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오늘이 마지막 날일지라도 연구하리라
세계최초 이종간 장기이식 성공으로 당뇨병 환자들의 빛이 된 박성회 서울대 교수…병마와 싸웠던 그의 굴곡진 삶과 도전
참 우여곡절도 많았다, 

십대에 얻은 갑상샘 기능항진증·이명·당뇨…그리고 교통사고까지

누군가에겐 비관적인 삶이 내겐 도전이었고 목표였다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나의 사명은 연구를 계속 하는 것임을 알았다

명예와 돈을 한꺼번에 거머쥐고 싶진 않다…여정 자체가 보상이기에.



“나 별로 말할 거 없는 사람이야. 연구하고 술 먹고, 술 먹고 연구하는 게 다인데 어떻게 두 페이지를 쓰려고 그래….”

이달 초 세계 최초로 이종간 장기이식을 통해 당뇨병 완치의 가능성을 열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성회(64)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놓는 연구결과마다 화제를 일으키는 과학자의 생활이 고작 연구와 술 두 가지라니. 거기다 박 교수 스스로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점은 ‘뭔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게 했다. 사연 많아 보이는 굴곡진 스토리가 궁금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학대학 연구동 1층에 마련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수통의 전화가 왔다. 국내ㆍ외 언론과 각종 학회에서의 인터뷰 및 강연 요청이었다.

박 교수는 “요즘 정말 눈코 뜰새 없이 각종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다”면서 “나의 연구에 관심을 가져줘서 기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구자인 내가 너무 외부에 알려지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이유는 이랬다.

“연구자가 너무 유명해지면 그 사람 의견에 이의를 나타낼 수가 없다. 과학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연구와 발견에 의해 주장하는 바가 뒤집어지고 반박될 수 있다. 그래야 과학이 발전한다. 하지만 과학자가 너무 유명해지는 순간 그 본래의 기능을 잃게 된다. 그게 두렵다.”

박성회 교수는 과학자다. 25년째 면역학을 연구해온 국내 면역학의 대가다. 1999년에는 에밀폰 베링 의학대상을, 2001년에는 면역학 연구로 대한민국 학술상을 받았다. 둘 다 면역학 분야에서는 최고의 상으로 꼽힌다.

박 교수는 특유의 쿨한 어법으로 굴곡진 자신의 삶과 연구 인생을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첫 질문부터 막힘이 없었다. 누구에겐 비관적인 삶이 그에게는 도전이고 삶의 목표였다. 


-이종간 장기이식을 통해 당뇨병 완치가능성을 제시한 이번 연구는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이번 연구는 지난 25년여간 내가 해온 면역학 연구의 집대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면역학 연구로서 처음 발표한 T세포 관련 연구부터 이번에 새로 개발한 면역조절항체가 총망라돼 있다. 97년 발표한 ‘미성숙 T세포는 T세포를 서로 교육한다’는 사실은 이번 ‘면역조절항체’ 발견에 중요한 기초가 됐고 지난 2005년 중반 연구했던 ‘인간화 생쥐’는 더 많은 원숭이가 이번 연구를 위해 희생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연구가 있다면.

▶1997년에 발표했던 ‘미성숙 T세포는 T세포끼리 교육시킨다’는 논문이다. 내 일생 일대의 최대의 발견이다. 당시에는 미친 놈 소리를 들을 정도로 파격적인 연구결과였다. 나의 면역학 연구 초창기의 발견이었지만 가장 자랑스럽고 지금도 내 인생 최대의 연구라고 칭할만큼 자부심 있는 발견이었다.

-빠른 시일 내 돼지 췌도의 임상시험에 들어간다는 얘길 들었다. 준비는 잘 돼가나.

▶당뇨병 초기인 부인을 포함해 현재 5명이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동물(원숭이) 대상 실험이 완료되는 2013년 3월쯤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언론에 알려지면서 임상시험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내 연구실로만 2명이 직접 전화가 왔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실험 참가 적격성 검사 등을 진행해 최종 참가대상자를 결정지을 생각이다.

-부인은 선뜻 참가한다고 하나.

▶그럴리가 있나. 돼지 췌도를 몸 속에 넣는 건데. “당신 맘대로 내 배를 가를거냐”며 투덜대더니 요즘은 부쩍 몸관리를 하고 있다. 무서운 모양이다. 집이 동대문구 신설동인데 애완견이랑 뒷산에 다니면서 부쩍 운동에 열심이다. 그래도 회유해서 꼭 임상시험에 참가시킬거다.(웃음)

-당뇨병 바로 직전단계라고 하던데 직접 임상대상자가 돼 보는 건 어떤가.

▶나는 아직 당뇨병 전단계라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할 수만 있으면 왜 안 하겠나.

-이번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히 직접적인 목표는 당뇨병의 완치다. 돼지 췌도의 원숭이 이식이 성공했으니 사람까지 돼지 췌도를 성공시키는 거다. 하지만 진짜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데 있다. 사람간 골수 이식을 가능하게 하는 거다. 한마디로 A라는 사람의 골수에 문제가 있으면 B라는 사람이 자신의 골수를 꺼내 바로 이식해 줄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궁극적인 목표다. 혈액암(백혈병)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현재 이 분야에 대해 국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타인간 골수이식이 가능하면 굳이 채취도 어렵고 비용도 비싼 줄기세포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박성회 교수는 이번 연구 외에도 지난 2005년 급성백혈병 및 일부 림프종에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항원과 이에 대한 항체를 이용한 효과적인 백혈병 치료법도 공동개발한 바 있다.



-연구를 발표할 때마다 소위 펑펑 터진다. 비결이 있나.

▶잘못 연구하면 20년을 연구해도 말짱 도루묵이다. 반면 1년 만에도 세계적인 업적을 남길 수가 있다.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일단 생각을 많이 하는 거다. 투망식 연구가 아니라 이 세상 자연계 법칙에 가장 유사한 사고를 하는 거다. 또 한 가지 비결은 바로 상상력이다. 내가 사고를 아주 깊게 한다. 그렇게 나온 연구가 바로 인간화 생쥐에 관련된 연구였다. 백혈병 연구의 일환이었는데 당시에는 정신병자란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연구가 기반이 되면서 지금 내가 있고 나의 연구들이 있게 됐다. 일생에서 가장 특별한 연구였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에너지가 넘친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젊은 사람들과 격없이 소통하면서 그 에너지를 내가 좀 받는 것 같다. 제자들이랑 거의 매일 술자리를 하는데 술을 좋아해서 함께 마시는 것도 있지만 편안한 술자리에서 서로 가감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 더욱 즐기게 된다. 난 평소에도 제자들에게 내가 한 얘기라고 절대 예스(Yes) 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것도 좋으니 나를 반박할 새로운 논리를 찾으면 덤비라고 한다. 근데 아직 내 연구에 이의를 제기한 제자는 없다.(웃음). 윗사람은 불편해도 제자들은 좋다. 제자들이랑 편하게 마시는 게 좋다. 제자들이 교수님 유머감각은 정말 남다르다고 칭찬해준다. 활력소다.

-백혈병 치료법을 개발했을 때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5년 당시 이 치료법은 다국적 제약회사로 기술이전돼 곧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어떻게 된 건가.

▶나도 너무 안타까운 점 중에 하나다. 당시 기술이전된 제약회사가 합병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직까지 상용화가 늦어지는 것 같다. 연구개발자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9년 말 기술이전 수입이 국내 연구자 중에서 4위에 올랐다. 엄청난 수익인데….

▶사람들은 연구한 거 많으니 기술이전해서 돈 많이 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지금 재정상태는 마이너스다. 빈털터리다. 당시 기술이전 수입으로 받은 돈이 10억원 정도였는데 서울대에 의무적으로 30~40% 떼어주고 일부 연구비를 제외하니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4억원가량이었다. 당시 차사고가 난 후라 큰 맘 먹고 좋은 차를 하나 구입했다.

나머지는 백혈병 치료제 개발관련 투자와 외부강연료, 각종 연구비 지출, 제자들과 술 먹다보니 없어졌다.(웃음) 난 명예와 돈을 한꺼번에 갖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욕심이 없다. 이미 난 명예를 하나 가졌다. 돈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돈 보고 움직이고 싶진 않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과학자로 태어나서 내 나름대로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인간 박성회도 참 우여곡절이 많다. 꽃피울 20대 ‘이명’ 증상을 겪더니 갑상샘 기능항진증에 당뇨병이란 가족력도 얻었다. 차 사고로 저세상 사람이 될 뻔한 적도 있다. 박성회 교수는 “내가 봐도 참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이라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번 있었는데 아직 살아있는 것 보면 아직 더 연구하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며 넉살좋게 웃어넘겼다.

-의대는 왜 갔나.

▶대학을 입학할 당시 의대를 최고로 쳐줬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다 의대를 갔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완고한 함경도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공부를 하고 된 의사의 길은 나와 맞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얘기하는 성격이 못 된다. 거침없이 얘기하는 타입이다. 환자 보는 일이 맞지 않았다.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 않던 병도 생겼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귀에서 소리가 났다. 이명이었다. 19살 때는 갑상샘 기능항진증 진단도 받았다. 65㎏이었던 몸무게가 45㎏까지 빠질 정도였지만 의사들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내가 의대를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졸업반이 돼서야 내 병명을 알았다. 발병한 지 10년 만이었다. 꽃 같던 20대가 그렇게 끝나버렸다.

-연구대상은 항상 자신의 질병이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처음 의대에 입학했을 때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간 게 아니라 전공을 정할 때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는 갑상샘 기능항진증이란 병에 관심이 갔다. 이 병은 나에게 ‘그래 어디 두고 봐라, 극복하고 만다’라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갑상샘에 대해 공부하다가 이 병 자체가 면역학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면역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를 이겨보자는 심정으로 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으로 한국인 최초로 면역학 공부를 위해 떠났다. 내 평생을 바칠 연구분야를 찾은 기회였다.

-교통사고도 당했다.

▶남들 같으면 죽었을 사고였다. 부인과 함께 전남 익산에 다녀오던 중 대각선으로 달려오던 차에 치여 공중으로 붕 날아 떨어졌다. 하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인과 나 모두 도로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때 마침 양 차선에 단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정말 하늘이 도운 듯했다. 연구를 더하라는 뜻인 것 같다.(웃음)

-살아 있다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당연하다. 난 택시를 타면 잔돈을 안 받는다. 6100원 나오길 바라지 6000원 나오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거스름돈을 안 받으면 택시기사들은 기분이 좋아지고 그들은 나에 대해 ‘저 양반 괜찮네’라고 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적덕(積德)’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평생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쌓인 적덕이 날 안 죽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남의 가슴 아프게 하면 안 된다. 종교는 없지만 사랑은 무한히 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종교의 요체는 서로 사랑하자 아닌가.

-그만큼 소중한 생명인데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

▶일주일에 3~5일은 술을 마시는 것 같다. 내가 취미가 없다. 연구 아니면 제자들이랑 같이 하루 일과 끝나고 소주잔 기울이는 게 다다. 소주 1병에 맥주 1000cc. 딱 여기까지 마신다. 그리고 노래방 가서 노래 몇 곡절이면 술도 깨고 친목도 도모하고 딱 좋다. 개인적으로 딱딱한 회의를 너무 싫어했다. 얼마나 지루한가. 떠올랐던 아이디어도 사라질 것만 같고… 그냥 술자리에서 편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자연스럽게, 술 먹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같이 술 먹는 모두가 자기 머릿속의 다양한 생각들을 꺼내놓는다. 제자들과 얘기하다가 ‘오늘은 이런 거 해볼까’ 하고 즉흥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종종 얘기하다가 ‘이런 부분 알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면 내가 그쪽 분야 전문가를 섭외한다. 그리고 다음날이나 그 분의 강의를 같이 듣는다.

-몸은 괜찮나.

▶당뇨병 유전자는 불행했지만 알코올 유전인자만큼은 제대로 받은 것 같다.(웃음) 자정이 가까워지면 30대 제자도 나가 떨어지는데 나는 멀쩡하다. 밥도 잘 안 먹고 술만 먹는데 멀쩡하다. 나만 특수한 경우라 나처럼 술 먹으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웃음).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 멀쩡하다. 술을 그렇게 먹었어도 남들보다 뇌도 꽉차 있더라(웃음).

-비결이 있다면.

▶기껏해야 아침마다 뜨거운 물에 반식욕하는 거다. 또 다른 하나는 하루에 3~4시간 정도 한 가지 일에 완전히 몰입해서 뇌를 풀가동하는 거다.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한다. 제자들과 3~4시간 격렬하게 토론하기도 한다.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이러면서 전날 알코올에 풀어졌던 뇌가 다시 활성화되는 것 같다. 본래 성격이 낙천적이고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한다. 주말에도 하루는 뇌를 쓴다. 하루는 쉬고. 토요일 날은 오후 3시 회의가 있다. 남들은 토요일 날 머리를 쉬게 하는데 나는 이날 일주일간 술로 망가진 뇌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간을 갖는다.



박성회 교수는 여생 동안 계속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환갑도 훌쩍 넘은 나이. 손자 손녀의 재롱떠는 모습을 재미삼아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절대 아니란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노벨상이라도 목표로 하냐고 물었다. 그건 또 아니란다. 원래 연구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 연구를 계속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 연구하고 싶다면 혹시 목표가 노벨상인가.

▶아니다. 노벨상은 아무나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벨상은 훌륭한 업적만 가지고도 안 되고 당대의 국력과 과학자 팔자, 그리고 대중의 인기 등의 요소가 적절히 맞아 떨어져야 한다. 또 노벨상을 꼭 타야 과학자로서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노벨상을 받지 않은 과학자들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너무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냥 나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연구가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스스로를 ‘연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맞다. 난 뼛속까지 연구자다. 다들 30년 가까이 연구했으면 지겹지 않냐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아들이 둘인데 한 번도 아버지로서 따뜻한 정을 못줬다. ‘파더링(fathering)’이란 말을 실험용 쥐를 키워보며 알게 됐다. 그런데 ‘파더링’이 난 안 된다. 자식들도 결혼하고 나도 환갑이 훌쩍 넘었지만 내 할 일은 연구고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지금 정년이 1년 남았는데 학교 측에서 내 연구가 끝날 때까지 임기를 연장해 주는 걸 검토 중이라고 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