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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S CHOICE]MOVIE 세 얼간이 3IDIOTS

개봉 전부터 심심치 않게 네티즌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가 있다. 한 포털에서 이 영화의 평점은 이미 대부의 그것을 넘어섰다. 자국 인도에서는 아바타를 제치고 흥행몰이를 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세 얼간이는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다.

홀수의 추억 

무리짓기는 인간의 본능인 걸까.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우리는 늘 무리에 속해 있었다. 서너 명 혹은 그 이상이 뭉쳐 어울렸다. 간혹 불미스러운 사태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지만 대개 한 번 결속된 무리는 학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교실에서 나와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땐 무리는 확연히 구분 지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불길했던 숫자는 '홀수'였다. 오롯한 내 짝을 만들지 못해서 불안했고 두 명씩 앉아야 하는 버스 좌석에 늘 한 명은 혼자 앉아야 했다. 불안하면서도 어딘가 미안했던 홀수의 추억. 세 얼간이는 세 친구들에 관한 영화다.

일찍이 마법 세계에는 호그와트의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있었고, 순정의 세계에는 재벌가 상속남 F4가 있었지만, 인도에는 이들이 있다. 인도 임페리얼 공대에 입학한 란초, 파르한, 라주. 상위 1%에게만 입학이 허락된 대학에서 살벌한 경쟁의 원리를 터득한다. 바이러스 총장은 입학 첫날 학생들을 앞에 불러놓고 말한다. 당신들은 40만 명의 지원자 중 선택된 200명이라고.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의 알을 밀어내고 자신의 알을 낳듯 생존의 레이스에서 경쟁자들을 밟고 일어서라고.

그런데 이런 수재들의 전장에서 엉뚱하게 엇나가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란초인데, 그는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는 경쟁의 엄숙함을 가볍게 꼬집는다. 공부도 못하면서 반항하면 '문제아'가 되지만, 공부는 잘하는데 반항하면 '문제적 천재'가 된다. 무작정 의심하고 수상쩍어 하기만 하면 세상과 불화하지만,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춘 사람은 부조리와 대립한다. 란초는 후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모두가 점수를 잘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와중에도, 맹목적 경쟁주의와 정면으로 대결한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무슨 1위를 말하는 거죠? 여기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에는 관심이 없잖아요. 점수, 취업, 미국 기업에 취직하는 데만 관심 있죠. 저희는 공학을 배우기보다는 점수 잘 받는 방법만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는 대학입니다. 스트레스 공장이 아니죠. 서커스 사자도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훈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는 안 합니다."

세 남자의 우정

영화는 란초를 축으로 해서, 라주와 파르한의 서사를 포개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란초와 어울려 다니다 줄곧 꼴등 1,2등을 다툰 라주와 파르한은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 인도에서 선망받는 직업인 '공학자'가 되길 원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들은 가족들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공부했다. 란초를 만나기 전까진 큰 집에서, 좋은 차를 타는 게 이들의 꿈이었다. 파르한은 동물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에 접었다. 란초의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계신지 오래, 가난 덕에 누나는 지참금이 없어 결혼조차 못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친구들에게 란초는 희망의 언어를 전달한다. 다 잘 될 거야. 네 꿈과 재능을 찾아. 알이즈웰. 바이러스 총장의 방해가 짓궂긴 하지만 세 남자의 우정은 갈수록 진국이 돼 간다.

 


유머와 감동의 파노라마

시종일관 좌충우돌 유쾌하게 터지는 사건 구석구석에는 진한 감동이 잠복해 있다. 술에 취해 총장의 현관문에 몰래 오줌을 누는 남자들의 호기로움. 킥킥대면서 강의실에 숨어들고, 다음날 화가 잔뜩 난 총장에게 꼬부라진 혀로 유도 전동기 챕터를 다 봤노라고 큰소리친다. 학생들의 오만방자하고 불손한 태도를 못마땅히 여긴 총장은 라주에게 정학처분을 내리고, 라주는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혼수상태에 빠진 라주를 위한 란초와 파르한의 노력은 눈물겹다. 살짝 오글거릴 무렵에는 적당히 눙치면서 웃기는 노련함까지 더해 영화는 웃음과 눈물을 알맞은 비율로 배합했다. 웃음의 코드에 감염된 관객은 냉정하게 영화를 뜯어보고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된다. 과하다 싶은 장면도 슬쩍 넘어가 줄 수 있다. 서사적인 결함도 애교로 넘어가 준다, 싶다. 스크린과 거리를 좁히는 강력한 접착제는 웃음과 최루니까.   

기왕의 인도 영화에는 어딘가 낯선 정서가 있었다. 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촌스러운 영상미, 개연성을 무작정 건너뛰는 비약과 과장된 감정.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화려한 군무. 발리우드의 저력은 인정하더라도, 인도 영화는 어쩌다 찾는 독특한 영화, 그 이상이 되기 힘들 것 같았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코카서스 인종이고 국민의 90%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는 그네들의 이국적인 풍토나, 연간 1천여 편의 영화를 찍어 내는 영화공장의 제작 여건 때문이 아니라, 헐리우드식 영화 독법에 익숙해진 관객이 선뜻 공감하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인도영화의 또 다른 별칭이기도 한 '맛살라'에는 온갖 향신료의 집합이라는 뜻대로, 뮤지컬 요소와 선악, 영웅, 로맨스가 러닝타임 동안 '무한 리필, 무한 제공'된다.

임페리얼 공대를 졸업한 후에 란초는 행방불명 되었다. 라주와 파르한은 란초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과연 란초를 찾을 수 있을까. 모든 청춘 영화는 성장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마치 한 뼘 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다.


http://www.camhe.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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