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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기업 UP & DOWN>닌텐도는 몰랐다…스마트폰이 자신들의 경쟁자라는걸
“과거의 영광도 잠시”…벼랑끝에 몰린 기업
대형 컴퓨터 하나만으로도 IBM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던 시절. 한 간부가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회사에 1000만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 그가 머리를 숙이고 IBM 창설자인 톰 왓슨 회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그때 왓슨 회장은 “지금 농담하나? 우리는 지금 자네에게 무려 1000만달러어치의 교육비를 지불한 거야.”

한때 IBM에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실패를 용인해주는 너그러움,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는 뒷심 그리고 오너의 결단력. 그러나 당시만 해도 IBM은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라는 타이틀에 묶여 미래 비전 사업을 찾지 못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미국 정부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개발비보다 많은 천문학적 자금을 대형 컴퓨터 IBM360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가 쇠락의 늪으로 빠지고 만다.

“코끼리도 춤추게 하라”는 루 거스너라는 발군의 경영자가 없었더라면 IBM은 아마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는 과거의 환영에서 깰 것을 요구했고, 결국 IBM은 제조업체에서 ‘IT 컨설팅’이라는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글로벌 서비스 업체로 탈바꿈에 성공했다. 좋은 기업이 왜 병들어가는가, 반대로 어떻게 기업이 흥하게 되는가를 IBM의 역사는 증명해주고 있다.

세계 최고의 마케팅 학자인 젝디시 세스는 ‘배드 해빗(Bad Habit)-성공하는 기업의 7가지 자기파괴 습관’이라는 책에서 왜 좋은 기업이 병들어가는가에 관해 의미있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는 기업이 쇠락하는 7가지 이유로 ▷현실부정 ▷오만 ▷타성 ▷핵심역량 의존 ▷경쟁근시안 ▷규모집착 ▷영역의식을 들었다.

정상을 맛본 기업은 과거 관습과 신념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최고 시절에 대한 향수 속에 빠져 오만하기 일쑤다. 타성에 빠져 “나는 다르다”고만 생각한다. 변화와 개혁은 외면당한다. IBM처럼 핵심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경쟁자를 못 보게 되고, 결국은 눈앞의 경쟁만 보는 짧은 시야에 갇혀 버린다. 그리고는 무조건 덩치만 키우면 된다는 생각에 조직을 늘려가다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조직이 와해되는 결과를 보게 된다.

실제로 최근 쇠락세를 보이는 기업은 미래 경쟁자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글로벌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오너도 투자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부동의 세계 1위 게임업체였던 닌텐도의 경우 스마트폰이 차마 경쟁자가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나이키의 진정한 경쟁자는 유수의 아웃도어 업체가 아니라 닌텐도”라는 칭찬에 고무되어 있다가 되레 자신이 그 덫에 걸려 버렸다.

일본항공(JAL)은 내부 구조개혁 없이 정부가 만들어준 ‘아시아 대표’라는 위상에 취해 있다가 추락하게 됐다.

노키아 역시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은, 시대 조류를 읽지 못하는 후진적 경영행태를 보여주었다.

필립스 등 기타 기업도 장기 전략 없이 현재에 안주하는 안이함에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그저그런 회사로 추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들이 생사를 걸고 추진하고 있는 강렬한 변신과 혁신의 결과가 기대된다.

<첫번째사진>닌텐도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Wii. 2008년 닌텐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5500억엔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가운데사진>닌텐도가 지난 6월 세계게임쇼(E3)에서 발표한 신형 비디오 게임기 ‘위유(Wii U)’. 위유는 콘솔과 리모트컨트롤러로 구성되어 있다.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업체로, 제왕으로 군림해 온 노키아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사진은 ‘노키아 5800익스프레스’.

닌텐도-시장 트렌드 파악 실패

2008년까지만 해도 ‘세계 비디오게임 시장의 최강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일본의 닌텐도. 지금은 스마트폰 열풍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IT 기업이 됐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어린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로 꼽혔던 닌텐도의 휴대용 콘솔 DS시리즈, 동작인식게임 ‘위(Wii)’는 이제 애플의 아이폰에 밀려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닌텐도는 5500억엔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작년 회계연도 닌텐도의 순이익은 2009년 대비 3분의 2로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은 반토막이 났다. 1947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닌텐도의 추락은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스마트 시대의 도래를 간파하지 못한 데 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급속히 늘어난 모바일 게임기가 DS 전용 게임기 시장을 잠식해 갔지만, 닌텐도 경영진은 이런 시장 트렌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앱스토어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닌텐도의 전용 게임기는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여기에 경쟁사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동작인식게임을 내놓으면서 닌텐도 고유의 차별성마저 퇴색돼 버렸다.

소프트웨어에도 문제가 있었다. 닌텐도가 피트니스 게임 ‘위핏’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경쟁사인 소니와 MS는 PS무브와 키넥트를 내세워 닌텐도의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뒤늦게 지난달 세계게임쇼(E3)에서 위 후속으로 ‘위유(Wii U)’를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개발일정이 경쟁사인 소니의 PS비타나 애플의 아이폰5보다 늦고 닌텐도의 이전 모델(위)과도 별 차이가 없어 닌텐도의 미래 승부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권기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닌텐도의 위기는 변화의 흐름에 대응한 전략의 부재를 보여준다”며 “닌텐도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재도약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JAL-방만 경영으로 추락 직격탄

일본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항공사로 군림했던 JAL의 추락은 항공업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JAL이 몰락한 건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JAL의 파탄 원인을 조사한 사내 특별감사조사위원회는 정치권에 의존한 경영을 첫 이유로 꼽았다. 기업의 정체성을 ‘국적항공사’로 규정짓고 방만하게 경영을 펼친 결과 법정관리라는 파국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최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성공 비결에 대해 “세계적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일찌감치 국적항공사에서 민간항공사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한항공과 JAL의 엇갈린 선택이 결국 양극단의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 JAL은 테러, 금융위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으로 승객이 크게 감소했던 시기에도 구조조정 등 특단의 조치 없이 긴급융자에만 의존하며 경영을 이어갔다. 정ㆍ관계에 의존하려고만 했던 무책임 경영이 JAL의 가장 큰 문제였다.

지난해 1월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 JAL은 올해 3월 채무를 청산하고 14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탈피했다. 14개월 동안 JAL은 피눈물나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면서 전 세계에 걸쳐 있던 항공노선도 대폭 축소했다. JAL이 자랑하던 글로벌 위상은 질뿐 아니라 양으로도 옛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된 셈이다.

일본 내 저가 항공사가 점차 세를 넓히고 있어 저가 항공시장에 뛰어든 JAL이 경쟁에서 살아남을지 불투명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일본 원전 사고라는 외풍(外風)까지 겪으면서 일본 항공 수요가 급감했다. 경영회복에 심혈을 기울이는 JAL에는 직격탄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업계는 이미지로 승부하는 분야인데 JAL이 한 번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구원경영’에 나선 이나모리 가즈오 JAL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이 변수다. 교세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선보였던 이나모리 회장은 JAL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무보수로 CEO를 맡고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하는 JAL의 747비행기.<왼쪽사진>, 필립스는 한때 프리미엄 가전의 대명사로 불렸다. 인터브랜드 10대 성장기업 선정 뒤 임원진들이 환호하는 모습.

노키아-‘1등’ 자만심의 초라한 결말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업체로 수년간 제왕으로 군림해 온 노키아의 아성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이다.

올 1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떨어졌다. 1분기 스마트폰 매출액에서는 애플에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애플 아이폰에 밀려 일본 시장에서는 철수를 결정했다.

올 2분기에는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가 어려울 수 있다는 최고경영자 스티븐 엘롭의 발언으로 주가는 13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트프(MS)로의 인수설까지 나돌고 있다. 핀란드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노키아의 위기는 핀란드 경제 전체의 위기다. MS와의 전략적 제휴, 인력 구조조정, 가격파괴 등 잇따른 위기 타개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재기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노키아 몰락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무엇보다 노키아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스마트폰 시장 중심 이동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는 애플이나 HTC 등 후발 주자에게 시장을 내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 노키아는 ‘1등 기업’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노키아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시장의 표준’이라며 자체 운영체제(OS)인 심비안을 고수했다. 아이폰을 비웃었다. 하지만 결과는 아이폰이 세상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

노키아의 정책은 삼성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하며 세계 스마트폰 조류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과도 비교가 된다.

노키아는 마케팅 정책에서도 실패했다.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저가폰 판매에 주력한 반면, 휴대폰 시장의 50%를 웃도는 아시아 신흥개발국 시장은 외면했다.

윤영진 KT경제경영연구소 미래전략팀 부장은 “노키아의 추락은 빠르게 변화하는 스마트폰 생태계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결과”라며 “최근 자체 OS 포기 등 쇄신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필립스-장기전략 부재가 화근

필립스는 한때 프리미엄 가전의 대명사로 불리던 네덜란드의 자존심이었다. 세계 최초로 카세트테이프를 상업생산했고, 콤팩트디스크(CD)를 발명하는 등 연구개발을 선도하며 오랫동안 정상을 지켜왔다. 더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았던 필립스는 그러나 일본·한국의 경쟁업체가 부상하면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필립스는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따라가지 못했다. 대량생산 체제에 신기술이 나오면 곧바로 관련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는 등 전자시장의 기술발전 속도가 매우 빨랐지만, 필립스는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전략적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필립스에는 장기적인 전략이 없었다. 그때그때 시장 상황에 따라 기술자가 좋은 물건을 만들면 그냥 내다파는 식이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직원을 앞세워 과거에는 성장을 거듭했지만, 시장 급변과 업체 간 기술 수준이 비슷해지면서 필립스의 강점은 사라졌다. 소비자 가전·전자부품 등 품목도 너무 다양했지만 경쟁자와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실패한 것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이익과 손실이 들쭉날쭉하면서 필립스의 올 1분기 순이익도 3분의 1이나 급감했다. 전 세계 수백곳에 생산기지를 운용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도 경쟁력 저하의 주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도 필립스의 항해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지진 대해일)로 공급체계가 붕괴됐고, 정전 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필립스는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과 인도ㆍ브라질 같은 신흥시장에 수익성이 높은 조명사업과 건강 관련 제품 판매에 주력해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필립스에 대해 “경쟁열위의 상황을 직시하고 M&A로 우회경로를 발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필립스가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박영훈·최상현·김상수기자/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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