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명예통역관은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에 산다. 올해 나이 70세. 나이는 들었지만, 호남형이다. 오다가다 만나면 백발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조금 눈에 띄는 모습은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닌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어로된 표지판이나 문화재 소개글 등을 유심히 살펴보는 정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평범함을 헤집고 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춰보면, 좀 특별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늦은 밤까지 정부 주요 영문 홈페이지를 살펴본다. 대변주머니를 착용하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도 그는 수십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전자문서를 살펴본다. 그것도 돋보기를 모니터에 올려놓고 일일이 확대해가며 표기상 오류를 찾는다. 10년 넘게 이런 작업을 해왔다.
젊은이들도 단 몇 시간, 아니 단 몇 분만 해도 지루해하는 일. 그는 왜 이 같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고된 작업을 하지는 않을 터. 오 명예통역관이 그동안 이렇게 찾아낸 정부 부처 영문 홈페이지의 표기상 오류만 수백 건에 이른다. 그리고 이를 언론사에 제보해 올바르게 바꾼 영문 홈페이지는 수도 없이 많다.
그의 오랜 제보 활동은 청와대 영문 홈페이지를 바꾸었고 국무총리실, 감사원, 중앙선관위, 대법원, 대한체육회, 사이버 독도, 국회, 독립기념관 등 정부 주요 기관의 영문 홈페이지를 수정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영문 헌법도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익을 위한 제보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가게 만들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딥스로트(Deep Throat)가 그것을 증명했으며, 전 세계 외교 채널을 뒤집어놓은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도 제보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과 오 통역관의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정부 부처의 영문 홈페이지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보낸 시간과 땀, 그리고 노력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영어와 맺은 인연으로 삶의 기반을 꾸렸고 인생의 황혼기를 정부 주요 영문 홈페이지에 나타난 오류를 바로잡으며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나이도 건강도 모두 평온한 삶을 원할 것 같았지만, 그의 눈빛은 청년이었다.
#영어와의 인연
“1960년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입학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영어만 잘하더라도 충분히 먹고사는 데 문제 없었어요.”
오 통역관이 영어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0년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당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이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던 까닭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외대 학장은 박술음 교수였어요. 영문학계 거장인데, 1학년 때 강의 때 들은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영어와 인연은 그를 공군 장교로 군생활하게 했으며, 이후 생계를 꾸리는 기반이 됐다.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4년6개월간 군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제대하면서 첫 직장으로 유한양행에 몸담았다. 여기에서 그는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킴벌리와 합작해 유한킴벌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그는 합작투자 계약서를 번역해 경제기획원에 제출했는데,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과 만날 수 있었다. 오 통역관은 당시 김 장관이 “똥 닦는 종이(화장지)까지 합작해서 만드냐”는 이야기를 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후 그는 대한항공에서도 잠깐 근무했으나 곧 후회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야간부에 들어갔다가 건강 악화로 부산으로 내려와 새로운 기반을 닦았다. 부산에서 30년 동안 신발 수출을 담당했다. 미국 호주 등 외국 바이어들의 한국 에이전트 역할을 담당했다.
#은퇴, 그리고 반전
1998년 외환위기의 파고는 그에게도 세차게 몰아쳤다. 에이전트 생활과 일반 기업의 해외 투자 담당 고문을 오가던 중 발생한 외환위기로 그는 사실상 현업에서 은퇴했다.
은퇴 이후 그에게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된 것은 1998년 부산시 명예통역관으로 위촉된 것이다. 총 4명이 명예통역관으로 위촉됐는데, 그 중 한 명이 오 통역관이었다.
영어로 생활을 꾸렸고 영어로 노후에 보람된 일을 하게 됐다고 생각해 그는 열정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부산시청의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무료로 번역을 해줬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번역 일을 도와주었지만, 해당 공무원은 조금도 고마워하거나 달가워하지 않았다. 선심 쓰듯이 일을 가져다 맡겼다. 절 모르고 시주하는 느낌이었다. 애써 한 일이지만, 보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잘못된 영어 표현을 지적해도 바꾸지 않는 공무원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오 통역관은 “영문 홈피 왜 개설했으며, 취지가 뭐냐고 물어봤죠. 그런데 (해당 공무원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발 형식적으로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들 외국에 나라 망신시키는 홍보하고 있으니, 혈세 걷어서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는 당시 격했던 감정을 떠올렸다.
오용웅 부산시 명예통역관이 세종대왕상이 위치한 서울시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직업병이 도진 그는 세종대왕상 설명에서는 ‘Gwanghwamun Square’로 표시하고 있으나, 서울특별시청 영문 홈페이지에는 ‘Gwanghwamun Plaza’로 표현, 같은 명칭을 다르게 적으면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렇게 시작된 제보는 부산시청 영문 홈페이지를 바꾸었고, 일부 잘못된 표현이 들어간 유명 영화인의 핸드프린팅 표시도 수정했다. 부산시 한 구청에 식당 표시를 ‘Resting Room(화장실)’이라고 표시한 것을 고쳤으며, 올해에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영문 약칭을 설립 16년 만에 ‘PIFF’에서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업병
주요 정부 부처 영어 홈페이지의 표기상 오류를 감수하는 동안 그에게는 직업병이 하나 생겼다. 영어로 된 표지판이나 문화재 설명문 등을 유심히 본다는 것과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진을 습관적으로 찍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표기상 오류를 족집게처럼 짚어내는 그만의 오감을 갖게 됐다. 그는 “영문 홈페이지를 볼 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느낌이 오는 부분이 있어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오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가 2008년 부산 중구 남포동 피프(PIFF)광장에서 조성된 핸드프린팅 동판에서 영문 표기상 오류를 발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 자세히 살펴봤는데, 역시 ‘12th’로 적어야 하는 것을 ‘12nd’로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 통역관은 이를 즉시 언론사에 제보했고 바로 잡았다.
오 명예통역관은 자신의 직업병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입니다.” 자신의 관심사가 영문 표기상 오류에 맞춰지다 보니 그런 것이 눈에 두드러져 보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오 명예통역관이 수정한 영문 홈페이지 표기상 오류는 총 100여건에 이른다.
#비닐주머니
직업병과 함께 10년 가까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대변을 받아내는 비닐주머니이다. 명예통역관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던 지난 2002년 그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말기 직장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항암 치료를 하는 4주 동안 머리카락은 별로 빠지지 않았지만, 생살을 떼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수술을 통해 항문을 막아야 했으며, 대신 비닐주머니를 착용하고 다녀야 했다.
그는 “배에 차고 다니는 비닐 주머니가 터지는 날에는 여간 난감한게 아닙니다. 냄새 때문에 차도 못타고 걸어서 집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비닐주머니가 불편한 것은 영문 홈페이지를 살펴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다. 비닐주머니 때문에 바로 앉지도 못하고 옆으로 비스듬하게 앉아야 한다는 얘기. 그 자세로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보통 사명감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울컥…
그는 공무원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들의 무사안일주의 탓이다. 영문 홈페이지의 표기상 오류를 발견하게 된 것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 탓이며, 언론 제보를 통해 이슈화하려는 것도 이 같은 공무원에 대한 불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가던 그는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북받친 감정을 드러냈다. 비닐주머니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말하던 그였다. 오 명예통역관은 “나의 활동에 대해 왜 욕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다고 해야지. 무엇을 잘한다고 욕합니까”라고 입바르게 쏟아냈다.
그는 하지만 청와대 공무원은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청와대 온라인 대변인이 자신에게 보내온 편지를 내보이며, “청와대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입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청와대 이길호 온라인 대변인은 그에게 “우리나라를 외국에 제대로 알리고자 애써주신 오 명예통역관님의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 그는 “그래도 흐뭇했다”고 말했다.
#못다 한 이야기
오 명예통역관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영문 홈페이지 표기상 오류에 대해 여러 차례 말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는 물론 구청 홈페이지 등에서 표기상 오류가 수두룩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는 시장(Mayor)을 소령(Major)으로 표기하는 곳이 있으며, 각 구청에서도 구청장을 ‘Mayor’로 표시하면서 서울에는 시장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등 여러 가지를 지적했다. 영문 홈피의 표기상 오류에 대한 그의 지적은 화수분처럼 느껴졌다.
제보가 거듭될수록 표기 오류를 찾아 고치는 그의 노하우도 진화했다. 무조건 찾기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대상 정부기관을 정한 뒤 찾게 되면, 목적 달성률이 높아진다는 얘기. 가령 제헌절에 국회 영문 홈페이지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과 같이 주목을 받을 시점에 지적하는 것이 효과가 높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영문 홈페이지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구조적인 이유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정부기관의 영문 홈페이지의 경우 영어에 정통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사람에게 일괄 구축비를 제공하면서 그 속에서 해결하게끔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이 낯 뜨거운 표기상 오류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얘기다.
한 가지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글 홈페이지 업데이트 하는 것처럼 영문 홈페이지도 업데이트 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가령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면적이 10만33㎢에 이르고 있지만, 다른 정부 홈페이지에선 9만9392㎢로 표시하는 등 서로 다르게 표시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는 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앞으로 아무런 제보를 하지 않겠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제보 내용이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개인 기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등 제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영문 홈피 자원봉사단
오랫동안 잘못된 영문 표기를 수정해 왔지만, 이런 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분이 있다. 정부 중앙 부처의 영문 홈페이지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데 다른 지방 정부의 영문 홈페이지는 안 봐도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된다. 그는 “부산의 한 군청 홈페이지에선 인사말(Greeting Message)에서 메시지를 마사지(Massage)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며 “지방 정부로 내려오면 영문 홈페이지의 수준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자원봉사단의 구성을 제안했다.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외국어 자원봉사단이 꾸려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 명예통역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영문 홈페이지의 표기상 오류 찾기가 보기에 따라선 그리 중요한 이야기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그동안 그의 지적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의 활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기대된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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