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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박판의 기막힌 술수...이래서 돈잃는다
경찰이 전하는 필패의 이유

가정 주부, 회사원 등 불법도박을 하다 경찰에 붙잡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 두 번째는 운이 따라주면 크게 터질 거란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번엔 딸 줄 알았는데…죄송합니다”라며 흐느낀다. 빚이 적게는 수천 만원에서 수십억에 이르지만 이들의 믿음은 굳건하다.

하지만 이들은 도박판에서 돈을 딸 수 없다. 도박은 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갖은 술수와 편법이 판치는 도박판은 속고 속이는 고도의 전략장이다. 보이지 않는 기술이 승리를 좌우한다.운도 기술이 만든다. 평범한 당신이 이길 수 없었던 도박판의 그 은밀한 속임수를 실제 발생했던 사건들을 통해 들여다봤다. 

▶’당신을 잡기 위해’ 도박판에도 역할이 있다=보통 전문 도박단에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실제 게임을 하는 일명 ‘타짜’와 유인책과 모집책 등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11월 경기양주경찰서는 사기도박단 일당 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2006년부터 20여회에 걸쳐 양평지역의 재력가 남성 5명을 사기도박에 꼬드겨 총 10억원을 챙겼다.

이들이 재력가 남성들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억대의 돈을 뜯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다. 바로 재력가를 놓고 각자 역할을 나눠 접근한 것. 70대 재력가인 피해자를 도박판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은 유인책 L(45ㆍ여)가 맡았다. L씨는 우연을 가장해 피해자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데이트를 핑계로 한적한 교외 식당이나 콘도로 끌어들여 사기도박을 벌였다. 

경찰 측은 “피해자들은 유인책 등과 함께 골프를 치거나 성관계를 가져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면서 “피해자는 L씨가 공범인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처음엔 피해자에게 져주는 방식으로 피해자가 도박에 대한 재미와 욕심을 갖게 한뒤 판돈을 키운 뒤 속임수를 써 한번에 큰 돈을 손에 넣었다. 한 경찰관계자는 “미인계 역할을 하는 유인책이 일당 중 한명에게 크게 잃게 한뒤 피해자가 상대에게 적대감을 느끼게 해 자진해서 게임에 달려들게 하는 것도 수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카드 ’바꿔치기와 끼워넣기’=도박판에서 가장 흔한 속임수는 바꿔치기다. 위 사건에서 도박판으로 피해자를 끌여들인 도박단은 바꿔치기 수법을 통해 도박판에서 피해자의 거액을 가로챘다. 기술은 설계꾼이라 불리는 총책 K(57)씨가 맡았다. 이들은 도박판에 화투 ‘바꿔치기’를 하는 일명 ‘선수’를 기용해 피해자로부터 수억원대의 금액을 가로챘다. 

이들은 ‘목카드’, ‘탄’ 수법 등 피해자들이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하는 순간 미리 준비해뒀던 카드를 게임판에 넣는 방법으로 한 게임에서 최고 1200점을 몰아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만 알도록 카드 뒷면에 표시를 해뒀기 때문에 육안으로 목카드를 식별하긴 어렵다. 또한 ‘탄’은 워낙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포착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증거도 남지 않아 쉽게 당할 수밖에 없다.

바꿔치기 기술이 부족한 도박단의 경우 편법을 쓰기도 한다. 지난해 4월 강원 정선경찰서에서 잡힌 전문도박들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Y(42)씨를 총책으로 3명으로 구성된 이 도박단은 2010년 강원도 정선의 한 음식점에서 피해자 S(31)씨와 도박을 하던 중 S씨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탄 음료를 먹여 정신을 혼미하게 한 승률을 조작한 포커 패를 이용하거나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570여만원을 챙겼다.

몰래 카드를 끼워넣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때 키워넣는 카드를 도박 전문용어로 ‘탄’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 서울 광진경찰서에 사기도박으로 붙잡힌 Y(54)씨가 바로 이런 수법을 썼다. 그는 서울의 모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자신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조작한 카드를 게임용 카드 뭉치에 몰래 끼워 넣는 수법으로 1년여동안 89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들은 카지노 직원도 매수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직원을 매수해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카드를 조작한 뒤 다시 보관장소에 갖다 놓는 방식으로 도박에 주기적으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탄넣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속임수로 짜놓은 탄을 왼손에 쥔 채 테이블 밑에 들고 있다가 오른쪽 카드는 버리고 왼손 카드로 돌리는 주먹탄, 담뱃재를 터는 동작을 하면서 카드를 바꿔치는 재떨이탄 등이 있다. 



▶속임수도 최첨단을 달린다?=전문도박단의 속임수도 나날이 진화한다. 단순한 손기술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기를 이용해 불법도박을 벌이는 것. 특수 안경을 쓰는 수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포항남부경찰서는 2011년 5월 특수 렌즈와 카드를 이용해 사기도박을 벌인 A(28)씨를 구속했다. A씨는 인터넷을 통해 카드 뒷면에 특수표시가 된 카드를 볼수 있는 콘텍트렌즈를 구입해 특수카드를 사용한 사기도박을 벌여 B(25)씨 등 피해자 3명으로부터 3000만원을 가로챘다. 특수 콘텍트렌즈로 볼수있는 일명 ‘렌즈카드’는 카드 뒷면을 형광 염료를 사용해 표시한 것으로 일반적인 가시광선에서는 보이지 않고 블랙라이트 조명에서만 보인다. 티가 잘 나지 않아 사기도박에서 많이 쓰이는 수법이다. 하지만 이 렌즈를 키면 사물이 어둡게 보이기 때문에 도박장 조명을 평소보다 밝게 켜놓는다는 특징을 보인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한 신종도박기기도 등장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3월 도박 피의자들을 검거하고 깜짝 놀랐다. 피의자들이 사용한 수법이 전문가 뺨치는 최첨단 수준이었던 것. 이들은 LED를 활용한 사기도박 테이블’ ‘속옷형 무전기’ ‘특수몰래카메라’등을 이용해 7개월간 15차례에 총 8명에게서 5억3000만원을 뜯어냈다.

여기에 사용된 LED 테이블은 기존에 형광물질 등 특수용액을 이용해 인쇄한 ‘목카드’를 이용하는 고전적인 수법과 달리 조작되지 않은 일반카드를 엑스레이(X-ray)로 보는 것처럼 판독하는 신종수법이다. 

LED 약 1500여개를 심은 테이블에 카드를 올려놓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 영역의 빛이 카드를 투과하고 이 때 특수 제작한 몰래 카메라로 빛을 촬영, 도박장 외부에 있는 ‘모니터실’로 카드 문양을 판독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멘트기사’들은 판독한 상대방의 패를 사기도박에 참가한 ‘선수’에게 실시간으로 무전을 통해 알려주고 배팅할 지를 지시하는 수법으로 피해자를 속였다. 사기도박 선수들은 개조한 무전기를 숨긴 속옷을 갖춰 입었으며 귓속에 3㎜ 크기의 자석으로 된 소형 이어폰을 넣어 ‘멘트기사’와 교신했다.

경찰 관계자는 "첨단 IT 기기가 등장하는 등 사기 도박단의 수법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일반인이 딴다는 것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황혜진 기자>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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