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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사로잡은 한국산 파프리카
[헤럴드경제-농림수산식품부 공동기획] 

농업, 위기를 기회로 - ②농업, 수출산업으로 부활하다


김제 수출기업 ‘농산무역’

비닐 아닌 유리온실서 재배

日시장 70% 점유 쾌거



강진 영동농장 ‘그린음악쌀’

청원 ‘상수허브랜드’ 등

시설현대화 强小農 잇단 성공



전북 김제의 온실들은 특이하다. 비닐이 아니다. 유리다. 200~300m 길이의 정방형 유리온실 속에서 자라는 것은 파프리카다. 피망도 아닌 것이 색색깔로 매달린 게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 과일 같다. 하지만 파프리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최고 수출 농작물이 된 상품이다. 김제는 파프리카 수출의 본거지이자 메카다.

김제가 파프리카의 도시로 거듭나게 된 데는 수출전담 기업인 ‘농산무역’의 역할이 컸다. 지난 1995년 조기심 농산무역 대표의 동생인 조인기씨가 유리온실을 짓고 파프리카 재배를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됐다. 유리온실에서 키워낼 작물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중 조 대표가 일본에서 본 파프리카를 동생에게 권해줬고, 가능성을 본 조인기 씨가 일본과 네덜란드 등의 시장조사를 거친 끝에 재배를 시작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당시에는 ‘먼나라 이야기 같은’ 유리온실을 세우는 데만 10억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정부 지원과 융자를 받았지만, 공무원들도 “이게 되겠냐”는 반응이었다. 파프리카 재배 기술자를 네덜란드에서 상당한 연봉을 주고 초빙하기도 했다. 그렇게 1년여 만에 파프리카를 생산하게 됐지만, 파는 게 문제였다. 조 씨 남매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청과시장을 모두 돌아다녔지만 낯선 채소를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일본이다. 당시 일본 시장은 네덜란드산 파프리카가 독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품질만 보장된다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 대표 남매는 일본 경매시장을 돌아다니며 발로 뛰었고 1996년부터 일본 수출을 시작했다.

그 후 16년이 지난 지금, 연간 1억달러 규모의 일본 파프리카 시장의 70%는 한국산이 점유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유통기업인 ‘Dole Japan’ 상표로 판매되고 있는 농산무역의 제품을 비롯해 대부분은 김제지역 영농법인들의 제품이다. 식생활에서 만큼은 ‘아시아 속 유럽’인 일본의 까다로운 소비자들도 한국산 파프리카의 품질 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전북 김제의 농산무역을 찾아 생산설비를 시찰하고 있다. 농산무역은 선진 재배기법을 도입하고, 일본 수출시장 개척을 통해 파프리카를 수출 작목으로 재탄생시켰다.                                                                                                    [사진제공=농수산식품부]


김제의 사례는 FTA 시대를 맞은 우리 농정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감한 설비투자와 시장개척, 품질관리가 더해진다면 밀고 들어오는 외국산 농수산물 앞에서도 우리 농산물이 설자리가 충분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제뿐이 아니다. 한ㆍ미, 한ㆍEU FTA로 우리 농업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와중에도 실력과 의지로 무장한 농업인들이 우리 농업의 체질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공사례는 많다. 강진의 영동농장은 ‘그린음악쌀’로 유명하다. 틈틈이 모차르트 클래식과 국악을 듣고 자란 유기농 쌀은 1.5배 비싼 가격에도 손님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단순히 값싼 수입산 쌀로는 ‘그린음악쌀’을 넘어설 수 없다.

충북청원의 상수허브랜드는 다용도 허블작물에 주목해 20년 만에 매출 100억원이 넘는 농업기업이 됐다. 최근에는 생산설비 자체가 테마파크가 되어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기업형 농업뿐만이 아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력으로 개방의 파고와 싸워내고 있는 ‘강소농(强小農)’들도 많다. 허브작물, 파주딸기, 가두리 방식 전복양식, 쌀로 만든 묵 ‘라이스 젤리’ 등 알려진 성공사례만 수백건이다.

물론 평생 정직하고 묵묵하게 한길을 걸어온 고령의 농수산인들에게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농어가에 대해서는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FTA대책의 상당부분을 시설현대화, 첨단시설투자에 할애하고 지난해부터 5년간 10만 강소농 경영체를 육성하겠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농산무역을 방문했을 때를 이렇게 말한다. “보통 현장을 가면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대부분인데 농산무역 분들은 ‘장관님 우리 농업도 희망이 있습니다’하더라. 그때 눈물이 핑 돌았다. 정부나 지자체가 농어민 단체, 농민과 합심하면 위기를 기회로 반드시 바꿀 수 있다.”

<홍승완 기자>
/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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