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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 맘대로 하는게 아니면 우린 의미 없다”…2집으로 돌풍 잇는 장기하와 얼굴들
‘희끄무레죽죽’한 것이 대충 뛰어오르면 정수리를 ‘꿍’ 하고 찧을 정도로 낮게 깔린 하늘. 장마의 한 가운데 그를 만난다는 건 조금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바람 부는 날 이소라를 만나는 것처럼. 그는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나타났다. 얼굴들(정중엽-베이스, 김현호-드럼, 이종민-건반)과 함께. 싸구려 커피는 아니지만 비교적 참살이스러운 차 한 잔씩을 두고 마주하니 할 말이 많았다.

장기하. 서울대 출신 인디 뮤지션. 아니, 인디계의 서태지. ‘오빠’ 아닌 ‘교주’.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는 다소 설화적인 가사에 말도 안되는 후크를 탑재한 노래. 그 동영상이 유튜브 등지를 한 차례 돌더니 별안간 스타가 됐다. 인디에서 솟아나와, 진지하게 ‘간지’ 나 보이는 음악을 추구하던 많은 뮤지션들을 적잖이 속쓰리게 했다.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노래 프로듀싱까지 모두 혼자 해버린 싱글을 엄청 팔아치우더니 ‘장기하와 얼굴들’로 낸 1집에서는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없이 산다’고 선언하며 또 다시 신드롬. 지난달 초 낸 2집 반응이 또 심상찮은데. ‘그렇고 그런 사이’의 ‘손 춤’을 애들도 흉내내기 시작했다.

데뷔 후 3년 간 쏜살 같이 달려온 장기하의 말은 느렸다. 어절 하나하나를 곱씹듯, 조심스러우나 단호하게 내뱉어 상대를 되려 긴장시켰다.



-2집부터 민낯인데. 안경은 어디다 뒀나.

▶(장기하ㆍ이하 하)벗는 게 외모적으로 나을 것 같아서. 1집 하면서 안경에 수염까지 길렀더니 ‘40대 가수’로 오인되고. 제 나이로는 보이는 게 낫지 않겠나…하는 생각에. 2집 낼 때 됐으니 방송 나갈 일도 생길 테고. 새로운 느낌 주는 것도 좋은 것 같고.

-‘그렇고 그런 사이’ 뮤직비디오의 ‘손 춤’이 화제다. ‘TV를 봤네’도 인상적. 직접 연출했던데. 무모한 도전 아니었나.

▶(하)촬영, 조명, 미술은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분들 도움을 빌었다. 영상은 무조건 음악에 복무해야 한다는 게 뮤직비디오에 대한 나의 철학이다. 손이라는 게 사람의 축소판 같다고 봤다. 손 하나만 등장하다 다른 손들이 가세하는 콘셉트는 제목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당신들도 다른 음악에서 영향 받았겠지.

▶(하)비틀즈, 도어즈, 밥 말리, 벨벳 언더그라운드,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다 열거하면 신문 지면 넘칠라. 고전을 많이 참조하는 편이다. 지난해엔 코린 베일리 래에 빠졌었다. (김현호ㆍ이하 호)샤데이, 킹크스, 베이비섐블스, 주톤스, 블랙 키스, 그리고 브라질 음악들.

-곡 뼈대로 펜타토닉(전통음악이나 블루스의 기본이 되는 5음계)을 많이 쓰더라.

▶(하)누구나 사용하는 스케일(음계)인데 이게 되게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 있다. 단순한 펜타토닉이 효과적이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레이지어겐스트더머쉰 들으면서다.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는 블루스다.

-리듬감이 유별난 것 같다.

▶(호)리듬 도착자. 까진 아니어도 리듬 갖고 장난 많이 친다. 음표로 그리기 힘든 부분들도 많다. (하)밥 딜런 라이브 들어보면 그때 그때 다르다. 음표로 그리기도 힘들고. 그릴 수 있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나. 노래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당신들 음악 듣고 웃길 바라나, 감상하길 바라나.

▶(하)싫어하진 않았으면 한다. ‘심지어 나쁘지도 않다’가 최악이다. 웃겨도 되고 슬퍼도 된다. 어떤 종류의 감흥이든 들었으면. 스쳐지나가지 않고 딱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노래 연습, 하나?

▶(하)합주 때 하는 게 전부다. 아, 노래방 가면 음정 박자 잘 맞춰부르려 노력한다. 부모님 안 계실 때 음이 얼마나 올라가나 실험도 해봤다.

-책을 잘 안 읽는다면서.

▶(하)어려서부터 TV를 너무 많이 봤다. 예능, 가요, 코미디 할 것 없이 다 봤다. 화요일엔 ‘화만나’, 토요일엔 ‘토토즐’. 남들은 이순신 전기 볼 때 ‘유머 일번지’ 봤다.

-장기하가 만들어온 노래가 멤버들 맘에 안들 때도 있나.

▶(정중엽)기하씨는 모든 악기 파트를 혼자 다 편곡해온다. 다른 세션할 때는 내가 적절히 라인을 바꾸곤 했는데 기하씨 거는 막상 들어보고 연주해보면 바꿀 게 없다.

-이게(장기하 신드롬) 언제쯤 끝나리라고 보나.

▶(하)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건 무의미하다. 당장 닥친 일 잘해내기도 벅차다. 인기가 있든 말든 상관 없다는 건 아니다. 대중음악은 인기가 있어야 한다. ‘인기만 있음 장땡’도, ‘우리만 좋으면 된다’도 모두 배척한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좋은 음악이면 좋겠다.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나

▶(하)시공을 초월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의미 있는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당신들, 인디인가, 메이저인가

▶(하)대자본의 투자를 받지 않는 대신 음악적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디긴 하다. 다만 인디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인디 중에도 안 좋은 음악 많고 메이저에도 좋은 음악 많다. 지갑은 두둑하지 않지만 자유로운 게 인디, 돈은 되지만 자유가 덜한 게 메이저다. 우린 지금 방식이 좋다. 100% 맘대로 하는 게 아님 우린 의미 없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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