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허약하게 창조된 인간을 불쌍히 여겨 제우스 몰래 태양의 마차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줬다. 이 일로 프로메테우스는 산꼭대기에 쇠사슬로 묶인 채 자신의 간을 매일 아침 독수리에게 쪼이게 하는 형벌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그 불로 연장과 무기를 만들어 마침내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
우리는 불의 발달사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제1의 불’, 그리고 전기를 ‘제2의 불’, 원자력을 ‘제3의 불’이라고 일컫는다. 불은 물, 공기와 더불어 인간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집 안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지어먹고 온갖 물건을 생산해 생활을 여유롭게 해줬다. 반면에 불은 우리에게 큰 피해도 입혔다. 불이 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앗아가기도 했다.
지난 3월 11일 북태평양 바다 아래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판 사이에서 튕겨오른 규모 9.0의 지진과 해발 15m 높이의 해일이 일본의 동북부 지방과 인근의 원자력발전소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화석연료 고갈과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대안이었던 ‘제3의 불’인 원자력은 르네상스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져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고리 원전 1호기 도입 이듬해인 지난 1979년 최신 발전소 중의 하나인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2호기에서 핵연료의 일부가 용융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고리 4호기가 불을 밝히던 지난 1986년에는 옛 소련의 체르노빌 4호기의 원자로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이 두 사고로 프랑스, 캐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원전 선진국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국내 원전이 과연 안전한가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정부는 3월 말부터 지난달까지 국내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집중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정부는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최악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총 50여개의 장ㆍ단기 안전개선대책을 발굴, 5년간 약 1조원 규모의 재원을 투입해 국내 원전의 안전수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키로 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느림’은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자동차, 고속열차를 비롯해 비행기가 개발돼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운송기기의 사고 위험성을 비교해보면 자동차보다는 비행기가 훨씬 위험도가 크다. 신속성이 중요한 21세기에 ‘저(低)위험’만을 고집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공교롭게도 물로 시작된 일본의 원전사고는 인간이 유용하게 이용했던 ‘제3의 불’의 판도를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물, 불을 가려서 제대로 다스려야 하는 큰 과제를 안게 됐다. 정부와 원전사업자는 냉정한 정책 결정과 함께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 국민들로부터 더욱 안전한 원전 운전이 되도록 했으면 하는 게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