’
복지 확대 취지는 좋지만

어느시대도 성공사례 없어

특정 대상에 일방적 과세

감흥 있어도 후유증 길어

“재벌세 논의는 있었지만 따로 세목으로 신설하면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해. (세제가) 나중에 종이호랑이 되면 안 돼. 강하게 했는데 위헌 판결 받으면 도로 아미타불이야. 이런 저런 것 따져야지.”

지난 29일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위가 ‘재벌세’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김진표 원내대표는 금시초문이라며 이날 오후 긴급 진화에 나섰다. 김 원내대표는 재경부 세제실장을 지내 누구보다 세금의 속성(조세 저항)을 잘 안다.

그는 참여정부 때의 불편한 기억도 끄집어냈다. “종부세 처음 할 때 얼마나 반발이 컸어. 참여정부 때 선거에도 나쁜 영향 줬어. 부유세 한다고 하면 부자 때려잡기라고 한다. 세금이 갖는 그런 게 있어.”

공교롭게도 정책위의장인 이용섭 의원도 세제실장 출신이다.

그는 “정책위와 사전에 의논된 사항은 아니다. 특위에서 제안한 내용이고 이를 조세특위에서 전문가들과 정교하게 가다듬겠다”며 “특위 제안은 재벌세 ‘신설’이 아니고 재벌 과세 강화 방안”이라고 수위를 낮췄다.

그러나 재벌세 논란은 주말을 지나서도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제실장 출신들의 조심스런 입장과 달리, 한명숙 대표 등 신임 지도부가 일찌감치 “1%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99% 국민에게 나눠주겠다”고 공언하는 등 ‘1% 대 99%’ 양극화 프레임을 총선 공약으로 담금질해왔기 때문이다.

재벌세 추진의 기본 취지는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복지 확대와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방지는 사회통합의 시대적 요구이며, 국민의 목소리에 답하는 건 공당(公黨)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짜 점심이 없듯 양극화 해소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여여 간 기본합의는 물론 최소한의 사회적 타협이 전제돼야 해결 가능한 일이다. ‘1% 부자를 꼭 집어 비용을 감당하라’는 민주당의 주문은 그래서 못 미덥다. 더군다나 특정 대상에 대한 과세를 일방적으로 주장할 때, 잠시 쾌도난마의 감흥이 있을지 몰라도 후유증은 길다.

실제로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부자에게만 부담을 지우려는 목적의 세금이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억지로 만든 세금’의 대명사로 남아 있는 창문세가 대표적인 예다. 1696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는 부유층에게서 세금을 거두기 위해 창문세를 도입했다. 하지만 납세 대상자들은 세금 징수에 반발하며 벽돌로 창문을 메우거나 새로 건물을 지을 때 창문을 아예 없애버렸다. 아직도 영국에는 답답한 벽돌집을 한 채 창문세를 증언하는 옛 건물들이 남아 있다.

세제를 직접 다루는 정부와 재벌 개혁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하필이면 총선 즈음에 와서야 이런 발상이 나온 것도 미심쩍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누가 누가 잘하나’ 식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놓는 정책을 보고 국민은 귀를 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을 도 닦는 수도승으로 아는가”라고 질타했다.

18세기 중엽 프랑스는 왕실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공기에까지 세금을 부과하려 했고, 영국에선 나폴레옹과의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계세를 만들기도 했다지만,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민주통합당의 첫 정책치고는 고심의 흔적이 적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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