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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까운 백자 왜 박살?"에 名匠 임항택 "그래야.."
도예가 항산(恒山) 임항택은 ‘진사 백자’ 분야에서 알아주는 도예가다. 2004년 정부로부터 ‘도예부문 명장(名匠)’ 칭호를 부여받은 항산 선생은 최근들어 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진사(辰砂)백자’를 30여년 넘게 연구해왔다. 지난 2009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사 백자를 모아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던 그는 진사로 다양한 꽃들과 홍시,소나무 등을 그려넣은 백자 작품을 빚고 있다.

항산 선생이 매서운 추위가 극에 달했던 지난 11일, 경기도 이천의 자신의 장작가마를 여는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1월 초부터 닷새간 불이 활활 타올랐던 전통식 가마의 불이 꺼지자 선생은 가마의 입구를 막았던 벽돌을 하나둘씩 떼어낸 다음, 좁은 입구를 거쳐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조심스레 백자호며 주병, 다완 등을 한점 한점 꺼냈다. 장작가마 주위를 둥글게 에워싼 선생의 지인이며 문하생, 도자기 애호가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를 주시했다.

그러나 항산 선생은 유약이 도자기 표면에 잘 구현되지 않은 백자라든가, 불을 덜 받아 설익은 백자들을 칼날같이 골라내 이들을 한켠으로 모았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큰 하자가 없는 듯해 보이는 백자도 선생은 "이 건 불티가 묻었군. 흔히들 땀띠 났다고들 하는데 완성품이 될 수 없다"며 솎아냈다.



그리곤 한켠으로 골라낸 아까운 도자기들을 가마 바로 옆 도자기 파쇄하는 곳(일종의 도자기 무덤)으로 옮긴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던져버렸다. 방금 가마에서 꺼낸 멀쩡(?)한 도자기들을 배구공 던지듯 두팔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치는 것이었다. 물론 도자기들은 일거에 박살이 났다.
그러자 주위에선 "아이고, 아까와라!" "저건 괜찮은 것 같은데...에고 에고"하는 탄식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한 도자기팬이 "선생님, 일반인이 볼 때는 꽤 잘 나온 것 같은데 그 것마저도 무참하게 깨뜨리시네요. ‘저 주시면 안되요?’하고픈 마음이 굴뚝입니다.. 왜 그렇게 쓸만한 것까지도 인정사정 없이 깨뜨리시나요?"라고 물었다.

이에 항산은 빙긋 웃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 "처음 ‘이 도자기는 못쓰겠네, 불합격이네’하는 생각이 들 때 여지없이 깨뜨려야 한다"며 "그 걸 갈등하다가 잠시 후에 보면 ’좀 아깝네’라는 마음이 들고, 반나절이 지나면 ’에이, 쓸만 한데?’라고 마음이 슬며시 바뀐다"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이튿날엔 그 불합격품을 쓰다듬으며 ’여보게, 내가 이 걸 깨부술 뻔 했어, 정말 큰 일 날뻔 했지?’하고 정반대의 심정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 그는 "도자기 장인들도 인간인지라 솔직히 갈등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걸 그냥 놔둘 경우, 반드시 화살이 돼 내게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즉 약간이라도 흠결이 있거나 애매한 요소가 있는 도자기는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깨뜨려야 자신의 이름이 달린 도자기들의 완결성, 즉 수준을 고르게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약해져서 "그러세요. 이거 조금 빠지긴 하지만 아까우니 가져가세요"라고 했다간 종국적으론 자신의 이름과 항산 도자기의 격을 떨어뜨릴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 점이 바로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의 자세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항산 선생이 몰두하는 진사(辰砂)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넣을 때 쓰이는 붉은 안료를 가리킨다. 백자 중에는 순백자, 청화백자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진사백자의 매력에 매료돼 이를 끈질기게 연마해온 임항택 작가는 "대학졸업 후 교편을 잡다가 도자기에 빠져든 어느날, 조그만 붉은 진사 파편이 나를 사로잡았다. 온몸을 태워 버릴듯한 처절한 선혈의 그 붉은색,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마치 먼 우주의 미로로 내 자신이 빨려드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했던 그 빛깔을 재현하기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을 거쳐 이젠 안료를 특허 등록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산은 "제조방법과 그 안료를 나혼자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진사백자의 실체를 후학들에게 전수해 보면 볼수록 그윽하고, 오묘한 진사의 세계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들려준다. 그는 진사안료로 붉은 매화(홍매)를 비롯해 붓꽃, 모란, 국화, 연꽃, 백합, 장미, 홍시 등을 백자에 그려넣는다. 그리곤 전통가마에 이를 구워 선홍(鮮紅), 진홍(眞紅), 심홍(深紅)의 진사백자를 선보이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에 ‘항산(恒山) 도예연구소’를 설립한 임 명장은 1977년부터 35년째 전통 방식으로 ’진사다운 진사’를 개발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 노력으로 단순히 붉은 진사 뿐 아니라, 맑고 밝은 진사, 투명하고 청명한 진사까지 다채로운 진사의 멋을 구현 중이다. 항산은 굵은 소나무가 그려진 백자청화노송문호를 비롯해, 홍매가 그려진 진사백자청화채매화문 등을 즐겨 빚는다. 또 탐스런 모란이 표현된 진사백자모란문호, 진사백자홍시문호 등도 마찬가지.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황금을 안료로 쓴 황금진사(黃金辰砂) 백자. 임 명장은 명지대학교와 공동으로 황금진사 백자를 연구해 ’백자황금진사채매화문호’(白磁黃金辰砂彩梅花紋壺) 등을 구현한바 있다. 이 황금진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의 진사백자는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임 명장은 "옛 부터 붉은 색은 왕실의 색으로 도자, 목기, 가구 등 여러 분야에서 귀히 다뤄졌고 .도자에서도 마찬기지였다"며 "흔히들 조선의 도자기 중 코발트 안료를 쓴 청화백자를 최고로 꼽으나 진사(辰砂)백자는 가마에 구웠을 경우 성공확률이 더 낮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아, 더 귀했다"고 밝혔다. 진사는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붉은 색깔이 선명하게 나올 확률이 낮아 숙련된 장인이 아니고선 도전하기 어려웠던 점도 진사백자의 희소성을 더했다는 것.

그는 "우리 선조들 가운데 붉은 빛을 잘 낸 장인들이 있었다. 시기적으론 고려 중기인 12세기부터로 청자와 함께 부분진사 형태로 나타났고, 이후 뜸했다가 조선 18∼19세기 들어 제법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진사라고 부른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며, 조선시대에는 주점사기(朱點沙器) 혹은 진홍사기(眞紅沙器)라고 불렀다고 소개했다.

2005년 진사안료의 제조법과 그 안료로 발명특허(0506119)를 등록한 그 항산 임항택은 서울 신세계화랑 개인전(1977년)을 시작으로 일본 동경 구보타화랑 개인전(1995년),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2002년) 미국 LA 코스모스백화점 전시회(19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브르그전(1997년), 일본 조선진사백자전(2010년) 등 개인전을 14회 열었다. 또 다수의 그룹전 등에 50여회 참여했다. 현재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술학과에 출강하고 한국금융연수원 강사를 역임 중인 그는 "한국인의 얼인 진사백자의 오묘함을 전하는데 계속 힘쓰겠다"며 말을 맺었다. 항산의 장녀이자 전수자인 임창랑도 도예가로 활동 중이다. 031)632-7173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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