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일(이하 현지시간) 공화당에서 추앙받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상기시키면서 공화당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을 망치고 있는 극렬한 개인주의를 걷어내고 균등한 기회 제공과 중산층 살리기에 ‘올인’해야 한다는 점을 내년 대선 레이스의 라이벌당인 공화당 계열이자 100년 전 인물인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동원해 강조한 것이다.
6일 오바마 대통령은 캔자스 주 오사와토미 고교를 찾아 “중산층을 두텁게 만든 ‘기회 균등’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이는 또 하나의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이슈를 정의하는 것이고 중산층이 붕괴하느냐 마느냐의 중대 기로에 있다”고 역설했다.
AP는 캔자스 주 오사와토미는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10년 ‘신국가주의(New Nationalism)’라는 진보적 정치철학을 표방한 곳이라고 설명하며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대선 주자를 뽑기 한 달 전에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기억을 불러들였다고 썼다. 영리하게 계산된 시점과 장소를 택한 셈이다.
‘신국가주의’는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던 루스벨트 집권기에 정부가 복지와 사회정의를 위해 강력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로, 그의 공평정책(square deal)은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기회균등’과 일맥상통한다.
이날 연설의 상당 부분을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1%의 가진자와 99%의 대중 사이의 간극을 부각시켰다. 그는 “특정 최고경영자는 그의 직원보다 110배나 더 벌고 있다”면서 “부자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지만 공화당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상위층이 더 많은 부를 가져야 그 밑에 계층이 일자리도 얻고 수입도 늘어난다는 이른바 ‘통화하향침투설(trickle down economics)’에 날선 비판을 가한 것이다.
공화당의 정책은 부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기업을 살찌게 하는 노선이라며 공화당에 미래를 맡길 경우 ‘아메리칸 드림’은 사리질 것이라고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철학은 간단하다”며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힘으로 자기를 지키고, 각자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때 더 잘 살게 된다는 것인데 나는 그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걸 말하려고 여기 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공화당 경선 주자인 미트 롬니와 뉴트 깅리치에 비해 그를 부각시키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AP는 이 연설이 재선에 도전하는 오바마가 펼칠 캠페인의 골격을 엿보게 한다고 해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루스벨트는 그때 이곳에서 그 연설을 한 이후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어 공산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그때 그가 주창했던 그 원칙 때문에 미국은 지금 더욱 부강한 나라, 강력한 민주주의 나라가 됐다”고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수백만 가정이 아이들을 푸드뱅크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비통하다”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런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WP 등은 오바마가 현재 의회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급여세 감세안 통과도 재차 제안했다고 전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오바마 재임기간에 나타난 높은 실업률과 부채증가를 설명하지 못해 절박하게 새로운 슬로건 만들기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