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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준비전도사 강창희의 80000시간
오전 6시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에서 강의

부산역 앞 아귀탕 집에서 소주 반병,

대구에서 오후 강의를 마치고

남은 소주 반병을 마시고 돌아오는 토요일

이때 느끼는 성취감이 매우 즐겁다


노년의 삶은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퇴직 후 동해 푸른 바닷가 근처에 작은 가락국숫집을 내거나 고향 텃밭에서 블루베리를 키우는 등 누구나 ‘인생이모작’에 대한 꿈을 막연히 품고 산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아파트 대출금 갚고 자식 대학 등록금, 혼수비 등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 그러다 준비 없이 덜컥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 막막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40대 중반만 돼도 명예퇴직 위협에 시달리는 증권가에서 38년째 현역으로 뛰고 있는 강창희(64)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 겸 투자교육연구소장은 그런 면에서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장수 리스크를 역설해온 ‘은퇴 준비 전도사’ 강 소장은 강의 요청이 밀려드는 인기 강사다.

지금도 하루에 많을 때는 3번, 어떨 때에는 토요일까지 강의에 나선다. 이달 말까지 예정된 강의를 합하면 총 강의 횟수는 2231회. 평생 남들 앞에서 말만 해온 교장 선생님들도 오후 1시30분 강 소장의 강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들을 정도다.

오전 6시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에서 강의하고 부산역 앞 아귀탕 집에서 소주 반병, 대구에서 오후 강의를 마치고 대구역 근처 돼지고기 김치찌개 집에서 남은 반병을 마시고 돌아오는 토요일. 이때 느끼는 성취감과 충만감에 매우 즐겁다는 강 소장은 리서치센터장, CEO 등 화려했던 지난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의 직장을 박차고 나와 일본 전문가로=강 소장은 1973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시절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연수를 간 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일본의 65세 이상 노령 인구 비중은 8%대로 은퇴 이후의 삶이 온통 화두였다. 노인들이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은 강 소장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루 신문 한 장 읽고 퇴근했던 ‘신의 직장’ 거래소를 떠나 대우증권으로 옮긴 그는 일본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30대 중ㆍ후반 한창때를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으로 일본에서 보냈다. 일본의 고령화 시대 진입, 1980년대 말 일본 버블 붕괴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많은 사례를 접한 것이 경력에 큰 도움이 됐다. 한국에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는 글 등을 쓰면서 주목받고 승진을 거듭해 현대투자신탁운용, 굿모닝투신운용 CEO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펀드운용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장기 투자를 하고 싶어도 고객들이 사고팔기를 반복해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일이라 생각한 그는 2000년대 초부터 투자자 교육 강의에 나섰고 이제는 주업(主業)이 됐다.

“은퇴 준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무섭게 변했습니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유망 종목을 찍어주나 보다 하고 왔던 분들이 장수 리크스, 장기 투자 이런 얘기를 하니까 ‘웬 생뚱맞은 소리냐’ 이런 표정이었죠. 반면 이제는 퇴직 후에 대해 절실히 생각하게 됐죠. 언론에서 계속 부각시키니까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있고…. 지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강의가 끝나면 ‘당신 말대로 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 이렇게 묻습니다.”

▶과감히 부동산을 줄여라=저금리에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닥치면서 많은 사람이 은퇴 이후를 걱정하게 됐다. 상황이 바뀌었고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까지 왔지만 문제는 실천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 소장은 부동산과 자녀 교육에 과도하게 쏟는 비용을 과감하게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 퇴직연구소 조사 결과, 수도권 베이비붐 세대들의 순자산은 평균 4억8000만원인데 이 가운데 부동산이 4억6000만원이다. 결국 손에 쥐고 있는 것은 200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2000만원을 갖고 주식으로 튀겨 볼까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해서 그것마저 0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집 팔아서 생활비 대야 하는데 700만~8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집을 내놓기 시작하면 집값이 어떻게 되겠어요. 빨리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덜 고생하겠죠.”

자녀 교육비 역시 마찬가지다. 강 소장은 딸이 외손녀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려고 하자 A4 용지 2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말렸다. 교육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면 사위의 자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강 소장은 데리고 있던 부하 직원들이 외국 기업에 취직해 2~3배 많은 월급을 받고 높아진 생활수준 때문에 나중에 월급을 줄여 다시 국내 기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강 소장은 “딸이 울면서 ‘아빠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더니 결국 안 보내더라”고 전했다.



은퇴 준비를 미처 못하면 자녀들의 도움을 받고 살 수도 있지만 부모도 오래 살고 자식도 오래 살아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꼴이 된다. 일본 내각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인 노후 주요 수입원의 30.1%가 ‘자녀ㆍ친척 도움’인 데 비해, 미국은 0.7% 수준이었고 일본도 1.9%에 불과했다. 우리도 자녀에 의존하는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 확실한 노후 대책은 평생 현역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강남에 가면 시니어클럽이라고 있어요. 요즘 학부모들 맞벌이가 많으니까 초등학생 자녀를 노인들에게 맡기면 애들을 오후 9시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학원도 같이 가주고 하는 거죠. 돈을 많이 주는 건 아니지만 신청 인원이 폭발적이래요. 이런 식으로 노인들이 뭔가를 하면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해야=하지만 노인 일자리가 아직은 부족한 만큼 평생 현역이 되기 위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전문가가 되라고 조언했다. 특히 20~30대에게는 단기간에 주식을 사고팔아 한방을 터트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몸값을 높이는 데 매진하라고 충고했다.

“재테크보다 확실한 투자 엔진은 자신의 직업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30대 중반까지 돈을 꿔서라도 몸값을 올리는 데 써야 합니다. 자신의 주특기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예요.”

파생상품 같은 데 투자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직장 생활 초기부터 노후 대비를 염두에 두고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을 들라고 강 소장은 당부했다.



▶노후 설계는 부부가 함께=그는 또 결혼 후에는 노후 설계를 부부가 함께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편이 죽고 10년 정도 부인이 혼자 살 것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7년 정도 길고 보통 남편이 부인보다 세 살 정도 연상인 것을 감안한 것이다.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건강 리스크다. 강 소장 부부도 암에 걸린 경험이 있다. 강 소장은 “병에 걸려 보니 자식도, 간병인도 소용없고 부부밖에 없더라. 웬수 같더라도 부부가 최대한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짜야 할까. 본인의 재산과 나이, 성향, 가족 상황, 투자 기간 등에 맞게 설계하면 된다. 이것이 복잡하다면 100에서 나이를 뺀 만큼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자산으로 갖추는 것이 적당하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부동산에 몰방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3대7, 일본은 4대6 정도에 불과하다.

“금융자산의 경우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투자상품으로 가야 합니다. 여전히 예금을 자산 불리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6개월 이상 여유자금은 하다못해 CMA나 MMF에라도 넣어야 해요.”

지금처럼 널뛰는 주식 시장에 함부로 뛰어들어도 되느냐는 질문에 강 소장은 “주식 투자는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이다. 2년 후냐, 3년 후냐가 문제다. 70억 인구가 지구상에 사는 한 어디에선가 무언가 사업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이 생긴다. 인류가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 경제는 장기적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강 소장의 경우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을 반반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100-나이’ 공식에 대입하면 금융자산은 40%로 유지해야 하지만 아직 고정 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주식 투자는 하지 않고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향후 그의 목표는 80세까지 출근하는 것이다. 강의는 수요가 있을 때까지 계속하고 그 이후에는 해외의 좋은 자료들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할 계획이다. 여의도에 있는 강 소장의 사무실에는 일본 신문 한 무더기를 비롯해 ‘혼자 사는 노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등 일본어책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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