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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뮤지션 조규찬
조규찬이었다. 1라운드, 겨우 두 번의 무대만으로 결정된 탈락자, ‘나는 가수다’ 방송 사상 최단기간 출연가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뮤지션이다.

23일 전파를 탄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의 호주 경연에서는 2000여 호주 교민 앞에서 8라운드 2차 경연 무대가 진행됐다. ‘나는 가수다’로서는 첫 해외공연, 조규찬으로서는 두 번째 경연 무대였다.

조규찬의 ‘나는 가수다’ 입성은 2주 전이었던 9일 듀엣무대를 통해 시작됐다. 치열한 ‘가수들의 전쟁터’에서 조규찬은 이소라 김연우와 함께 ‘나는 가수다’의 싱어송라이터 계보를 이어갈 주인공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나는 가수다’ 출연과 동시에 조규찬에게는 ‘뮤지션이 사랑한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붙어다니게 됐다. 맞다. 대중보다는 뮤지션 사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인정과 존경을 받아온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뮤지션이 바로 조규찬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조규찬이 지극히 대중적인 무대에 서게 될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첫 경연은 박기영과 함께 한 듀엣무대였다. 두 사람은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을 정확한 음정과 칼같은 호흡으로 풀어냈다. 이날 자문위원단은 조규찬의 무대에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완벽하고 군더더기 없는 편곡이 뮤지션 조규찬의 색을 잘 보여줬다. 이 곡이 음반으로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무대에서의 라이브로는 아쉬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평가였다.

조규찬은 결국 7위로 출발선에 섰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조화는 방송 이후 온라인 상에서는 화제를 모았지만 누리꾼들 역시 ‘나는 가수다’의 맹점을 지적했다. “고음이나 격렬한 애드리브, 전조를 세 번 정도 해줬다면 또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chan****)”이라는 비판이었다.

조규찬은 이 결과에 스스로 ‘상처가 됐다’고 했지만 대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잊지는 않았다. 나름의 절치부심이었다. 하지만 그간의 조규찬의 행보를 본다면 이 첫 무대는 조규찬의 수없이 다양한 모습 가운데 극히 작은 하나에 불과했을 뿐 결코 전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어쩌면 두 번째 경연은 ‘노력’이라기 보다는 ‘두 번째 무대를 위한 시도’를 했다는 표현이 옳을 수 있다.

이윽고 시작된 두 번째 경연에서 조규찬의 담백한 감성이 ‘이별이란 없는 거야’를 통해 피아노 선율을 타고 흘렀다. 세련된 편곡은 뮤지션 조규찬이 익혀온 재즈 감성이 기반이 됐고,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창법은 노래 후반부 돋보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마치자 동료 가수 김연우는 한 마디로 평했다. “‘나는 가수다’ 무대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가수다’가 선호하는 편곡 스타일을 들고 나왔다”고.

역시 그랬다. 조규찬이 보여준 두 번째 모습은 영리하고 재능있는 뮤지션의 또다른 한 장이었다. 그러니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첫 경연 7위, 두 번째 경연 5위. 합산 결과 도전 첫 라운드 탈락자로 남게 된 것이 말이다. 그것은 조규찬이라는 뮤지션의 역사를 알면 더욱 그렇다.

1989년 제1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데뷔한 조규찬은 조규천 조규만 등 두 형과 함께 ‘조트리오’의 멤버로 활동하며 주목받았다. 국내 가요계를 대표하는 뮤지션 가족 조규찬, 첫 솔로 앨범 ‘추억’부터 지난해 5년만에 발매한 9집 앨범에 이르기까지 재즈, R&B, 팝,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선보이면서도 자기만의 색을 누구보다 잘 지닌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앨범의 한 곡 한 곡의 면면을 살핀다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 돈키호테’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멜로디’ ‘믿어지지 않는 얘기’ ‘해빙’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 ‘잠이 늘었어’ 등 다양한 색의 곡들을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아 들려주던 조규찬은 2006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남자부문 올해의 가수상, 2011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 부문에 이름을 올려온 가치있는 뮤지션이다. 거기에는 작사ㆍ작곡ㆍ프로듀서ㆍ보컬리스트로뿐아니라 백보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가수보다 섬세하고 세련된 보컬리스트로, 프로듀서로의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조규찬의 20년 음악인생을 관통하기에 ‘나는 가수다’의 두 번의 경연 뒤 탈락은 때문에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담백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가진 조규찬의 탈락은 덩달아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틀을 더 명확히 규정했던 것이기에 씁쓸함이 공존하는 것은 음악팬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규찬은 이날 무대를 떠나며 “마음 속에 있었던 다양한 편곡의 면면들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며 “긴 호흡으로 본다면 다시 시작이다. 조규찬의 음악적 행보와 공전은 계속된다. 조규찬이라는 가수가 앨범을 들고 나왔을 때 듣지 않고 평가하지 마시고 어떤 음악인가 들어봐달라”는 말을 남기며 ‘나는 가수다’를 떠났다.

뮤지션 조규찬의 마지막 인사는 그가 왜 ‘나는 가수다’에 출연을 결정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해답이 됐다. 대중과의 소통이었다. 수많은 공연을 통해 음악팬들을 만나면서도 늘 음악만에 집중했던 이 뮤지션이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경연의 형식을 띈 잔인한 프로그램마저 동시대를 활동하고 있는 가수에겐 축복이라 받아들이며 내린 결정이었던 것이다. 바로 소통을 위해서다. 이는 다시 조규찬을 이렇게 빨리 보내기엔 아쉬운 이유들로 남는다. 아직 조규찬에게 우리가 봐야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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