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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성과 디테일을 포착한 ‘개콘’
KBS ‘개그콘서트’가 지난해 10년을 넘기면서 주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눈에 들어오는 코너들이 꽤 많아졌다. ‘감수성’ ‘생활의 발견’ ‘꽃미남 수사대’ ‘발레리NO’ ‘그땐 그랬지’ ‘사운드 오브 드라마’ 등 웃음 코드가 다양해졌다. 여기에는 ‘뮤직뱅크’를 연출하다 지난해 11월 ‘개콘’으로 온 서수민 PD의 역할이 크다.

서수민 PD는 ‘개콘’이 처음 만들어질 때 연출자인 박중민 PD와 함께 조연출로 초기 그림을 그렸다. 신인 PD로 역시 당시 신인이었던 김준호와 이대희, 김병만, 이수근과 거의 바닥을 기면서 고락을 함께했다. 김미화, 백재현과 같은 고참들도 있었지만 신인들과의 고생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정 코너가 거의 없었고 매주 새로운 걸 짜야 했다. 계속 출연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주 내놔야 했던 경험들이 지금은 개그 내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 PD는 개그맨들은 현장에서 웃음이 터질 가능성이 높은 것 중심으로 짜온다고 했다. 현장에서 큰 소리가 나게 장치를 집어넣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국 망한다는 게 서 PD의 지론이다. 그런 건 검사받을 때 의도적으로 빼버린다.


그러니 이제는 어떤 개그가 흥하는지를 판단하는 작업도 훨씬 미세해졌다. 녹화장에서는 웃음이 터졌는데 집에서는 반응이 적은 적도 있다. 체크하기가 그만큼 까다로워졌다는 얘기다.

‘감수성’은 객석에서는 안 터졌는데 시청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생활의 발견’은 객석에서는 안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빵 터졌다.

‘발레리NO’는 녹화 시와 방송 시 다 웃음이 터졌는데, 그 과정에서 비방용(非放用, 방송에 못 나감)이 될까 봐 우려가 적지 않았다. 다행히 민망함을 웃음 포인트로 잘 끄집어냈다.

요즘은 웃음 트렌드도 일상성과 디테일이 중요해졌다. ‘생활의 발견’은 지극히 평범한 남녀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따왔다. 이별 등 남녀의 모습을 지극히 일상적인 맥락의 디테일로 풀어간다. 평범한 실생활 속 행위이거나 상황이지만 오히려 인식하기 힘든 점을 과장해 부각시킨 것이다.

감자탕집에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으면서도 감자탕을 게걸스럽게 먹고, 이별 통보 후 식당을 나가면서도 아이스크림이나 박하사탕을 챙기는 등 할 건 다 한다.

‘감수성’은 감수성이 예민한 장수와 병사, 포로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드러나는 반전과 권위의 붕괴가 묘미다. 청나라 병사가 포로로 잡혀 사형을 집행하다 옷을 너무 많이 벗기자 ‘빈정이 상했다’며 ‘나 안해’하고 나가버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꽃미남 수사대’는 재미있기는 하지만 조금 약해 거의 나체 패션으로 등장하는 경찰청장으로 박성호를 등장시켜 코너의 전체적 ‘맥’을 보강했다.

무려 3년5개월을 끌고온 ‘달인’ 코너는 어느덧 진짜 달인에 도전하는 ‘리얼 달인’ 구조가 돼버려 김병만에게 완급 조절을 주문한 사람도 서수민 PD다.

‘개콘’에는 ‘발레리NO’처럼 즉각적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도 있지만 ‘감수성’과 ‘생활의 발견’처럼 머릿속으로 한번 생각해서 웃음이 나오는 코너도 있는 등 다양한 개그가 포진돼 있다. 서수민 PD의 이 같은 복합적 구성 포석 스타일이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강도도 세지는 예능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다. 그냥 트렌드 외피만 따라가다가는 독한 개그만 남을 뿐이다.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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