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 경제학과 양준호교수 |
그런데 유독 인하 폭이 큰 품목이 있다. 설탕은 관세율이 30%(35% →5%)나 내린다. 40개 품목 평균의 7배가 넘는다. 이 정도면 가히 그 목적에 의문이 갈 뿐 아니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도 하다.
우리 관세만 지나치게 높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설탕 관세는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고율로 적용되고 있다. EU는 85%, 미국은 51%, 일본은 70%에 달한다. 관세가 없는 나라도 있지만, 비관세 장벽으로 시장을 방어한다. 말레이시아는 0%이지만 제당업체만 수입이 가능하다. 캐나다도 4.5%지만 각국별 상계관세로 실질 관세율은 113%이다. 이들이 왜 이렇게 무역장벽까지 두고 시장방어를 하는 것일까?
국제설탕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국제설탕 시장은 각국의 보조금, 지원 등으로 공정경쟁이 불가능하다. 관세는 이처럼 왜곡된 국제시장을 시정, 국내외 기업이 공정경쟁을 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만의 일방적인 관세 인하는 마치 축구시합에서 상대방은 손발 다 쓰고 우리는 발만 쓰게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공정 경쟁인가?
물가안정 지원이라는 목적의 효과도 의문이다. 관세를 35%에서 5%로 낮춰도 설탕 가격 하락은 5.5% 수준에 그친다. 한 가족의 한달 설탕 구입금액에서 35원을 절약하는 수준이다. 2차 가공식품의 가격하락 효과도 거의 미미하다.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콘은 6원, 800원짜리 크림빵은 2원의 하락요인만 발생할 뿐이다. 경제 전체로도 소비자물가 하락은 0.014%p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진실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주목해야 할 것은 환율과 금리이다. 환율을 10% 내리면 물가하락은 1.84%p, 금리는 1%만 올려도 0.2%p의 물가하락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70~80년대식 고성장 정책의 올가미에 묶여 고환율, 저금리 기조를 지속하려 한다. 고환율, 저금리로 수출기업을 배불리고, 물가하락의 부담은 내수기업에게 돌리는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정책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그에 걸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
기본관세 인하는 정부 각 부처 간에도 이견이 있을 뿐 아니라 이미 2009년에 논의되었던 사안이다. 당시 국회가 안을 발의했고 행정부가 반대했다. 당시 행정부는 통상교섭력 강화와 설탕 산업이 갖는 국내 고용효과 때문에 장기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며 안을 부결시켰다.
아직 2년도 지나지 않았다. 국제 통상환경은 나아진 것이 없고, 국제 설탕시장은 이상기후와 개도국 수요확대로 수급불안이 가중되어 오히려 더 엉망이다. 세계각국은 다가올 곡물전쟁에 대비해 제당설비를 신,증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본관세 인하는 결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특히 곡물자원은 더욱 그렇다. 자칫 자국 산업이 붕괴되면 공급불안 및 더 큰 물가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후대에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넘겨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