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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로, 겁내지 않은 도전으로 인도를 품은 강경 촌놈
인도 최대 신용평가회사인 오니크라(ONICRA)의 김광로(65) 부회장.

그는 전자업계는 물론 국내 산업계에서 ‘한국인 CEO 수출 1호’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2008년 한국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외국, 그것도 신흥시장인 인도의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로 스카우트돼 큰 화제를 일으켰다.

김 부회장은 ‘인도성공 신화’, 그 자체다. 지난 97년부터 6년간 LG전자 인도법인 최대 법인장을 지내면서 법인설립 후 4년만에 현지 가전업계 1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인도의 대표적인 가전기업인 비디오콘(Videocon)이 그를 CEO로 영입한 것은 이같은 경력과 무관치 않다.

그래서 그는 ‘인도 박사’다. 이론이 아닌 생동감있는 현장경험을 가슴속에 담고 있으니 인도 진출에 관심이 많은 국내 기업 또는 기업인은 꼭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인기 강사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서 열리는 인도 세미나에서 그는 초청 강연자 섭외 ‘0순위’다. 그가 내뿜는 생생하고도 열정적인 강연에 감동을 느꼈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이들은 줄을 이을 정도다.

김 부회장의 지혜가 인도에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LG맨 시절 77년 두바이를 시작으로 무려 27년간 해외에 근무하며 젊음을 다 보냈다. 중남미, 태국, 미국, 독일 등 LG가 진출한 글로벌 산업현장은 거의 다 누볐다.

이같은 해외경험은 그만의 ‘경영 철학’을 다지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2009년 세계화에 바탕 둔 열린마음(Openness), 권한위임(Empowerment) 등 후배경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영 ‘신조(credo)’를 강조한 책 ‘세계경영 크레도’를 발간했고, 유용한 경영지침서로 평가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지만, 다만 도전과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바닥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꾸준히 뭔가를 해봤더니, 강경 촌놈이 어느날 인도에 와 있더라”라고도 회고했다. 기업인, 특히 청소년들에겐 “무조건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김광로 오니크라 부회장

■ 강경 촌놈, 인도를 품다=김 부회장이 외로울때 항상 눈앞에 어른거리는 곳이 있다. 바로 고향 강경(江景)이다. 강경은 그에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강경은 아주 시골은 아니었지만 촌이었어요. 그래도 옛날부터 평양ㆍ대구와 함께 3대시장으로 꼽혔지요. 그런 강경에는 인근 두메산골에서 많은 학생들이 유학을 오곤 했지요.”

특별히 가난하거나 어렵지는 않았지만 강경으로 많은 이들이 공부하려고 오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그가 강경 황산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자마나 서울로 유학간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강경은 그에게 ‘독립심’을 키워줬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강경 사람이었습니다.일체 제 삶에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든지 ‘알아서 하라’는 한마디로 끝났죠. 어떤 때는 정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했습니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서 홀홀단신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적 강경과 아버지가 준 ‘독립심’이 큰 자산으로 작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만 같습니다. 강경에서 자란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인도에 있더군요.”

■ 터닝포인트는 도전, 그리고 멘토=1974년 LG전자에 입사한 그는 3년만에 일생일대의 선택에 직면했다. 회사에서 중동 두바이 지사 창설멤버를 모집했다.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때이긴 했지만, 미지의 세계에 다들 두려움이 앞설 때였다.



“어느날 두바이에 누가 가지 않겠느냐고 상사가 말하더군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앞뒤 생각없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지나고보면 이 일은 한국 촌놈이 세계인으로 첫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두바이에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언어도 언어였지만, 현지 문화와 공감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후회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선택을 물리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생활은 점점 익숙해졌고, 두바이 3년간 생활은 뿌듯한 자긍심과 보람을 선물해줬다. 두바이를 거쳐 미국(5년), 중남미(6년), 독일(1년) 생활 후 인도에서의 법인장 시절을 무난히 보낸 것은 이같은 해외경험이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그는 강조한다.

김 부회장은 만약 자신의 삶이 후회없는 인생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 이는 LG에 몸담았을 때의 ‘멘토’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가 꼽은 인생의 멘토는 LS그룹 구자홍 회장과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이다. 둘다 한때 직장 상사였다. 김쌍수 전 사장은 김 부회장이 LG전자 창원공장 사업부장을 할때 본부장으로 일했다.

“구 회장은 종업원을 신뢰하고 부드러운 경영 그리고 믿고 맡기는 경영을 실천하는 소박한 리더십 소유자로, 배우는 바가 많은 상사로서 존경하며, 김 전 사장은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나고 항상 앞을 보고 통큰 결정을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로 항상 배워야 하는 멘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멘토는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원천이었고, 경영을 하는데 ‘영감’으로 작용했다. 두 사람에게 배운 업무와 경영철학을 인도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 오지에서 배운 글로벌경영=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과 선진국에서의 현장 경험은 그에게 독특한 경영철학을 무장시켰다. 특히 인도에서의 성공 경험은 그에게 자신감과 함께 내로라하는 ‘현장 경영인’ 명성을 쌓게 해줬다.

LG전자 인도 법인장때 ‘사업하기 가장 척박하고 힘들다’던 인도에서 일본 전자업체를 물리치고 시장 점유율 30%를 달성, 1위를 꿰찼던 경력은 그의 유명세에 탄력을 줬다. 실제 지난 1997년부터 6년간 LG전자 인도법인 초대 법인장을 지내면서 법인 설립 후 4년만에 회사를 현지 가전업계 1위로 끌어올린 ‘인도 신화’의 주역으로, 그 성공신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LG 법인장 시절에는 인도에서 가장 독자가 많은 경제 매거진 ‘비즈니스 월드’의 표지모델로 등장할 만큼 인도 언론에서도 경영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08년 LG전자의 강력한 경쟁사였던 인도 대표 가전업계 비디오콘이 그에게 큰 공을 들이며 CEO로 스카우트 한 것도 그의 경영자 자질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젊음을 다 외국에서 보내면서 겪은 외로움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해외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은 그에게 경영자로서의 눈을 새로 뜨게 만들어줬다.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일을 한답시고 무조건 돌아다녔더니 보이는 게 있더군요. 바로 ‘세계화 경영’입니다.”

이런 경험은 그가 2009년에 쓴 ‘세계경영 크레도’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은 한국어로도 국내에 나왔지만, 외국에서도 인기 속에 팔렸다.

“지금 현대 경영은 ‘세계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더이상 ‘우물안 개구리’로는 만족할 수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한국인, 한국시장을 중시하는 고집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계인을 추구하는 경영이 유효합니다.”

그는 세계화 외에도 ‘열린마음 경영’을 주창한다. 인도인이든, 한국인이든 그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 고객의 신뢰를 추구하고 종업원을 주인으로 받드는 오픈마인드(Open Mind)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파격적으로 일을 맡기는 권한위임과 혁신(Innovation), 시장을 혜안으로 관통하는 마케팅(Marketing)도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경영 도구라는 것이다.

“인도를 예를 들면 인도 종업원을 믿지 못하는 불신경영은 스스로 큰 한계를 갖게 되고,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더 커지기 위해선 큰 변화가 요구되는데, 그 핵심이 바로 신뢰경영입니다.”

1등 회사를 만들기 위한 경영철학은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분산 ▷권한 위임 ▷행복한 종업원 ▷긍정적 기업문화 ▷효율성 ▷평가와 보상 등을 ‘좋은 회사’의 빼놓수 없는 요소임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CEO의 성실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도에서 있을때 그는 매일 8㎞를 조깅했다.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 새벽길 4.5㎞ 조깅을 했고, 저녁엔 3.5㎞를 뛰었다. “스트레스는 싹 가셨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조깅할때 경영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건강한 삶에서 건강한 마음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경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워낙 외국을 돌아다닌지 오래돼 잊었을 법 하지만, 한자를 빌어 표현한 그의 인생철학도 흥미롭다.

김 부회장은 “인생과 경영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단언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ㆍ물과 같이 낮고 부드럽게, 그러나 누구에게나 중요한 사람이 된다)와 생이불유(生而不有ㆍ내가 만들었지만 내 것이 아니다)는 그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다.

전자는 ‘양보하는 마음, 이기는 경영’의 신뢰경영을, 후자는 ‘내가 만든 기업도 나중엔 전부 놓고 떠난다’는 의미의 포괄적 나눔경영을 뜻한다.

노자의 ‘무위이불무위(無爲而不無爲)’도 그가 애지중지하는 구절이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못하는 것이 없어야 큰일을 합니다.”

■ 인도는 G2, 무한 도전하라=김 부회장의 ‘인도 사랑’은 지칠줄 모른다. 그가 내세우는 인도예찬론은 인도인 이상이다.

그는 인도는 참으로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고 강조한다. 예술, 문학, 철학, 정치, 종교, 비즈니스 분야 등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에 우리 청소년들이 꿈을 갖고 도전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이메일 인터뷰를 임한 것도 사실 인도에 꿈이 있는 청소년과 젊은 기업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김 부회장은 “무조건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고 채근한다. 바닥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확고하다.

김 부회장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강경 촌놈인 저도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인도에 와 있습니다. G2가 바로 인도와 중국입니다. 그런 인도로 곧바로 도전하십시오.”

<김영상 기자 @yscafezz>
ysk@heraldcorp.com

<사진설명>‘강경 촌놈’인 김광로 부회장에게 인도는 제2의 고향이다. 고향 강경에 대한 뼈저린 그리움은 그에게 정 붙일 제2 고향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고 오느새 ‘인도 사랑’에 푹 빠졌다. 김 부회장은 경영 틈틈이 인도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인도는 참 매력적인 곳이었다. 마침내 그가 발견한 것은 세계화경영의 중심지였다.

<사진설명2>김광로 부회장이 인도 직원들과 함께 생산 제품을 둘러보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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