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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를 사랑한 산골 여고생, 건국대 수의대 합격
“구제역으로 죽어가는 송아지를 살리지 못해 정말 미안했어요. 구제역의 공포를 몸소 느끼면서 수의사나 전문 검역관이 돼 동물 전염병 백신을 개발하고 진심으로 동물을 애정으로 보살피고 싶어요.“

지난 겨울 구제역이 창궐했을 때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아버지와 혹한 속에서 방역작업을 벌이며 수의사의 꿈을 키워온 시골 여고생 이현주(18ㆍ강원 홍천여고 3ㆍ사진) 양이 2012학년도 건국대 수시모집 입학사정관전형(KU농어촌학생전형)에서 국내 수의학 분야 명문대인 건국대 수의학과에 합격했다.

도시에서 먼 시골은 문화, 사회, 교육적 혜택이 적은 곳이지만 이 양에게는 수의사의 꿈을 키워준 뿌리와도 같은 곳이다. 이 양은 “아버지께서 축산업을 하시지 않았더라면 소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을 것이고 동물에 대한 애정을 키워갈 기회조차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기에 시골은 저를 송아지의 잉태와 출산을 지켜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꿈으로 인도해준 곳”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 양은 아버지 이봉영(50) 씨가 축산업을 하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소 여물을 주는 일을 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소 우리 청소와 왕겨 뿌려주기, 주사 주기, 송아지 돌보기 등을 통해 소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지난 1월 마을 주변의 소가 구제역 사태로 살처분되던 때에는 한동안 학교에 가지도 못한 채 아버지와 매일 혹한 속에서 소 90여 마리를 지키기 위한 고된 방역작업을 벌였다.

강추위로 언 송아지를 거실로 데려와 난방기구를 틀어 주는 등 정성을 들였지만 친구같던 소가 숨을 거두자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축사 인근의 고속도로 공사로 인한 소음 때문에 소가 스트레스를 받아 털도 생기지 않은 단계에서 송아지를 조산할 때는 분통도 터졌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소를 가까이했던 이 양도 소똥을 치우는 일은 냄새 때문에 고역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장마철에는 쏟아지는 비에 속옷까지 흠뻑 젖었지만, 자신이 집에 들어가버리면 소들이 쫄쫄 굶을 것 같아 참았다.

이 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힘들었지만 365일 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아빠를 생각하면서 꾹 참았다“고 말했다.

건국대 입학사정관실은 “이 양은 꾸며진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자신의 순수한 내면이 드러나는 순박함과 동물을 사랑하는 진심이 돋보였으며,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우수하고 공교육 내에서 교내외 활동에 충실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밝혔다. 이 양은 의학 분야에 관심이 높아 생물수업 시간에 돼지 심장 해부를 자청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하고, 이 양이 만든 잘 짜여진 개인 학습플레너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반 전체의 학습계획표가 되고 했다. 자신의 목표와 관련된 분야의 공부도 충실해 화학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고교1학년 3등급에서 3학년 때는 1등급으로 상승했고, 좋아하는 과목인 생물은 고교 생활 내내 1등급을 놓치지 않았다.

이 양은 “졸업하면 수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지만 구제역의 공포를 현장에서 느낀 사람으로서 전문 검역관으로 일해볼 생각도 있다“면서 ”수의사가 되든, 검역관이 되든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동물을 애정으로 보살피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진용 기자 @wjstjf>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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