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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리는 인도경제>③/개방기치 내건 ‘마법의 양탄자’..인프라ㆍ부패ㆍ관료주의가 걸림돌
[델리ㆍ푸네ㆍ첸나이=홍성원 기자]“눈부신 성장을 구가할 인도라는 ‘마법의 양탄자’가 뜨려고 하는데 정치권 부패와 국민 눈치보기, 수준 이하의 인프라(사회간접자본) 등이 밑에서 줄을 잡고 끌어 내리는 형국이다.”(박한우 현대차 인도법인장)

최근 외국인 직접투자를 주식시장과 자국 내 항공업계, 나이키와 같은 단일 브랜드 소매시장에 허용한 인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비유다.

지난해 썰물처럼 빠져 나간 외국인 투자를 붙잡아 두려고 빗장을 열겠다는 의지를 보인 인도 정부이지만, 정작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부문의 개방은 잠정 보류했다. 오는 3월부터 치러질 지방정부 선거를 앞두고 표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 탓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도로ㆍ통신ㆍ전력 등 기초적인 인프라가 허술하기 그지 없음을 주요 도시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더불어 막상 인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을향한 당국의 싸늘한 대접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인도에는 할인매장이라는 개념이 흔하지 않아 각 도시마다 재래시장에서 야채와 식료품 등이 유통된다. 첸나이에 있는 소규모 시장의 야채 가게(사진 위)에서 한 여성이 장을 보고 있다. 아울러 상당수 국민들은 구멍가게 수준의 상점(사진 아래)에서 음료수 등을 구입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까르푸 등 해외 대형 소매 유통 업체에 대한 시장 개방을 미룬 이유도 이들 중소 상인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표심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시장개방=델리에 사는 수미트 쿠마르(30)씨는“인도엔 슈퍼마켓이라는 개념이 없다”면서“모두 (재래)시장에서 농산품을 구입하고 있는데 외국의 까르푸, 월마트 같은 업체가 들어오는 걸 반길 리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12월 소매시장에 대한 외국인 지분을 51%까지 허용한다고 발표하고선 보류한 데 대한 의견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인도 소매업계의 연평균 매출규모는 4700억 달러(한화 507조원)에 달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대 시장이다. 하지만, 인도의 야당과 농민ㆍ소형 상인들의 표를 의식해 개방이 미뤄진 것이다. 선진 유통ㆍ냉장 시스템을 받아들여 식료품 가격인하 등의 기대효과를 현실화할 기회를 스스로 닫은 셈이다.

푸네에서 만난 가야호텔의 최민희 매니저는“이 곳의 최대 재래시장인 시바지에서 장을 보는데 감자와 양파를 빼고 모든 음식재료 가격이 너무 비싼 편”이라며 “맥주만 해도 한국에선 1600원(1.5ℓ)이면 사는데 여긴 2200원 정도”라고 했다. 그는 ‘도랍지’라는 할인마트가 있지만 중산층 이상이 수입상품을 구매하려고 찾는 곳이며 상당수 국민은 재래시장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델리, 푸네 곳곳엔 한국의 5일장 같은 분위기의 소규모 시장이 여럿 운영되고 있었으며 과일과 채소 등이 주로 이 곳에서 유통ㆍ소비됐다.

▶열악한 인프라…특급호텔도 수시로 정전=첸나이에선 인도의 인프라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경험할 수 있었다. 숙소인 힐튼호텔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정전 사태가 벌어진 것. 이 호텔 직원은 “정부가 단전을 해서 전기가 잠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국가이지만, 3억명 가량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고 있다. 일각에선 이런 전력 수급 상황으로는 인도의 성장도 위협할 것으로 관측한다. 수력발전을 통해 전력 부족분을 채우려는 계획도 환경 파괴 논쟁으로 지지부진하다.

통신 인프라도 인도가‘브릭스(BRICs)의 총아’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다. 총 28개주로 구성된 인도는 주만 바뀌어도 휴대폰 로밍을 해야만 통화가 가능했다. 1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도 정비가 덜 된 도로 사정 때문에 3시간 이상 걸렸다. 경제활동의 동맥인 물류가 제대로 움직이길 기대하는 게 무리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도인들은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인도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 체인업체 크로마의 아지트 조쉬 최고경영자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강한 프리미엄 고객들이 태블릿PC 등 하이테크 제품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해 대비 제품 공급을 배 가량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도 진출 기업들, 냉랭한 분위기에 실망=해외 업체에 문을 활짝 연 것 같은 인도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랜 영국 식민통치가 끝나고 1947년 독립한 이후 무려 3차례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에 기댄 경험이 있고 수입ㆍ수출의 문호를 연 게 1991년부터다. 코카콜라도 인도에 진출하려다 한 차례 실패를 겪기도 했다.

인도에 진출했거나 투자를 고려하는 다국적기업은 요즘 인도 대법원을 주시하고 있다. 영국 보다폰에 자본이득세 25억 달러를 내라고 통보한 인도 정부의 결정이 대법원에서도 최종 확정될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보다폰은 지난 2008년 네덜란드에 세운 보다폰인터내셔널홀딩스를 통해 홍콩에 있는 인도 통신업체 허치스에사르를 1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에 인도 세무당국은 허치슨에사르의 자산이 인도에 있는 만큼 인도 당국에 세금을 내라고 한 것. 보다폰으로선 네덜란드 지사가 홍콩에 있는 허치슨을 인수한 것이기에 인도 측의 과도한 규제에 억울해 할 만도 하다.

인도 로펌인 니시스 드사이 어소시에이츠의 마헤시 쿠마르 변호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다폰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면 해외 기업의 인도내 투자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성장이 더뎌지고 있는 상황에서 융통성 없는 관료주의에 변덕스러운 규제까지 겹쳐진 인도로 인해 괜시리 골머리를 썩힐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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