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정치 이슈들이 팝아트와 만났다. 그러나 무겁지 않다. 밝고 쉽다. 원색의 전시실을 꽉 채운 디지털 페인팅과 조각, 영상, 설치작업을 살펴보면 ‘오호!’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 신문로의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이 임진년 첫 전시로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천민정(39ㆍ메릴랜드 미대 교수) 작가의 ‘폴리팝(POLIPOP)’전을 개막했다.
‘폴리팝’은 ‘폴리티컬 팝아트(Political Pop Art)’의 줄임말로, 작가가 지난 15년간 펼쳐온 탈 장르의 작품세계를 총칭한다. 천민정은 “중국 작가들이 정치적 내용을 팝아트와 결부시킨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게 정치적 팝아트였다. 그걸 줄여 ‘폴리팝’이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긴 막대사탕 ‘롤리팝(Lollipop)’처럼 천민정은 첨예한 이슈들을 달달하니 먹기 좋게 요리했다. 때문에 작품들은 한결같이 직설적이고, 원색적이다.
천민정‘ Yes, We Can! Obama&Me’, Digital painting, 152.4×243.8㎝ |
전시는 세 파트로 짜여졌다. ‘오바마의 방’, ‘독도의 방’, ‘다이아몬드의 방’이다. ‘오바마의 방’에는 ‘우린 할 수 있어! 오바마와 나’란 제목의 디지털 페인팅이 걸려 있다. 미국 정부가 2차대전 당시 여성들을 공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를 패러디한 이 작품의 왼쪽엔 오바마가, 오른쪽엔 작가가 투영돼 있다. 두 사람 모두 불끈 솟은 알통을 자랑하며,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인종적, 이념적 공세에 시달리는 오바마와,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자신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은 재치가 눈길을 끈다.
‘독도의 방’은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과 남북관계, 한ㆍ중관계, 아시아와 서양문화의 관계를 디지털 회화에 담아낸 작품들이 내걸렸다. ‘다이아몬드 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소비행태, 자본주의 폐해로 인해 무너지는 경제와 문화, 환경문제를 다룬 디지털 회화를 볼 수 있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천민정의 이번 전시는 가히 시각이미지의 융단 폭격이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전시는 3월 11일까지. (02)737-765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