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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인들 식습관마저 바꾼 이 만화 ‘뽀빠이’가 벌써…
아마도 ‘아메리카노(tvN ‘코미디빅리그’)’의 김꽃두레가 그를 만났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대머리 골초 영감탱이” 내지는 “근육덩어리 주걱턱”이라고.

실제로 그렇다. 사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늘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다니는 못난이다. 키도 작고 머리카락도 없는 주걱턱일 뿐인 이 마린보이는 시금치만 먹으면 힘이 세져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외모만으로는 그리 매력적이라 할 수 없는 이 바다 사나이는 첫 등장 이후 5년여 만에 미국인의 식습관마저 뒤바꾼 최고의 히트캐릭터가 되기에 이른다. 경쟁상대도 엄청나다. 월트디즈니의 일등 캐릭터 미키마우스였다.

만화 캐릭터 뽀빠이는 1929년 1월17일 처음 등장했다. 바로 오늘이 뽀빠이의 83번째 생일인 셈이다. 물론 자신이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뽀빠이는 엘지 크라이슬러 시가(Elzie Crisler Segar)의 연재 만화 ‘팀블극장(골무극장)’을 통해 조연으로 얼굴을 비치며 점차 독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사실 이 만화는 뽀빠이의 여자친구인 올리브 오일과 올리브의 오빠인 캐스터, 올리브의 남자친구 함이 등장해 매회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이 만화에서 뽀빠이는 등장 6개월 만에 올리브의 콧잔등에 입을 맞추며 본격적인 연인 선언에 돌입했다. 당시 올리브는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 함을 버리고 뽀빠이를 선택했고, 이때부터 뽀빠이는 올리브와 미국인의 사랑을 동시에 받게 됐다.

이후 지면만화 뽀빠이는 1933년 파라마운트에 의해 ‘베티 붑의 대나무 섬(Betty Boop’s Bamboo Isle)‘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매이션화된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온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솟는‘ 뽀빠이 캐릭터가 태어난 계기는 바로 이 시점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의외로 높은 인기를 모으자 탄력을 받은 파라마운트는 뽀빠이를 시리즈로 만들었다. 바로 ’뱃사람 뽀빠이(Popeye the Sailor Man)’라는 제목으로다.

뽀빠이가 인기를 끌 당시 만화업계 트렌드는 코믹만화였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블론디(BLONDIE)나 리틀 킹(Little King) 등도 높은 인기를 모았으나 뽀빠이만큼의 인기는 아니었다. 뽀빠이는 지면만화로 시작해 텔레비전을 통해 전미국인을 사로잡는 인기를 누렸고 아케이드 및 비디오 게임 광고는 물론 심지어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뮤지컬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됐고, 또 리메이크됐다.

뽀빠이는 수많은 매체 안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로 등장했지만 그 기본 성격은 변함이 없다. 수많은 난관과 고비를 맞으면서도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겨내고 연인 올리브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등장하는 삼각관계 러브라인은 여기에도 존재했다. 뽀빠이와 올리브, 브루터스 사이의 에피소드도 때문에 쏠쏠한 재미였다. 물론 삼각관계라고 하기엔 브루터스는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이에 뽀빠이는 브루터스로 대변되는 사악한 존재들에 대항하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그런 뽀빠이는 참는 데에 익숙한 소시민들의 억눌린 감정을 분출해준 대변인으로 상징됐다.


뽀빠이가 미국인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나는 나야. 그게 나의 전부야(뽀빠이의 단골대사)”라고 말하는 미국식 개인주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화영화 뽀빠이 시리즈에서 뽀빠이가 브루터스를 물리칠 때는 항상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쓰였으니 그 만큼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뽀빠이의 높은 인기와 맞물려 가장 큰 수혜를 본 이들도 있었다. 바로 시금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다. 뽀빠이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금치를 먹으며 변신했다. 실제로는 제로에 가까운 칼로리를 가진 채소이기에 아무리 그것을 먹어봤자 원기충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뽀빠이는 늘 이 시금치를 먹고 힘을 얻었다. 만화 뽀빠이의 인기를 반영하듯 당시 1930년대 미국에서는 시금치 소비량이 30% 가량 증가했을 정도이며 심지어 ’시금치 통조림‘이 처음 생겨나 불티나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뿐아니라 시금치 소비량 증가에 감격한 텍사스주의 시금치 생산지인 크리스털 시티 측은 1937년 뽀빠이 동상까지 세웠을 정도이니, 뽀빠이가 전미국인의 식단을 바꿨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단지 미국에서만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이미 뽀빠이하면 전문MC 이상용이 떠오르고 추억의 과자 뽀빠이도 떠오른다. 만화 뽀빠이만큼 역사가 깊은 삼양식품의 별뽀빠이는 38년 역사를 자랑하는 라면과자로 1972년 2월 첫 선을 보인 식품이다. 당시로서는 꽤나 생경했던 과자로 라면은 당연히 끓여먹는 것으로만 인식했던 것을 달콤하고 고소한 과자로 만들었고 그 안에 별사탕을 넣어 골라먹는 재미까지 선물했다. 뽀빠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어린이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가히 뽀빠이의 세계점령이라 할 만하다.

이후에도 뽀빠이의 인기는 여전했다. 그 인기 못지 않게 전세계엔 뽀빠이를 대상으로 한 수많은 상품이 만들어졌다. 턱없이 높은 저작권료에도 불과하고 그랬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뽀빠이의 작가 세거가 사망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서는 광고, 인형, 식품 등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이 뽀빠이 캐릭터로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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