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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로의 눈물…그 원인과 전망
유로화가 속절없이 침몰하고 있다. 
유로화 가치는 지난 27일 현재 달러당 1.3239를 나타내 연고점 1.4445 대비 8.34% 하락한 상태다. ‘부채의 습격’과 이로 인한 유로존의 실물 경기 침체가 유로화 약세의 요인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전문가들도 해법이 무엇인지 감을 못 잡는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 유로 본드 등 최근 논의되는 각종 대책들은 결국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늘리는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개인으로 치면 돌려막기를 해서 파산을 연장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유로화 붕괴 및 유로존의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란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부채의 습격=유로존발 위기는 손을 쓰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르면서 2차 세계 대전 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굴욕을 맛봤고, 복지 선진국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 국가들이 국가 부도 위험에 처해 있다. 내년에도 선진국 채권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하향이 잇따르면서 금융시장을 수시로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우선 유로존을 파국 직전으로 내몬 직접적인 원인은 세수 이상의 과다 지출을 부른 ‘기름진’ 복지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후 주요국들은 위기 타개를 위한 다양한 금융ㆍ재정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기대했던 경기 회복 효과는 미약했고, 공공 부채만 불리고 말았다. 결국 민간에서 정부로 불씨가 옮겨붙은 셈이다. 유럽 재정위기를 2008년 미 금융위기의 ‘사생아’라고 부르는 이유다.

유로존의 단일 통화 시스템이 현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도 있다. 단일 통화 채택 후 유로존 주요 금융기관들의 엄청난 자금이 1~2%포인트라도 더 높은 금리를 좇아 주변국으로 이동했다. 덕분에 2009년만해도 그리스는 3.9%의 낮은 금리로 10년짜리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야노스 파판토니우 전 그리스 재무장관은 “유로화는 일종의 파라다이스였다”고 술회했을 정도다.

금융기관이 사들인 각국 국채를 통해 유로존은 더욱 긴밀히 엮였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부채를 끌어들여다쓴 결과는 잔인했다. 당시 안목없이 매수했던 국채들은 유로존 금융권에 시스템 리스크란 엄청난 화를 불렀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서방세계는 신용대출과 부채를 좋아한다. 그들은 마치 선진국이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현실 세계를 부정했고, 이는 결국 유럽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유로존, 갈림길에 서다=1999년 1월 1일 공식 출범한 유로존은 세계 최초의 단일 화폐 체제라는 실험적인 시도로 주목받았다. 꿈과 기대 속에 첫발을 내디뎠던 유로존 프로젝트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12년만에 좌초 위기에 맞닥뜨린 상태다.

유로존의 태생적 한계가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과거엔 대부분이 자국통화 표시 부채였기 때문에 금융억제와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반면 유로존은 단일 통화를 쓰고 있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 미국 은행과 달리 유로존 은행들은 해당국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사시 통합된 금융시스템의 작용이 어렵다.

따라서 결국 유로화 붕괴와 유로존 해체로 귀결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가진 연설에서 “유로화가 잠재적으로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현 유로화 위기는 75년 마다 발생하는 대규모 경기침체의 서막”이라며 “10년 뒤 몇몇 국가는 더이상 유로화를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탈출구는 없나=현 위기 극복의 첫걸음은 부채 파티를 즐긴 유럽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다. 유로존 각국 정부들의 강도높은 긴축 재정안과 더불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부유세 논의가 활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불황이 겹치면서 국민 반발로 각국은 긴축안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내년에는 세계 주요국의 대선을 앞두고 있어 긴축은 커녕 선심성 정책 남발에 따른 지출 확대 소지가 크다.

로고프 교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유동성 문제”라는 점에서 현 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등 위기국을 구제하기 위해 돈을 푸는 것은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것이란 뜻이다. 


일각에선 ECB가 무한대 국채 매입에 나설 것을 촉구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리스본 조약에 의해 ECB의 개별 국가에 대한 직접 대출은 금지돼 있다. 특히 ECB에서 가장 많은 지분 참여를 하고 있는 독일의 반발로 ECB의 역할 확대엔 험로가 예상된다.

이철희 동양종금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물론 조약 변경 이전에 임시적으로 EFSF에 대한 ECB 대출을 통해 국채 매입을 지원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독일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로고프 교수는 “EU가 서둘러 위기국에 대한 채무 탕감에 나서야 한다”면서 “이때 독일이 핵심 역할을 한다면, 독일인은 ‘슈퍼 유럽인’이 될 것이나 이는 독일에 미친 짓에 가깝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는 해당국 경제는 물론 국제 금융 시스템에 ‘독배’가 될 수 있다.

EU 창설자 중 하나인 자크 들로르 전 EU 집행위원장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유로존이 분리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면서 “지금 필요한 건 전체를 지휘ㆍ조정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유럽 중앙기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디폴트를 선언한 국가는 대외 신용 추락으로 중장기에 걸쳐 국제 자본시장 접근이 제한되고, 정부와 민간 부문의 차입 비용 증가로 이어져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01년 디폴트를 선언했던 아르헨티나는 2005년 3월 채무 구조조정을 마쳤지만 2008년 국채 규모가 다시 위기 때 수준으로 증가했었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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