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부회장 하나 관리 못하나”
허창수회장 리더십도 도마에
대기업의 한 간부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전경련 사람으로부터 점심을 하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절할 이유도 없어 만났죠. 그런데 밥을 다 먹었는데 돈 낼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제가 계산했는데, 좀 씁쓸했습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재계로부터 왜 비판을 받는지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사례다. 기업 회비를 받아 재계 입장을 대변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할 전경련이 기업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은 지는 오래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나 적합업종 선정과 같은 굵직한 현안에는 눈을 감은 채 밥그릇 챙기는 데는 점점 도가 트고 있다는 비아냥도 받는다. 전경련 무용론과 해체론이 그치지 않는 배경이다.
문제는 전경련이 자기 개혁의 당위성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새 회관을 지어 영원한 제국을 건설할 꿈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이 변화를 거부한다는 이 같은 비판의 정점엔 정병철 상근부회장이 존재한다. 전경련 내부에 정통한 한 재계 인사는 “정 부회장은 전경련 조직을 자신의 치마폭에 두고 영원히 안주하려는 데만 관심이 있다”며 “그가 있는 한 전경련은 희망이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 정 부회장의 행보는 독선에 가깝다. 최근 제주포럼에선 수재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부인까지 대동한 골프로 구설수에 올랐고, 지난해엔 ‘정부와의 대립 발언’ 소동 후 언론 등 주변과 철저히 소통을 거부하는 아집을 보였다. 한국경제연구원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연구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구조조정의 칼을 휘둘렀다.
전경련이 3일 4대그룹 본부장과 정 부회장이 만나 1조원 규모의 사회공헌재단을 만든다고 슬쩍 흘렸다가 기업들이 반발하자 모임을 취소하는 해프닝을 연출한 것도 정 부회장의 욕심이 발단이 됐다는 시각이다. 비판과 사퇴론에 직면한 그가 청와대는 물론 재계의 환심을 살 이슈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전경련 홍보실도 개인 ‘홍보맨’ 역할만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정 부회장의 독선과 전횡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벌써 “상근부회장 하나 관리하지 못한다”며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4대그룹 한 임원은 “허 회장이 진정 재계를 위한다면 전경련 인적 쇄신부터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