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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백낙청 교수, “한국 문학 새로운 도약 기대해도 좋아”
“어떤 것은 40년이 넘은 것도 있는데 다시 보니까 그때 내가 가고자 했던 길에 충실해왔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바꾸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70년대 민족문학론을 제시하며 문학담론을 이끌어온 문학평론가 백낙청(73) 서울대 명예교수가 새 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5’(창비)와 1978년 펴낸 첫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함께 냈다. 평론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 진보지식인의 평론가로서의 궤적과 우리 시대 핵심적 담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번 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은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이후 5년 만으로,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보다 물음을 제기하는 행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백 교수의 일관된 비평적 관점이 드러난다. 

한때는 치열하게 묻고 논쟁을 벌였던 이 본질적 물음이 왜 중단돼 가는가에 대한 백 교수의 본원적 비평이랄 수 있다. 이번 평론집에는 사실주의, 문학과 정치, 모더니티, 세계화, 소통 등 주요 담론들이 망라돼 있다. 사회일반 비평처럼 느껴질 법하지만 소설과 시라는 작품을 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덜 무겁다.

개별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작가가 놓치고 있는 것, 숨겨놓은 것까지 읽어내어 현실의 진실과 그 맥락을 이어가는 백 교수의 논법은 충실한 독자로서의 평론가의 전범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가령 백 교수는 신경숙의 ‘외딴방’과 윤영수의 ‘소설 쓰는 밤’을 비교하며 사실주의적 글쓰기의 변주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어떤 것인지 제시한다. 또 박민규의 ‘핑퐁’을 통해선 ‘촛불의 정신’과도 통하는 발랄한 뛰어넘기가 보여주는 미덕과 한계를 동시에 집어낸다.

“사회 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토로한 시인 진은영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 글은 김언 등의 실험적 시들, 이장욱의 ‘시의 정치성’ 등의 문제로 이어지며 결국 문학은 무엇인가로 회귀한다.

“문학의 힘은 현실에서 선전 팸플릿처럼 지침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감수성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쇄신함으로써 길게 보아 개개인의 삶을 더 심층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는 게 백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니 요즘 다른 매체에 비해 힘이 떨어졌다고 해서 너무 신경을 쓰진 않는 게 좋다는 얘기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2000년대 한국문학의 활력을 보여주는 뛰어난 소설, 세계 시장에 내놓음 직한 많지 않은 문제작의 하나로 평가하며 면밀히 분석한 대목은 영문판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 이전에 나온 평론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통속적이란 문패를 달아버린 평단을 지적하며,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성취한 것들을 지적한 점도 작품중심적 열린 비평의 본보기다.

백 교수는 70년대 이래 줄곧 펴온 민족문학론에 대해선 “지금은 민족문학이라는 표현이 한층 복잡해져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한 발 물러섰다.

즉 반독재 시대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적 구호로서의 민족문학은 그 효용을 다했다고 본다. 반면, 남과 북,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를 포함하는 민족주의의 의미는 더 커졌으며, 6월 항쟁으로 민주화에 성공한 이후에는 ‘남한의 국민문학을 겸한 한반도의 민족문학’이라는 한층 복잡한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세계화의 진전으로 엄연한 세계문학의 일원임도 간과할 수 없다.

백 교수는 한국 문단이 여전히 비평과 창작에서 활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문학의 미래를 낙관했다. “특히 한국 사회가 87체제를 드디어 넘어설 정치적ㆍ도덕적 역량을 보여준다면 문학에서도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 새 평론집의 다른 맛은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영문학 비평이다. 소설 ‘테스’, ‘폭풍의 언덕’, 콘래드의 ‘어둠의 속’ 등 명작들을 그만의 주체적 독법을 통해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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