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일본이 예상을 뛰어넘는 한ㆍ일 통화스왑 700억 달러를 체결했다. 현재 한ㆍ일 통화스왑은 130억 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5배나 훌쩍 커진 셈이다. 특히 위기시에는 달러로 400억 달러를 빌려주도록 돼 있어 파격적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ㆍ일 통화스왑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유독 한국정부를 애먹였던 국가가 일본이었다. 당시 통화스왑을 위해 미ㆍ중ㆍ일을 찾았던 한국은 미국과의 통화스왑 체결을 지렛대로 중국과 일본을 설득했다. 중국과는 첫번째 만남에서 통크게 1800억위안(38조원) 통화스왑을 약속받았다. 반면 일본 정부는 수십억 달러 규모만을 제시했을 뿐 규모확대에는 손사래를 쳤다. 당시 회담에 참여했던 기재부 관계자는 “중국과의 통화스왑 규모(38조)를 들이밀어 설득한 끝에야 금액이 조금씩 올라갔다”고 회상했다.
3년전 미온적이었던 일본이 한국과의 통화스왑에 180도 자세를 바꾼 것은 왜일까.
일각에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진전에 조바심을 갖고 한ㆍ일 FTA의 밑밥을 던지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달러 확보를 위해 뭐든지 해야하는 다급한 상황이 아닌데 한ㆍ일 통화스왑이 FTA 협상에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반문했다. 가능성이 떨어지는 다분히 정치적인 해석이라는 설명이다.
이보다는 일본 외환당국의 가장 큰 고민인 ‘엔고현상’을 해결하는 방법중 하나로 한국 외환시장의 안정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강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대선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세계 무역시장에서 수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엔고현상은 일본 수출기업으로선 불리한 조건”이라며 “한국의 원ㆍ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본측에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19일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13원 하락해 1131원대로 떨어졌다. 원화값이 1130원대를 회복한 것은 지난달 19일(1137.0원)이후 한달여만에 처음이다.
또 3년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펀더멘털이 개선돼 실제로 일본측이 손실을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2008년 당시에는 9월 리먼브라더스 부도 이후 금융위기가 빠르게 확산돼 외환보유고 역시 빠르게 감소하는 상황이었다. 위기의 파장과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워 내 곳간의 문을 함부로 열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2011년 재정위기는 속도는 느린 대신 얼마나 길어질 지 모른다는 특성이 있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안전망을 쌓는게 서로에게 필요한 상황이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지역에 금융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한국과의 금융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장기적으로 아시아 역내의 금융협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의 경쟁관계를 감안할 때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것이라는 속내다. 통화스왑 등을 통해 주변국과 금융협력을 돈독히했을 때 향후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과정에서 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은 자명하기때문이다.
이번에 한ㆍ일 통화스왑이 체결됨에 따라 중국과 통화스왑 계약 만기 연장도 순항할 전망이다.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지역에서 금융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어 힘겨루기 차원에서라도 만기연장을 안해줄리 없다는 분석이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