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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식당서 건넨 돈,KBS와 SBS는 본사로, MBC는 ‘스타맛집’ 조작”
“식당이 ‘협찬비’명목으로 건넨 돈은 홍보대행사와 KBS, SBS가 나눠가집니다. MBC는 회사차원에서 돈을 관리하진 않지만 외주제작사에 제작비를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90%정도만 지급하면서 협찬비를 조장합니다. 또 연예인을 동원해 ‘스타단골맛집’을 조작합니다.”

TV 맛집의 실체를 폭로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은 영화제작을 위해 지난 2009년 7월 일산에 한 식당을 개업했다. 이 식당은 홍보대행사에 1000만원을 주는 조건으로 SBS ‘생방송투데이’에 소개가 됐다. 또, '트루맛쇼'에 실험과 촬영 대상이 됐던 또다른 식당은 MBC ‘찾아라, 맛있는 TV’에 등장하는 대가로 홍보대행사에 900만원이 건네졌다. 500만원~1000만원을 내면 식당은 지상파TV가 소개하는 ‘맛집’으로 선정될 수 있다. 협찬비 명목의 돈은 KBS와 SBS는 직접 본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MBC는 스타가 한번도 가지 않은 곳을 ‘스타의 단골식당’으로 조작하기 일쑤라는 것이 김 감독의 주장이다. 




“맛이라는 프레임으로 미디어가 조작하는 세상을 보여준 겁니다. ‘TV맛집’은 대박을 내보겠다는 자영업자의 욕망, 방송관행에 무임승차해 이익을 나눠갖는 광고ㆍ홍보대행사, 시청률올리기에만 급급한 방송국, 블로그에 사진 한장 올려서 ‘나도 이런 곳에 가봤다’고 하는 소비자들의 허영심이 교차하는 접점입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천박성에 직격탄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비판적인 미디어 소비자’의 행동을 촉구하는 영화입니다.”

‘트루맛쇼’는 김 감독이 차린 식당이 브로커ㆍ홍보대행사를 통해 지상파TV에 소개되는 과정을 ‘몰래 카메라’를 동원해 촬영했다. 이를 통해 협찬비를 고리로 식당-브로커-광고대행사-방송국 사이에서 이뤄지는 ‘검은 커넥션’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또 자사의 PD와 방송PD 지망생들을 한 사이트를 통해 외주제작사들이 모집하는 ‘가짜 손님’으로 둔갑시켜 TV맛집 소개 영상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TV맛집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식당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이 아닌 동원”이며 대본과 PD의 지시에 의해 대사는 물론 표정, 손짓까지 지시를 받는다. 또 방송사(방송작가)와 식당을 연결하는 ‘전문 브로커’의 존재도 고발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캐비어삼겹살 등 방송용 메뉴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출연까지 한다. 다큐에 등장하는 브로커의 경우 방송출연을 대가로 식당으로부터 500만원을 받고 이후 추가방영 1회당 100만원씩을 받아왔다. ‘불만제로’ ‘좋은 나라 운동본부’ ‘소비자고발’ 등 시사고발프로그램을 통해 비위생적이거나 저질의 식재료를 쓴 식당으로 적발된 곳이 자사의 또 다른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황당한 사례도 허다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단골이라며 방문 당시 사진까지 크게 찍어 걸어두고 TV에 소개된 설렁탕집이 ‘가짜한우’를 써 적발된 사례도 영화 속에 등장한다. 



“맛산업과 미디어산업 양자를 비판한 영화이고, ‘조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상징적인 의미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재철 MBC사장을 등장시켰습니다. MBC가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소송(기각)을 낸 것은 ‘김재철사장의 자폭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입니다. 방송국들은 ‘쿨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김재환 감독은 지난 1996년 MBC PD로 입사해 교양프로그램을 연출해오다 지난 2001년 퇴사, 이듬해 독립제작사를 만들었다. 그동안 MBC 교양프로그램 외주가 회사 매출의 70%정도를 차지해왔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식당을 개업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것이) ‘함정취재’라는 비판도 있죠. 그렇습니다. 저는 방송과 제작진이 사용하던 방식으로 그들을 속였을 뿐입니다. 방송사는 전국민을 속여오지 않았습니까. 시청자나 관객의 입장에선 자신을 속여오던 방식으로 우리가 제작진을 속였으니 통쾌할 겁니다. ”

지상파 방송국TV PD출신에 MBC에서 외주를 받아오던 김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으니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 이후 무수한 ‘음모설’과 배후세력에 의한 ‘사주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이 영화의 기획이 4년전, 인터뷰 등 취재에 나선 것이 3년여전, 식당을 차린 것이 2년전이란 것을 감안하고 현재의 방송환경을 주의깊게 보면 대부분의 ‘사주설’은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을 쳤다.

“독립외주제작사를 하게 되면 (‘TV맛집’처럼) 그런 식으로 접근해오는 홍보대행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방송이나 엔터테인먼트업계 뒤에서 흐르는 ‘블랙 마켓’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죠. 홍보대행사의 전직 직원들을 통해 자료수집을 하게 됐고, 4년전부터 이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 감독은 “섣불리 덤볐다간 다 지는 게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넘어야될 산도 많고 자칫 줄소송을 당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가보겠다”고 선언했다. 영화 속에 쓴 TV자료화면이 ‘방송저작권’ 문제로 걸릴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지상파 3사의 방송자료에 대해 “상업영화 수준”의 저작권료를 지불하겠다고 했으나, 방송사가 거부했다. ‘연예인 초상권’은 김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만일 소송까지 이를 경우 ‘판례’를 남기기 위해 모험적인 선택을 했다. 영화 속 식당이 MBC ‘찾아라, 맛있는 TV’의 ‘스타의 맛집’ 코너에 등장할 때 김신영, 김종민, 천명훈이 진행을 한다. 영화 속에는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를 하지 않고 TV방영 당시의 화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실제로는 스타가 처음 찾은 곳을 마치 단골맛집인 것처럼 소개한다”는 주장을 위해 쓰인 장면이다. 출연 연예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연예인 초상권은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외국 사례도 살펴봤지요. 영화제작의 기본적인 원칙은 “(연예인 얼굴을)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 ‘트루맛쇼’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내가 가린다고 관객들이 모를까, 음성변조하고 모자이크 처리해도 연예인들의 초상권은 보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초상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전제도 깨고자 합니다. 만일 법적인 다툼이 있다면 끝까지 지고 가겠습니다.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는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고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용인되는 사회인지를 보여주려했습니다. 이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면이 벗겨지고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돼야 하는 것이죠. 다만 영화에 등장한 천명훈, 김종민, 김신영씨는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운이 없었던 것일 뿐이죠.”


영화 속에는 남희석이 한 스포츠 일간지의 기고를 통해 과거 한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을 TV에서 ‘단골맛집’으로 소개한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한 대목도 등장한다. ‘트루맛쇼’의 내레이션을 맡은 전 MBC 아나운서 박나림은 엔딩 크레딧에서 역시 ‘스타의 맛집’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고 소개된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이슈가 되면 앞으로 TV에서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없게 되지 않겠냐, 연예인들이 쉽게 ‘스타의 맛집’에 출연하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가면 벗기기’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는 유명인사의 일상이나 성공기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가면 씌우기’라면 ‘트루맛쇼’같은 폭로, 고발 다큐멘터리는 ‘가면 벗기기’라고 했다.

김 감독의 ‘가면벗기기’ 다음 차례는 병원ㆍ의사다. 그는 “식당 뿐 아니라 TV에 등장하는 의사들도 다수 돈을 내고 출연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비판 2부작으로 ‘가짜병원’을 차려 ‘가짜의사’가 TV에 전문가로 출연하는 과정을 담으려고 일부 촬영까지 마쳤으나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바람에 “완성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트루맛쇼’는 2일 개봉했고 김 감독 인터뷰는 이날 저녁 여의도에서 이뤄졌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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