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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 甲이 무너진다
금융위·금감원·국세청 잇단 비리연루
검찰 수사권 싸움 상처

마지막 보루 감사원도 흔들


현직땐 무소불위 권력행사

퇴임후엔 변호·바람막이


국민들 싸늘한 시선 의식

기업고충 등 대민업무 차질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에


갑(甲) 중의 갑, ‘슈퍼 갑’들이 흔들리고 있다. 피라미드형 먹이사슬의 사회구조 속에서 늘 최상위에 위치한 권력기관들의 파워에 균열이 생겼다.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금융위ㆍ금감원은 저축은행 비리로 만신창이가 됐고 국세청에선 틈만 나면 뇌물사건이 튀어나온다.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경찰과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검찰을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슈퍼 갑의 붕괴를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중요한 건 그동안 가진 권력을 너무 누렸고 사회에 인색하며 독점에 골몰했다는 점이다. 도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자기가 판결했던 범인을 옷벗고 나서 변호하고, 감시 감독했던 기관에 임원으로 취업해 바람막이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안으로 곪다가 이제 마구 터지는 것이다. 너무 크고 잦으니 ‘미꾸라지 몇 마리일 뿐’이라는 변명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아무리 자정 선언을 해도 시선은 싸늘하고 점점 더 높은 청정 수준과 업무 집중도를 요구한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아무리 슈퍼 갑이라도 을(乙)의 입장에 처한 셈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자부 장관)은 이런 현상을 2011년 한국사회의 신(新)갈등구조로 분석한다. 늘 인사이더(in-sider)였던 갑과 아웃사이더(out-sider)였던 을의 대립이 심화되거나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면서 생겨난 ‘을의 역습, 패자의 역공’이라는 것이다.

감사위원의 부산저축은행 로비 사실이 드러나 공정성과 위상에 흠집이 생긴 감사원은 지금도 그 여파에 흔들린다.

다음달 4일부터 20개 표본 대학을 선정해 등록금 문제에 대해 집중 감사해야 하지만 대학들의 치열한 로비전에 시달린다. 감사원 관계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정치권 등을 통해 표본 선정 기준을 알려 달라거나 표본에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는 대학들이 많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로비 차단을 위해 이례적으로 외부인사 중심의 ‘교육재정감사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감사 대상 대학을 선정키로 했다. 국가기강의 최후 보루인 감사원마저 외부의 힘을 빌려야만 신뢰가 담보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법조계도 ‘권력 해체’ 현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자승자박이다. 법관은 자신들을 우러러보는 사회적 평판에, 검사는 국민의 자유를 체포·구속·기소라는 도구로 제한할 수 있는 권한에 기대어 줄곧 ‘갑’의 위치를 지켜왔지만, 과연 막강한 권력을 위임할 만한 집단인지 의심케하는 사건들이 줄줄이 나왔다. ‘스폰서·그랜저’ 검사, ‘막말·뇌물’ 판사 등이 ‘흔들리는 슈퍼 갑’을 자초한 셈이다.

검사의 기소독점권을 제한하는 검찰시민위원회 가동, 판·검사의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법안 시행은 도를 넘어선 ‘슈퍼 갑’에 대한 여론의 강력한 견제다.

패자의 역공은 슈퍼 갑 간의 분열과 대립을 불러왔다. 현택수 교수(고려대 사회학)는 “갑 기관간의 크로스 체킹은 견제라는 선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호의 의미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검찰과 국세청을 예로 드는 사람이 많다. 어차피 나중에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는데 국세청 고위직에 수갑 채우는 일이 쉽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전직 국제청 고위관리가 재벌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자문료를 받아 검찰 문을 들락거린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부지기수다. 홍성태 교수(상지대 사회학과)는 “권력의 자의적 운용 및 사유화가 심해질수록 권력기관의 충돌은 더욱 커지고 그만큼 피해를 보는 이들도 늘어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움츠린 슈퍼 갑들은 아예 시정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민원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의심받기 때문이다.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한 기업인은 “공무원은 국민과 기업, 시장으로부터, 좋든 싫든 얘기를 듣고 소통을 해야 하는데 이젠 만나주질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겉으론 거리를 두면서 밤에는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는 이도 많다는 얘긴 계속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 구조를 조정할 리더십이 없다는 점이다. 그건 청와대가 할 일이고 엄정한 공무원 정신이 지켜져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집권 말기 레임덕 현상은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다.

임운택 교수(계명대 사회학과)는 “정권 말기의 권력누수 현상은 특별할 것도 없지만 기본적인 원칙 존중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들은 소나기만 피하자고 생각하게 마련”이라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 정부의 국방장관을 그대로 흡수했듯이 승자가 권력을 독식하는 구조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창훈ㆍ홍성원ㆍ하남현 기자/chun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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