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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작가 두츠의 그림,한국에 왔다
세네갈 작가 N. 두츠(Douts)의 그림들이 한국에 왔다. 아프리카미술관(관장 정해광)은 서울 관훈동의 인사아트센터에서 지난 25일부터 두츠 작품전을 열고 있다.

오는 2월 13일까지 계속되는 두츠(N. Doots) 초대전의 타이틀은 ‘100=1, 1=100’. 백이 하나이고, 때로는 하나가 백이라는 알듯 모를 듯한 타이틀은 두츠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로 명명됐다.

세네갈에서 태어나 다카르국립예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두츠는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럽및 미국의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던 작가. 미국 워싱톤DC의 월드뱅크(World Bank)의 경우 두츠의 연작(‘100=1, 1=100’) 100점을 모두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이번 전시 또한 가로, 세로 40cm 정사각형 크기의 캔버스에, 10가지 바탕색에 10개 장면을 그린 회화 100점이 일제히 내걸렸다. 또 설치미술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대형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다카르국립예술학교 졸업 당시 ’서민지역의 무질서한 건축 연구’라는 논문을 썼던 두츠는 2000년 아프리카비엔날레 ‘젊은 작가 전’에 참여하며 갤러리 기획자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설치미술 “TRAIN-TRAIN MEDINA (Medina의 지루한 일상)”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프랑스 TV5, 벨기에 RTBF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오랫동안 구상해온 작품 ‘100=1, 1=100’을 발표하면서 서구 미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서민들이 사는 마을의 모습을 원색으로 표현한 100개의 연작은 설치미술적 효과를 통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보인다. 반대로 하나의 그림을 분할해 보면 다시 100개의 그림으로 보인다. 바로 이 때문에 ‘100=1, 1=100’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 조합과 분산을 보여주는 두츠의 이같은 시도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2006년에는 다카르비엔날레에서 EU예술가위원회가 주는 대상을 받으면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등지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은행과 기업이 많이 소장하고 있다.

두츠의 그림은 동화의 마을을 보여준다. 가난한 곳이지만 따스함과 즐거움이 감돈다. 길가에 즐비한 자동차는 주인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이고, 높이 솟은 안테나는 신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듯하다. 아크릴 물감은 파스텔과 어우러져 밝고 명랑한 만화적 팝아트를 연상케 한다. 그림 곳곳에 써놓은 ‘100=1,1=100’이라는 숫자와, 흑백으로 이뤄진 화폭은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두츠의 미학적 여정의 폭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두츠의 ‘100=1, 1=100’이라는 주제는 ‘같음’을 강조하기 보다 서로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전체와 개체, 국가와 개인, 신과 인간이 ‘같다’라는 관념적 해석을 내리지 않고,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통해 지향성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은 신에게 다가가야 하고 신은 인간에게 다가올 때 신과 인간, 즉 심성(心性)과 신성(神性)은 하나임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하는 삶, 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향하는 삶, 관용을 실천하는 삶이 두츠가 강조하는 ‘100=1, 1=100’의 핵심이다.

전시를 기획한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은 "두츠의 그림 속에서 거리를 누비는 자동차는 어디론가 떠나길 바라는 개인의 소망과 부강해지기를 바라는 국가의 꿈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는 삶에의 애환과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미래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하늘 높이 치솟은 안테나는 무지를 깨우는 문명의 도구이자 신에게 다가가는 계단임을, 긴 팔과 긴 다리가 강조된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의 존재의미가 마음의 거리를 줄이는데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도시인들은 마음이 여러모로 편치않은 듯하다. 그런데 4년째 두츠의 그림을 음미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그림을 정의한다면 ‘이타적(利他的) 주객원융(主客圓融)의 세계’다.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현대인들이 두츠의 그림을 보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로움을 찾고, 변화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02)732-384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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