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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대한민국, 추석은 없다…왜?
경남 창녕에 사는 박모(70ㆍ여) 씨는 이번 추석 차례상 차리는 걸 포기했다. 올해는 둘째와 넷째가 못 온다며 인삼 선물세트만 덜렁 보내왔다. 시집간 딸들 빼고 올 녀석은 장남뿐이다. 그나마 고3 수험생인 손주는 안 올 게 분명하다.

예전 같으면 고향 찾아오는 아들딸과 손주들 줄 요량으로 과하다 싶게 음식을 장만했던 그였다. 올해엔 보고 싶은 얼굴은 안 오는데 생선ㆍ과일 값은 너무 올라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배 하나에 10000원이다. 작년엔 3개를 5000원에 샀는데…. 도저히 집어들 수가 없다. 계란도 한 판에 8000원을 달란다. 2000원이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요량한 돈에 맞추려니 제수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박 씨가 추석을 포기한 이유다.

추석이 실종됐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 늘어나지 않는 소득, 가계빚에 짓눌린 서민들은 추석 경기를 잊어버렸다.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제시하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통계수치는 서민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영등포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임모 씨는 “재래시장에 와보고 그런 말을 하라”며 핀잔을 줬다.

서울 영등포시장에서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임숙자(50ㆍ여) 씨는 “예년 같으면 추석 1주일 전에는 12마리씩 든 조기가 하루에 2~3상자씩 나갔는데, 요즘은 절반도 안 팔린다”고 했다. 그 옆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임석호(40) 씨는 “선물용은 고사하고 제수용 과일도 안 나간다”고 하소연했다.

개인사업자가 밀집한 경기도 부천 테크노파크의 한 시중은행 지점 직원은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올해는 추석에 쓸 신권을 교환해 가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며 “예금 문의보다는 대출 문의만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물가가 추석 경기를 죽인 주범이다. 올 들어 1월부터 7월까지 소비자물가가 매달 4%대 이상 오르더니 급기야 8월에는 5%대로 치솟았다.

가히 살인적인 물가 수준이다.

정부는 9월 이후부터 소비자물가가 3%대로 안정될 것이라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직장인들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상여금 봉투는 홀쭉해졌다.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 직원들은 기본 상여금에 귀향비, 재래시장 상품권까지 받아가지만 중소기업은 한겨울이다. 대기업들이 협력사 대금을 조기 결제한다지만 효과가 아직 퍼지지 않아 추석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도권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35) 씨는 “그나마 설에는 50만원의 보너스가 나왔는데 이번엔 없다. 부모님 용돈은커녕 선물 사가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결국 회사에 일감이 밀렸다는 뻔한 거짓말로 추석 귀성을 포기했다. 그리곤 건강식품 세트를 골라 택배 선물을 의뢰했다. 그마저도 안 할 수는 없다.

임 씨와 같은 경우는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택배물량은 늘었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IMF 때도 명절에 예상과 달리 택배물량이 오히려 늘어난 적이 있다”며 “불황일수록 선물 가격을 낮추더라도 선물을 더 챙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추석선물도 비싼 육류나 과일보다는 값싼 공산품 위주로 나가고 있다. 택배업체인 CJ GLS 관계자는 “과일이나 갈비가 크게 줄고, 한과나 선물세트 등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신창훈ㆍ도현정 기자/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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