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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역사…패권전쟁의 희생양
지난 1992년 개봉됐던 영화 ‘인도차이나’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소재로 1884년부터 60여년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베트남인들의 삶과 애환을 잘 담아냈다.

비단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도차이나반도에 위치한 국가 대부분의 근대사는 이처럼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약탈로 얼룩졌다. 1989년까지 ‘버마’로 불린 미얀마도 인도차이나 패권전쟁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중국, 인도 등과 맞닿은 전략적 요새이자 천연자원 부국이라는 이점이 오히려 숙명적 멍에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5세기 무렵 시작된 고대 미얀마의 역사는 꽤 찬란했다. 특히 11~13세기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인 파간 왕조시대는 지금도 미얀마인들이 긍지를 느낄 만큼 번성기였다.

파간 제국이 몽골군의 침략으로 저문 뒤엔 몇백년간 여러 왕조의 흥망이 거듭됐다.

이후 18세기 들어선 버마 왕국은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을 정복하며 인도차이나를 호령했다.

그러나 미얀마의 근ㆍ현대사는 ‘식민통치→독립→혁명→군사독재 및 민주화 좌절’로 굴곡진 수난시대였다.

두 번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1885년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1930년대 들어 아웅산, 우누, 네윈 등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됐고, 결국 1948년 1월 4일 독립선언에 성공했다.

독립 후 미얀마는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했으나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경제난, 내전 등으로 혼란이 커졌다. 급기야 1962년 네윈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경제 파탄으로 민주화 시위가 빗발쳤고, 1988년 영국에서 돌아온 아웅산의 딸 아웅산 수치가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 그 중심에 선다. NLD는 국민적 지지를 업고 1990년 총선에서 압승했으나 군사정부는 정권이양을 거부하며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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